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가 울산 전기차 공장 투자 비용의 상당 부분을 돌려받게 됐다. 정부가 전기차와 자율주행 분야를 국가전략기술에 추가해 세제지원을 강화하면서다. 세제지원의 투자 유인 효과는 불확실한 가운데 대기업 특혜를 강화하는 조치라는 비판이 제기된다. 경기 악화로 세수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감세를 확대하는 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12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울산 공장에 전기차 전용 공장을 신설한다고 지난 9일 밝혔다. 투자 규모는 2조원이다. 올해 4분기 착공에 들어가 2025년 완공을 목표로 한다. 건축면적은 7만 1천평이다. 1996년 아산공장 가동 이후 29년 만에 들어서는 현대차의 국내 신공장이다.
정부는 세제지원으로 화답했다. 당시 현대차 울산 공장을 방문한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미래형 모빌리티 분야 투자 확대와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정부가 총력 지원하겠다”고 말했고, 기재부가 전기차·자율주행 투자세액공제 확대 방안을 내놨다. 국가전략기술에 해당 분야를 추가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시행령 개정안을 입법예고 했다. 국가전략기술로 지정되면 시설 투자에 대해 15%의 세액공제(대기업 기준)를 받을 수 있다. 기존 완성차 공장은 세액공제율이 1%, 모터 등 구동시스템 생산 공장은 3%였다.
올해는 추가적인 지원도 이뤄진다. 직전 3년간 연평균 투자 비용 대비 올해 투자 증가분에 대해서는 10%의 임시투자세액공제가 적용된다.
연구개발(R&D)에 대해서도 세제지원을 한다. 국가전략기술 연구개발의 세액공제율은 최대 40%다. 현대차그룹이 받을 연구개발 세액공제 규모도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그룹은 2030년까지 연구개발과 생산, 인프라 등에 24조원을 투자할 계획이다. 연구개발 분야에서는 2025년 도입하는 승용 전기차 전용 플랫폼을 비롯해, 차급별 전용 플랫폼을 개발한다. 핵심 부품과 선행기술 개발, 연구시설 구축에도 투자한다.
세액공제의 투자 유인 효과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추 장관의 울산공장 방문을 계기로, 현대차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전기차 공장 신설 계획을 알리고, 정부는 세제지원 방안을 발표했다. 정부 유인책에 따라 투자가 이뤄진 게 아니라, 현대차 지원을 위해 정부가 방안을 내놓은 모양새다.
현대차의 전기차 공장 신설 계획 윤곽이 잡힌 건 지난해 7월이다. 노사 간 임금협상에서 ‘국내공장 미래 투자 관련 특별 합의서’가 마련됐다. 신공장 착공·완공 목표 시점도 이때 이미 정해졌다. 노사 합의 직후 장재훈 현대차 사장이 “울산 공장을 중심으로 (건립)한다”, “(투자 규모는) 약 2조원 정도를 생각한다”며 보다 구체적인 내용을 전했다. 울산시에서는 지난해 최고의 시정 1위로 현대차 신공장 유치가 선정됐고, 윤석열 대통령은 당선 1주년을 맞은 지난 3월 9일 울산의 현대차 수출 부두를 방문해 신공장 건설 개요를 보고 받기도 했다.
정세은 충남대 경제학과 교수는 “투자세액공제는 자기실현적 정책”이라며 “이번 이벤트는 시기상 정부가 세금을 깎아서 투자를 유치했다기보다, ‘세금을 깎아야 투자를 유치할 수 있다’는 추 장관 지론을 증명하기 위해 억지로 만든 작품 같다”고 지적했다.
현대차는 이미 상당한 투자 재원을 보유하고 있다. 지난해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 규모가 20조 9천억원에 달한다. 역대 최대 규모다. 2021년 12조 8천억원 대비 63% 이상 불었다. 2020년에는 9조 9천억원이었다. 해마다 곳간에 쌓이는 돈이 크게 늘어나는 형국이다.
현대차는 현금 배당도 대폭 늘렸다. 지난해 배당으로 총 1조 8천억원을 썼다. 2021년은 1조 3천억원, 2020년은 8천억원이었다. 배당금 상당수는 총수일가가 챙겼다. 현대차 지분을 보면, 그룹 지배구조 핵심인 현대모비스 21.43%, 정몽구 그룹 명예회장 5.33%, 정의선 그룹 회장 2.62% 등 특수관계인이 29.38%를 보유하고 있다.
정 교수는 “그간 대기업은 이윤을 유보금으로 많이 모아뒀다”며 “자금이 부족해 투자를 안 하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9일 현대자동차 울산공장을 방문해 장재훈 사장, 관계자들과 함께 선적부두를 둘러보고 있다. 2023.05.09. ⓒ뉴시스
미국 IRA 대응이라는 정부, 정작 근본 해법 모색에는 소극적
정부는 세액공제 확대 배경으로 미국의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을 내세운다. 한국도 세제지원을 늘려야 투자를 유인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미국은 자국 전기차 공장 투자에 대해 30%의 세액공제를 제공한다. 또한, 북미(미국·캐나다·멕시코) 공장에서 최종 조립되지 않은 물량은 소비자에 지급하는 7,500달러의 전기차 보조금 대상에서 배제한다. 추경호 장관은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보조금·세제지원 확대 등을 통해 전기차 육성 정책을 추진 중”이라며 “미래차 생산 시설 등을 국가전략기술에 추가해 세계 최고의 파격적인 세제지원을 제공하겠다”고 말했다.
미국과 세제지원 경쟁으로 투자를 유치한다는 정부 구상에 대해 전문가들은 회의적이다. 기업이 미국에 투자하는 이유는 세제지원 영향보다는 시장 확보 목적이 크다고 설명한다. 미국 전기차 정책을 놓고 보면, 제조사에 대한 세액공제보다 소비자에 대한 보조금이 투자 결정에 주효했다는 분석이다. 미국에 공장을 짓지 않고 한국에서 수출하면 가격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하니, 현대차가 미국 투자를 결정했다는 것이다. 미국의 IRA는 지렛대로 삼을 거대한 시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의미다. 정부 세제지원은 투자 유인 효과를 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정세은 교수는 “미국이 세제지원으로 기업을 유치한다고 하는데, 적어도 전기차 분야에서는 세제지원보다는 시장 때문에 미국에 가는 측면이 크다”며 “정부가 세제지원으로 투자를 유치하려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세금을 깎아줘야 하는지부터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세제지원은 기업 투자 판단의 절대적인 요소가 아니라, 일부 요소일 뿐”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은 이미 기업 하기 좋은 환경을 갖추고 있는 것으로 평가된다. 세계은행의 기업환경평가(두잉 비즈니스)에서 한국은 2019년 기준 190개국 가운데 5위를 차지하면서, 미국(6위)을 앞섰다. OECD 국가 중에서는 3위를 기록했다. 해당 지수는 ▲설립(창업·고용) ▲지역정착(건축 인허가·전기공급·재산권 등록) ▲금융접근성(대출·소액투자자 보호) ▲일상적인 업무처리(세금납부·통관행정·정부조달계약) ▲위험 관리(계약 강제이행·기업도산) 등 지표로 구성된다. 세금납부 항목을 예로 들면, 행정 절차가 효율적일 뿐 아니라 기업이 부담하는 세금과 기여율도 다른 국가에 비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정 교수는 “두잉 비즈니스 지표를, 보면 한국은 제도와 인프라 측면에서 사업 환경이 나쁘지 않다”며 “특히 법인세율뿐 아니라 기업의 세외 부담금 비율도 높지 않다”고 설명했다.
정부가 투자 유치에 강한 의지를 보이지도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대차를 비롯한 한국 주요 기업이 미국에 투자하도록 하는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 정책에 대한 해법을 끌어내지 못했다는 비판과 맥을 같이 한다. 가령 ‘한국산과 미국산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한미 FTA 상 내국민 대우 조항에 기반해 역내 지위를 확보한다면, 한국산 전기차도 미국에서 보조금 대상이 된다. 미국에 공장을 세워야 하는 주요 요인이 해소되는 셈이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 공동선언에서 한국에 대한 역내 지위 인정은 빠졌다. 윤 대통령은 해당 사안을 정상회담 의제로 올리기 위한 적극적인 노력을 보이지도 않았다.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 조건에 대한 개선 요구가 소극적인 수준에서 있었으나, 그나마도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유찬 홍익대 경영학과 교수(전 한국조세재정연구원장)는 “미국과 투자 유치를 두고 세제지원 경쟁을 하는 건 의미가 없다”며 그간의 정부 대응을 짚었다. 그는 “정부 입장은 현대차를 향해 ‘미국에 투자하지 말고 한국에 투자하라’고 요구하는 것도 아니다”라며 “미국에 가서는 한국 기업의 미국 투자를 자랑처럼 말하고, 미국에는 투자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더 달라고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히려 정부 입장은 미국에 투자하라는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달 11일 경기도 화성 기아 오토랜드 화성에서 열린 전기차 전용공장 기공식에서 서명 퍼포먼스를 마친 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악수하고 있다. (대통령실통신사진기자단) 2023.04.11. ⓒ뉴시스
세수 펑크 우려 외면…‘전략’ 무색해진 국가전략기술
가뜩이나 세수가 줄고 있어 대규모 세액공제에 대한 비판이 증폭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1~3월 누계 국세수입은 87조 1천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조원(21.6%) 감소했다. 법인세는 24조 3천억원으로, 지난해보다 6조 8천억원(21.9%) 줄었다. 법인세 진도율은 21.4%로, 전년 동기 27.4%와 최근 5년 평균 24.7%에 크게 못 미친다. 진도율은 정부가 1년간 걷어야 할 목표 세수 대비 실제 걷은 세금의 비율을 나타내는 지표다. 저조한 진도율은 세수 결손에 경고등이 켜졌다는 의미다. 결국 기재부는 법인세가 예산 편성대로 들어오지 않을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인정했다.
이번 세액공제 확대로 내년 세수 감소 위험이 더 커지게 됐다. 전기차의 국가전락기술 지정으로 현대차가 받게 되는 세액공제 규모를 거칠게 계산해 보면, 수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가 밝힌 신공장 투자 금액 2조원에 세액공제율 15%를 적용하면 3천억원이다. 2025년 완공 목표이니, 연간 1천억원이다. 올해 투자분에 한해 적용되는 임시투자 세액공제는 반영하지 않은 값이다. 세액공제 대상에 부지 매입비 등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막대한 규모의 세수 감소가 불가피한 셈이다. 연구개발에 대한 세액공제까지 추가하면 현대차 수혜 규모는 더 커진다.
연간 1천억원은 ‘중소기업 기술 혁신 개발’ 사업의 연간 사업비(약 1,050억원)와 맞먹는다. 현대차에 집중된 특혜 대신 산업 경쟁력의 근간이 되는 중소기업 기술력 강화에 두 배로 힘을 실어 줄 수 있다. 사회복지 분야에서도 1천억원은 큰 사업이다. 공공임대주택 융자지원 사업 올해 예산이 약 1,180억원이다.
정부는 대기업 감세를 강행하면서도 재정 건전성을 강조하는 모순된 입장을 보인다. 전문가들은 친재벌 성향의 정부가 세수 감소 대응으로 서민 지원을 축소할 것을 우려한다. 지난달 기재부가 임의심층평가 대상으로 선정한 조세특례 제도에는 근로장려금(EITC), 무주택자에 대한 주택자금 특별공제, 청년 우대형 주택청약저축 비과세 등 서민 지원 제도가 다수 포함됐다. 조세특례 평가는 정책 목적 부합 여부 등을 판단해 특례를 폐지·수정하는 절차다. 선정 기준이 명시된 의무평가 대상과 달리, 임의심층평가 대상은 기준에 부합하지 않더라도 기재부가 임의로 선정하게 된다. 세수가 줄어들자 서민 지원 축소를 위한 포석을 까는 것 아니냐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예산을 일부러 쓰지 않는 행태도 지적된다. 기재부는 세수가 예상보다 적을 때 각 부처를 상대로 암암리에 예산 불용을 종용한다고 알려졌다. 지난해 예산 불용 규모는 12조 9천억원으로 8년 만에 최대치를 기록했는데, 올해도 불용 규모가 상당한 수준 발생할 수 있다는 전문가들은 내다본다.
정 교수는 “한국 경제 침체가 이어지는 가운데, 올해 하반기 들어서는 중소기업과 자영업자 쪽에서 심각한 위기가 올 수 있다는 경고가 나오는 상황”이라며 “세액공제 확대로 과세 기반을 허물어 버리기보다는, 능력이 되는 기업에서 좀 더 걷어 서민을 위한 부분에 증액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행정 규제를 적절하게 조정하는 등 기업 편의를 봐주는 것은 가능하겠으나, 산업 정책이라는 명분으로 대기업 세금을 깎아주는 방식은 부적절하다”고 말했다.
국가전략기술 시설·연구개발 투자세액공제 일몰기한은 2024년 말까지다. 올해 안에 국가전략기술이 더 추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당초 국가전략기술은 반도체·배터리·바이오 분야로 한정됐으나, 지난해 디스플레이에 이어 이번에 전기차가 추가됐다.
김 교수는 “정부 입장에서는 전기차만 빼놓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며 “전기차가 중요한 산업인 것도 맞다”고 말했다. 다만 “국가전략산업 시작은 핵심 산업을 정해 특별하게 취급한다는 것이었는데, 지금처럼 계속 범위를 넓히다 보면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산업이 있겠나”라고 꼬집었다. 대표적인 게 인공지능이다. 명실상부 미래 핵심 산업으로 평가돼 온 인공지능은 최근 챗GPT 열풍으로 그 중요성이 보다 강조되고 있다. 로봇과 항공·우주 분야도 마찬가지다. 콘텐츠는 또 어떤가. 윤 대통령은 지난 2월 제4차 수출전략회의에서 K-콘텐츠의 수출 활로 전략을 강조하기도 했다.
자동차 업계 관계자는 “정부가 지난해 말부터 전기차의 국가전략기술 지정을 검토했는데, 기재부가 세수 때문에 난색을 보이다가, 어떤 산업은 해주고 어떤 산업은 안 주느냐는 목소리에 지정을 결정한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폭을 과도하게 설정한 게 근본적인 문제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부는 지난해 국회 예산안 처리 과정에서 법인세 최고세율을 계획했던 만큼 내리지 못하자, 대안으로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를 늘렸다. 정부는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25%에서 22%로 낮추는 내용의 법인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여야 간 합의 과정에서 모든 구간에 대해 1%p 인하하는 것으로 조정됐다. 당시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율은 기존 6%에서 8%로 올리는 내용의 정부안이 통과됐다. 해당 정부안이 처리된 지 불과 10여일 만에 정부는 세액공제율을 15%로 높이는 방안을 내놨고, 지난 3월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으로 실현됐다.산업적인 고려보다는 재벌 특혜를 통한 낙수효과론에 매몰된 결과라는 평가가 우세했다.
김 교수는 “법인세 인하와 세액공제 확대라는 감세 방안이 동시에 이뤄지면서 문제를 키웠다”며 “법인세를 높이면서 일부 분야에 대한 세제지원을 펴든지 해야 하는데, 지금 같아서는 세금 안 받겠다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