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은 왜 그토록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의 패배를 바라는가

2023년 터키 대선의 두 후보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지난 14일 터키 대선이 치러졌다. 타이이프 에르도안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와중에 흑해를 통한 우크라이나 곡물 수출길을 여는 흑해곡물협정을 중재하는 등 중재자로서의 면모를 과시하기도 했지만, 러시아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며 서방의 제재에 동참하고 있지 않은 데다 스웨덴의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가입에 반대하고 있다. 그래서인가 서방은 이번 터키 대선을 21세기 술탄과 터키의 간디 간의 싸움으로 그리면서 초미의 관심을 보였다. 에르도안의 20년 집권을 강조하며 그가 승리하면 종신 집권을 시도할 것임을 기정사실화 했고, 그에 맞선 6개 야당 단일후보케말 클르츠다로을루 공화인민당(CHP) 대표를 치켜세웠다. 서방이 왜 그토록 일관되게 에르도안의 낙마를 원하는지 문제제기를 하는 미들이스트아이의 기사를 소개한다. 
이번 기사는 대선이 치르지기 전 11일자 기사이다. 14일 대선은 88.9%의 유권자가 참여한 가운데 에르도안이 49.5%를 득표해 1차 투표에서 44.9%를 얻은 클르츠다로울루를 제치고 1위를 차지했으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해 28일 결선 투표까지 가게 됐다. 한편 같은 날 치러진 총선에서는 집권 여당 정의개발당이 총 600석 중 약 317석의 과반 의석 확보했다.

원문:  Turkey elections: Why Europe is desperate to see Erdogan lose

아무리 이코노미스트라도 이번에는 심했다. 이코노미스트가 한 나라 국민이 직접 선출한 국가 원수인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에 대한 증오를 여과 없이 표현한 것이다. 

이코노미스트 최신호는 올해 치러질 선거 중 터키 대통령 선거가 가장 중요하다고 꼽고, 터키의 미래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자체의 미래가 그 결과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헝가리부터 인도에 이르기까지 독재자가 증가하고 있는 시대에 에르도안을 평화롭게 축출하면 독재자를 이길 수 있다는 것을 세계의 모든 민주주의자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이것은 엄청나게 어리석은 말이다. 터키가 강력한 대통령제인데다가 에르도안이 권력형 지도자인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독재가 일반적인 주변 지역 중에서 터키는 자유선거가 가능한 나라다. 

이번 터키 대선도 자유선거로 치러진다. 지독하게 포퓰리즘적이고 양극화됐으며, 국영 언론에 야당 관련 보도가 제한된 불공평한 경기장이지만, 터키 대선은 여러 정치세력이 온힘을 다해 싸우는 자유선거다. 2019년 최고선거위원회가 이스탄불 시장 선거에서 표차가 너무 작다는 이유로 야당 후보의 승리를 취소했으나 재선거에서 그가 더 큰 표차로 과반을 얻고 승리할 정도로 터키의 선거제도는 여전히 견고하다. 모든 정당이 선거에 참여해 투표용지를 확인하고, 투표함의 이송을 감시한다. 그리고 모든 정치이해관계자가 개표 과정에서 표 하나하나를 확인하고 이의도 제기한다. 이코노미스트가 독재자라고 부르는 에르도안은 1994년 이스탄불 시장에 당선된 이후 이런 자유선거를 6번이나 치르고 현재의 자리에 있다. 이번 대선은 그가 치를 7번째 자유선거가 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독재자다

이코노미스트는 지난 10년동안 독재자라는 주제에 6개의 표지를 할애했다. 그때마다 이코노미스트는 에르도안을 표적으로 삼았다.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독재자라고 인정하는 더 나쁜 지도자에 대한 유사한 비난은 찾아볼 수 없다.

압델 파타 엘 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6,300명이 올라 있는 테러리스트 목록에 인권옹호자와 언론인 81명의 이름을 최근에 추가했다. 이 블랙리스트에는 알자지라, 알샤크, 메카메린, 와탄, 라사드네트워크 등 정부에 비판적인 매체의 32명도 포함돼 있다. 이집트 감옥에는 쇠약해진 채 죽어가는 6만 여명의 정치범도 있다. 그러나 가치 중심의 외교를 한다는 서방은 이들을 옹호하는 말 한마디도 하지 않는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왕세자이자 총리인 모하메드 빈살만은 언론인을 살해하고 그의 시신을 훼손했으며, 자산을 포기할 때까지 비즈니스 경쟁자를 거꾸로 매달아 고문했다. 그에 대한 비판은 또 어디에 있는가? 

터키와 관련된 한 이성적인 판단을 잃어버리는 건 이코노미스트만이 결코 아니다. 독일의 사회민주주의적 자유주의의 대표적인 매체인 시사잡지 슈피겔은 이슬람의 상징인 초승달이 부서지는데 그 앞에서 금이 간 왕좌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에르도안을 그려냈다. “수립 100주년을 맞이한 터키 공화국이 갈림길에 섰다. 재임에 성공한다면 에르도안이 터키를 독재국가로 만들 위험이 있다. 그는 종신 통치자가 되어 선거를 폐지할 수 있다”. 슈피겔이 테러리스트와 파시스트를 가까이하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를 무너진 유대인 왕좌에 앉히고 그 뒤에 갈라진 다윗의 별을 그려 넣었다면 얼마나 큰 소동이 일어날지 상상이 되는가.

중도좌파 성향의 프랑스 유력지 르푸앙은 진지하게 에르도안을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비교하며 두 사람 모두 제국의 부활을 꿈꾸며 종교를 도구화하고 다른 나라를 침략했다고 주장했다. (르푸앙이 침략의 예로 든 크프로스 침공은 1974년 케말주의 정당인 공화인민당을 이끌었던 뷜렌트 에제비트 집권 당시 이뤄졌다.) 물론 시리아와 리비아에 대한 터키의 침공도 예로 등장했다. 그런데 시리아에는 미국, 러시아, 이란 군대도 있지 않은가? 모든 서방 국가가 마샤르 알 아사드 시리아 대통령을 축출하려다가 실패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터키는 서방 연합군이 여전히 전투를 벌이고 있는 이슬람국가(IS)의 마지막 수장을 죽이지 않았는가. 그리고 터키가 드론으로 개입하기 전에 리비아 트리폴리를 점령하려는 시도 뒤에 러시아의 바그너 용병, 아랍에미리트(UAE), 이집트가 있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터키만 문제 삼는 것이다.

유럽의 멘붕

서방이 터키와 관련된 보도를 할 때에는 고의적인 오류와 누락이 판을 친다. 사실 확인이 전혀 이뤄지지 않는다. 터키 관련 보도는 정신적으로도 불안정하다. 에르도안은 무슬림형제단의 모하메드 무르시가 이집트에서 권력을 잡자 그와의 첫 만남에서 세속주의를 촉구했을 정도로 이슬람주의와 거리가 멀지만 서방은 그를 이슬람주의자라 부른다. 진실을 무시하고 온갖 부정적인 이미지를 그에게 덧입히는 것이다. 에르도안이 위험한 것은 그가 단순히 독재자일 뿐만 아니라 무슬림이라서 유럽식 민주주의를 위협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런 식의 보도는 정신 쇠약에 빠진 유럽인의 사고방식을 반영한다. 정신과 의사는 이 섬망이 매우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현실을 직시해 보자. 에르도안은 여전히 대선에서 패배할 수 있다. 그가 예상대로 대선 1차 투표에서 과반을 얻지 못하고 야당이 의회를 장악한다면 다른 정당의 표가 어떻게 갈라지는 지에 따라 많은 것이 달라질 수 있다. 실제로 이번 대선은 20년 간 선거를 치른 그에게 가장 어려운 선거다. 야당 후보와 에르도안의 지지율이 오차 범위 내에 있다.

에르도안이 패배한다면 그것은 인플레이션과 생활비 위기 때문일 것이다. 이에 대해서는 에르도안이 할 말이 없다. 그는 지속불가능한 저금리정책을 밀어붙이는 과정에서 중앙은행장을 2번이나 교체했고, 터키의 외환 및 금 준비금을 고갈시켰다. 물론 에르도안이 대선에서 승리한 뒤 보다 주류적인 통화정책을 펼칠 수도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가 패배한다면 그것은 그의 권위주의 때문이 아니라 경제 때문이라는 점이다.

에르도안은 대선을 앞두고 안정을 강조했다. 2018년 터키는 변화보다 안정을 선택한 바 있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터키 국민은 변화를 원한다. 한 세대 전체가 사회적 사다리를 타고 중산층에 진입했던 터키다. 그런데 그 세대의 아들과 딸은 의사와 엔지니어가 됐어도 이스탄불의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생활비 부족에 시달리고 있다. 이들은 연줄보다 성과에 기반한 기회와 발전이 가능한 터키를 갈망하고 있다.

원맨쇼

에르도안 아래의 대통령제 정부는 한 사람이 거대한 조직을 세세하게 관리하는 시스템이 됐다. 최말단 공무원의 임명에도 에르도안의 서명이 필요하다 직속 상관의 판단은 언제든지 뒤집어질 수 있다. 변해야 할 것이 참으로 많은 상황이다.

의원내각제로 복귀하고 정치제도를 강화하자는 제1야당 후보 케말 클르츠다로을루의 주장은 매력적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것이 현실이 되기 어려운 이야기일 뿐이다. 클르츠다로을루가 이끄는 공화인민당(CHP)에는 유럽 자유주의자들에게 더 매력이 없는 강력한 흐름들이 있다. 시리아 난민과 아랍어 사용자를 표적으로 하는 포퓰리스트 인종차별주의, 특히 지진 이후 과정에서 여실히 드러난 인종차별주의가 대표적이다.

클르츠다로을루는 취임 후 3개월 이내에 솅겐 협약 유럽 국가들과 무비자 여행을 가능하게 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에르도안도 정치 입문 때부터 유럽연합(EU)의 전신인 유럽공동체 가입을 지지했고, 2016년에는 유럽 무비자 여행 합의 직전까지 갔다.

에르도안은 이 과정에서 쓰라린 경험을 통해 유럽 국가에 강경하게 대처하는 방법을 배웠다. 이 분야 전문가가 모두 알고 있듯이, 유럽으로 가는 장벽이 터키에 있지 않다. 에르도안이 집권하기 11년 전인 1992년까지만 해도 독일은 터키의 EU 가입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했다. 공개적으로는 클라우스 킨켈 독일 외무장관이 터키의 가입을 지지한다며 터키를 안심시켰지만, 공개된 기밀문서에 따르면 당시 헬무트 콜 독일 총리는 할렘 브룬틀란 노르웨이 총리에게 독일은 반대한다고 했다고 한다. 자유민주주의가 호황을 누리고 있는 콜 집권 시기에도 그랬으니 독일, 이탈리아, 프랑스, 동유럽에서 극우가 부상한 오늘날 터키의 EU 가입에 대한 여론이 어떨지 생각해 보라.

끊임없이 터키에 대한 적대감을 표출하는 유럽

이슬람에 대한 증오와 무슬림에 대한 의심이 유럽 주류 정치에 자리 잡았다. 정치인이 만연한 백인 민족주의를 이용해도 비난을 받지 않으며, 정치적 생명이 끝나지도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클르츠다로을루는 터키의 올라프 숄츠, 터키의 조 바이든이라 불리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고 한다. 그러나 집권에 성공하게 되면 클르츠다로을루는 자신의 약속을 믿었다가 금방 환멸을 느낀 터키 유권자의 이런 비교를 후회하게 될 것이다. 그는 서방이 에르도안에게 그토록 적대감을 보이는 진짜 이유가 에르도안의 권위주의나 자유 언론에 대한 탄압과 아무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힘들게 깨닫게 될 것이다. (사우디가 자유 언론을 탄압하는 권위주의 국가여도 서방은 사우디에 투자하려고 열심히 노력 중이다).

에르도안이 서방에 그렇게 많은 적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그가 터키를 자체적으로 강력한 군대를 보유하고 강대국의 지시를 자동적으로 따르지 않는 독립 국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실패를 겪으며 쇠퇴하고 있는 서방에게 수니파 무슬림 세계의 지도자로서 그가 누리는 인기는 위협적이다. 무함마드 무르시 이집트 전 대통령이나 임란 칸 파키스탄 전 총리와 같은 독립적인 지도자들은 모두 같은 운명을 맞는다. 축출되고 만다. 그러나 에르도안은 그런 추세를 거스르고 있다. 현재까지는 말이다.

에르도안은 푸틴과 너무 가깝다는 이유로 비난을 받지만, 현재 이 지역에서 (이것이 얼마나 더 유지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우크라이나와 러시아 간의 포로 교환을 협상하고 곡물 거래가 지속될 수 있게 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가 바로 터키다. 우크라이나의 대대적인 반격이 흔들리고 키예프에 로켓과 포탄을 계속 공급하려는 바이든의 의지가 흔들리면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평화협상을 중재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국가 중 하나도 바로 터키다. 그때가 오면 유럽에게 터키의 중립성이 좀 더 매력적으로 느껴질 것이다.

에르도안이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는 시나리오도 많다. 터키 국민도 유럽이 에르도안에 대한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아챘다. 에르도안이 얼마 전 이스탄불의 옛 아타튀르크 공항에서 대규모 유세를 했을 때 수십만 명이 모였다. 참석자 숫자에 논쟁의 여지는 분명히 있지만, 그 집회 규모가 현재 야당이 장악한 도시의 모든 시민을 놀라게 한 것은 사실이다.

터키의 민주주의

에르도안이 승리한다면 그것은 그가 여당인 정의개발당(AKP)으로 돌아오도록 보수 유권자를 설득하는 데 성공했기 때문일 것이다. 여당 지지층은 대도시에 살지 않기 때문에 여론조사에서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여전히 선거에서 막강한 힘을 가지고 있다. 에르도안이 승리한다면 그것은 에르도안 집권 초기에 그의 측근이었던 아흐멧 다부토글루 전 총리와 알리 바바잔 전 외무장관을 끌어들여 보수표를 분열시키려던 클르츠다로을루의 전략이 실패했음을 의미할 것이다.

예상대로 이번 대선이 결선투표로 이어져도 에르도안은 통화 및 외교 부문의 거물급 인사를 2명 이상의 부통령으로 임명할 수 있는 등 여전히 많은 패를 손에 쥐고 있다. 반면 클르츠다로을루는 핵심적인 카드를 모두 소진한 상태다.

이것이 터키 민주주의의 오늘날의 모습이다. 그것은 조금 서투르고, 선거 사이사이에 오랜 기간 사라지기도 한다. 터키의 대통령제에는 변화가 필요한 부분이 많다. 나도 처음부터 현재의 대통령제를 비판했다. 나는 터키에 강령하고 독립적인 언론과 독립적인 기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해 왔다. 장관은 의회의 감시를 받아야 하고, 대통령으부터 개인 비서 취급을 받아서는 안 된다. 민간부문이 신뢰하는 독립적인 중앙은행도 필요하다. 하지만 에르도안의 대통령제가 아무리 결점이 많아도 그것은 지도자들이 ‘국민이 자유선거를 치를 정도로 성숙하지 않다’고 오만하게 단언하는 다른 아랍 국가의 정치제도보다 훨씬 낫다.

유럽은 에르도안의 몰락을 간절히 바라고 있다. 그럼으로써 유럽은 터키 국민이 이번 대선에서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할 가장 큰 이유를 준다. 터키 국민이 그토록 오랫동안 힘들게 싸우며 쟁취한 독립을 유지하고 싶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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