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가 본 전세사기 특별법의 허점과 사각지대

2주 넘게 국회 표류 중인 전세사기 특별법, 협소한 지원대상에 사각지대 우려 커진다

전세사기 특별법 논의가 이뤄지고 있는 국토위 법안소위 ⓒ뉴시스

‘전세사기 특별법’이 2주 넘게 국회에서 표류하고 있다. 특별법 수정안이 나오기도 했지만, 피해자 인정 범위를 더 확대하고 채권매입 방안을 포함해야 한다는 야당의 요구를 정부여당이 거부하면서 결국 불발됐다. 국회는 오는 25일 열릴 본회의에서 전세사기 특별법 제정안을 통과시킨다는 계획이지만, 여전히 여야간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는 만큼 계획된 본회의 통과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특별법 논의의 핵심은 ‘어디까지를 전세사기로 보느냐’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여당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모든 세입자를 지원할 순 없다는 입장이다. 지난달 27일 정부여당이 발표한 특별법안에 6개의 ‘지원 요건’을 포함한 것도 이 같은 이유에서다. 해당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만 특별법 지원대상으로 보겠다는 것이다.

당시 특별법안을 발표한 원희룡 국토부 장관은 “전세사기와 단순 보증금 미반환을 구분지여야 한다”며 “전세사기라는 명백한 범죄에 준하는 경우로 한정해 국가 개입이 최소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후 특별법에 대해 “지원 대상이 너무 협소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정부여당은 수정안을 통해 지원 요건을 4개로 축소했다. 그러나 이 수정안 역시 기존의 6개 요건을 일부 병합한 수준에 그치면서 다시 한번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야당의 비판을 받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들과 야당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를 전부 전세사기로 볼 수 없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다만 피해자 구제를 목적으로 한 특별법인데도 지원대상이 너무 협소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특별법 수정안은 ❶호 대항력이 없고 확정일자를 못 받았더라도 임차권 등기를 마친 경우 ❷호 보증금이 3억원 이하인 경우(단 150% 범위 내 조정 가능) ❸호 임대인의 파산 및 회생절차 개시, 경·공매 절차 개시로 인해 다수의 임차인에게 피해가 발생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 ❹호 수사가 개시되는 등 임대인의 기망 또는 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없는 바지사장에게 임차주택 소유권 양도, 보증금 반환을 이행하지 않을 의도가 있는 경우 등이다.

피해자들과 야당은 수정안에도 사각지대가 있다고 우려했다. 전세사기의 유형이 워낙 다양해 현재의 수정안만으로는 배제되는 피해자들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전세사기 피해자 지원방안 질문에 답하는 원희룡 장관 ⓒ뉴시스

‘이중계약’부터 ‘신탁부동산’까지... 전세사기 명확한데 피해자 아니다?


수정안에 대한 평가는 법률전문가인 변호사들도 비슷했다. 4개 지원요건 모두에서 허점이나 사각지대가 존재한다고 분석했다.

우선 수정안 ❶호인 ‘대항력이 없고 확정일자를 못 받았더라도 임차권등기를 마친 경우’에 대해서는 입주조차 못 한 이중계약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특별법 적용대상에서 배제될 수 있다고 봤다.

세입자 법률지원센터인 ‘세입자114’ 센터장 이강훈 변호사는 “이중계약으로 아예 입주조차 못 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있다”면서 “이들 피해자는 대항력은 물론 임차권등기도 할 수 없다. 전세사기가 분명한데도 피해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중계약은 깡통전세나 중복계약 등과 함께 흔한 전세사기 유형 중 하나다. 집주인이 아닌 공인중개사, 임대관리업자 등의 대리인이 사기의 주체가 되는 것이 특징이다. 집주인에게 월세계약 체결을 위임받고 정작 임차인과는 전세계약을 맺어 보증금을 챙기는 수법이다.

실제 2019년 경기 안산에서는 중개보조원으로 일하던 자매가 전·월세 이중계약을 통해 120여명으로부터 65억원을 챙긴 사건이 발생했었다. 또한 대리인이 아닌 월세입자가 집주인 행세를 하며 다른 임차인과 전세계약을 체결해 보증금을 챙긴 사례도 있다.

신탁부동산을 이용한 전세사기도 수정안 1호로 인해 사각지대에 놓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세입자114 사무처장인 김대진 변호사는 “신탁부동산의 경우 임차인은 대항력이나 우선변제권을 가질 수 없다. 당연히 임차권등기도 안 된다”면서 “이런 신탁부동산이 전세사기에 이용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신탁부동산은 소유자가 관리를 위해 부동산을 신탁회사에 맡긴 경우와 신탁 이후 받을 수 있는 수익권증서를 담보로 대출받기 위해 소유권을 신탁사에 넘긴 경우로 나뉜다. 수익권증서는 해당 신탁부동산의 우선수익자 지위를 증명하는 문서로 채권최고금액 및 우선수익자의 의뢰범위 등이 표시돼 있다. 통상 ‘부동산 담보신탁’이라고 해서 단순 근저당 설정보다 더 많은 돈을 빌릴 수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신탁부동산의 경우 법적 소유권은 신탁사가 갖는다. 기존 소유자에게는 임대권한이 주어지지만, 신탁사의 동의가 필요하다.

일반적 신탁부동산 전세사기는 기존 소유자가 신탁사의 동의 없이 몰래 임대계약을 체결해 전세보증금을 챙기고, 이후 떼먹는 수법으로 이뤄진다.

최근 경남 함양의 한 빌라에 발생한 전세사기도 이 같은 신탁부동산 전세사기인 것으로 파악됐다. 피해자는 16가구 규모로, 전세계약 종료 후 임대인에게 보증금 반환을 수차례 요청했으나, 현재는 임대인과의 연락이 끊긴 상태다. 피해자는 기존 소유자(위탁자)와 계약을 맺었던 만큼 법적 소유권을 가진 신탁사에 보증금 반환을 요구할 수도 없다.

이처럼 전세사기가 명확하지만, 피해 세입자는 지원요건 ❶호에 해당하지 않아 특별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된다.

지원 요건 ❷호 ‘보증금 3억원 이하인 경우(단 국토부내 전세사기피해지원 위원회가 150% 범위 내에서 조정 가능)’에 대해서는 피해금액 규모를 구체적으로 명시한 만큼 사각지대도 명확하다. 전세사기 피해금액이 최대 4억5천만원(150% 적용시)을 넘어갈 경우 특별법 적용대상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이 변호사는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지역의 경우 타지역에 비해 집값이 높은 만큼 전셋값이 기준인 4억5천만원을 넘는 경우가 충분히 있을 수 있다. 실제로도 그런 피해자들이 계속 나오고 있다”면서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당한 피해자들을 피해자로 인정하지 않는 셈”이라고 꼬집었다.

김 변호사는 “정부가 공공매입을 고려해 비싼 아파트를 살 수 없으니 가격 제한을 둔 건 이해할 수 있다”면서도 “피해금액 규모를 지원 요건에 담을 것이 아니라 공공매입시에만 금액 제한을 두는 식의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부동산업체 자료사진 ⓒ뉴시스

까다롭고 모호한 전세사기 특별법...
변호사들 “피해자가 입증하기 적절치 않다”


지원 요건 ❸호인 ‘임대인의 파산 및 회생절차 개시, 경·공매 절차 개시로 인해 다수의 임차인에게 피해가 발생할 것이 예상되는 경우’에 대해서는 피해자가 입증해야 할 요건으로 적절치 않다는 평가가 나왔다.

‘임대인의 파산 및 회생절차 개시’는 임대인이 신청하지 않으면 세입자인 피해자가 직접 신청해야 하는데, 그 과정이 매우 까다롭다는 게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우선 회생절차는 임대인 본인만 신청할 수 있어 세입자가 할 수 있는 게 없다. 파산신청은 피해 세입자도 할 수 있지만, 임대인의 재정 상황을 파악하고 있어야 가능하다.

경·공매 절차 개시도 쉽지 않다. 근저당이나 국세체납 등 선순위 채권이 존재해 경공매가 진행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이 역시 피해 임차인이 직접 신청해야 한다. 문제는 경매신청을 위해선 보증금 반환소송에 대한 법원 판결이 필요하다. 임대인을 상대로 먼저 보증금반환 소송을 제기해 법원으로부터 지급명령 판결을 받고, 이를 근거로 경매를 신청할 수 있다는 의미다. 또 보증금반환 소송의 경우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에서만 제기할 수 있어 임대차계약이 종료된 세입자만 가능하다.

이 변호사는 “선순위권이 있어 경공매가 진행 중인 게 아니라면 세입자가 직접 신청해야 하는데, 이 경우 시간은 물론 비용도 많이 소요된다”면서 “전세사기가 확실한데 임대차계약이 끝나지 않아 신청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법조계에 따르면 전세사기 피해 임차인이 보증금반환 소송부터 경매신청, 경매개시까지 진행하는 데 통상 1년가량이 소요된다. 비용 부담도 적지 않다. 이 모든 과정을 피해 임차인이 직접 진행하기 어려운 만큼 법률전문가 고용 비용과 경매 신청시 발생하는 비용, 감정 비용 등으로 적어도 수백만원의 비용이 발생한다.

3호에 포함된 ‘다수의 임차인에게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경우’에 대해도 피해 세입자가 증명하기 어렵다. ‘건축왕’, ‘빌라왕’ 등 유명 전세사기가 아니라면 다수의 피해자가 발생한 사실을 세입자가 알기 어렵다.

김 변호사는 “언론을 통해 알려진 사건이 아니라면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몇 명이나 되는지 알 방법이 없다”며 “오히려 경찰이 수사를 통해 확인하는 게 훨씬 빠르고 정확하다”고 지적했다.

지원 요건 ❹호 ‘수사가 개시되는 등 임대인의 기망 또는 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없는 바지사장에게 임차주택 소유권 양도, 보증금 반환을 이행하지 않을 의도가 있는 경우’도 세입자가 입증하기 어렵다는 게 변호사들의 판단이다.

이 조항의 핵심이 ‘보증금 반환을 이행하지 않을 상당한 의도가 있는 경우’다. ‘수사 개시’나 ‘임대인의 기망’, ‘바지사장’ 등은 보증금 반환을 이행하지 않을 의도를 증명하는 정황 증거다.

하지만 ‘보증금 반환을 이행하지 않을 의도’의 대한 판단 자체가 모호해 결국 주관적인 의견이 반영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 경우 판결이 확정되지 않는 이상 정확히 따지기 어렵다는 게 변호사들의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세입자 입장에서 4호를 입증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수사를 통해 재판에 넘겨져 판결받지 않는 이상 특별법 지원 대상에 해당한다고 단언할 수 없다”며 “이걸 국토부 내 설치되는 전세사기피해 지원위원회가 결정한다는 건데, 어떤 기준을 갖고 판단할지 알 수 없다. 굉장히 모호하다”고 지적했다.

20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 전국대책위원회 주최로 열린 전세사기 대책 관련 윤석열 대통령 면담요청 기자회견에서 전세사기 피해자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2023.04.20 ⓒ민중의소리

지원책 놓고도 엇갈린 정부여당과 야당


정부여당과 야당은 지원대책을 두고도 의견이 갈린다. 정부여당은 전세사기 피해자들의 ‘주거 보장’에, 야당은 ‘피해지원’에 방점이 찍혀 있다.

현재의 특별법은 지원 요건을 충족한 전세사기 피해자가 거주 중인 임차주택 매수를 희망할 때에 한해 우선매수권과 금융·세재지원을 제공한다는 계획이다.

피해 세입자가 임차주택 매수를 원하지 않고, 계속 거주하기를 희망할 경우엔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 공공기관이 해당 주택을 매입해 공공임대로 제공하기로 했다. 다만 전세보증금에 대한 정부의 지원이나 보전은 일절 없다.

반면 야당은 ‘선보상, 후회수’ 방안 도입을 요구하고 있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되면 한국자산관리공사(캠코) 등 공공기관이 피해 임차인의 보증금 반환 채권을 매수해 해당 임차인에게 우선 보상하고, 이후 공공기관은 매입 채권으로 해당 주택을 매입해 되팔거나 공공임대로 활용해 채권 매입비용을 회수하는 방식의 대책이다. 전국으로 확산하는 전세사기에 대한 정부책임을 인정하고, 적극적인 지원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대부분의 전세사기는 정부 부동산 정책의 빈틈이 악용된 결과다. 특히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대출보증과 전세보증보험의 방만한 운영은 전세사기의 자양분이 됐다. HUG의 전세보증보험은 전세가율 100% 주택까지 가입이 가능했다. 전셋값이 집값에 맞먹는 수준인데도 보증을 해줬다는 의미다. 임대인들이 보증금을 반환할 능력이 있는지, 신용은 어떤지, 전셋값은 적당한지도 검증하지 않았다. 게다가 주택가격 산정 기준을 공시가격의 150%까지 적용했다. 전세사기범들 입장에선 보증보험을 앞세워 ‘무자본 갭 투자’를 벌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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