김병준 전경련 회장직무대행(왼쪽)과 도쿠라 마사카즈 경제단체연합회(경단련) 회장이 10일 일본 도쿄의 경단련에서 ‘한-일 미래 동반관계 기금’(미래기금)과 관련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제공 : AP, 뉴시스
“이번 사업은 전경련만이 아니고 전 국민, 전 경제와 연관되는 일이다. 4대그룹이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문은 항상 열려 있다”
지난 10일, 김병준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직무대행이 일본에서 한 말이다. 최근 한일정상회담 결과에 따라 만들어질 양국 경제단체의 ‘미래파트너십기금’ 설치 합의안을 발표하는 공동 기자회견 자리에서 나온 발언이다.
양국 경제단체가 10억원씩 내, 20억원 종잣돈으로 인적 교류 사업을 하는 기금이 “전 국민, 전 경제와 연관되는 일”이라는 자못 비장한 확대 해석은 김 직무 대행의 평소 신념이라고 치고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4대그룹이 참여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발언은 우려스럽다. 김 직무대행 발언을 두고 일각에선 “우회적으로 지원을 요청했다”고 해석하는 듯 하지만, 사실상 압박에 가까워 보인다. 그는 단순한 경제단체장이 아니다. 지난 대선 윤석열 후보 캠프 상임선대위원장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장을 지냈다. 경제·경영 관련 이력이 전혀 없는 그가 전경련 직무대행을 맡을 때부터 뒷말이 흘러 나왔던 이유다.
전경련 역할은 윤석열 정부 들어 대폭 확대됐다. 국정농단 이후 내리막길을 걸었던 전경련에 손을 내민 것은 윤석열 대통령이었다. 당선인 시절, 경제단체와 ‘첫 도시락 회동’을 주관한 것을 시작으로 윤 대통령 주요 순방길 마다 전경련이 앞장섰다.
지난 2월, 김병준 직무대행 체제가 들어면서 위상은 수직상승했다. 한일·한미 최근 숨가쁘게 이어진 대통령 중요 정상회담 경제 라운드 테이블은 모두 전경련이 주관했다. 지난 정부 대한상공회의소가 경제사절단 준비를 전담했던 것과 전혀 다른 모양새다.
잘 알려져 있듯, 전경련은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 ‘뇌물의 가교’였다. 대통령-청와대 경제수석-전경련-대기업으로 끈끈하게 얽히고 설켰다. 박근혜 대통령 하명을 받은 청와대 경제수석은 기업 이름과 액수가 적인 명단을 전경련 고위관계자에게 넘겼고, 전경련은 기업을 돌며 ‘VIP 의중’을 전달했다. 그렇게 “미르·K스포츠재단에 쓰겠다”고 전경련이 모은 출연금이 770억원에 달한다.
그 원죄로 삼성·SK·현대·LG 4대 재벌이 앞다퉈 전경련을 탈퇴했다. 불과 7년전 일이다. 역사는 반복되는 것일까. 대통령과 가까운 인사가 전경련 회장에 오르고, 미미했던 역할이 수직 상승하더니, 자신의 회원사도 아닌 4대 재벌에 ‘기금을 내라’고 압박한다.
지난 2월, 김병준 직무대행은 취임 일성으로 “전경련이 과거에 어떤 유착 고리가 있어서 고생했다면, 그 고리를 끊으려고 왔다”고 했다. 김 직무대행의 말이 허언이 아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