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희근 경찰청장이 18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언론 브리핑을 하고 있다. ⓒ뉴시스
윤희근 경찰청장이 18일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집회를 ‘불법’으로 규정하면서 “금번 건설노조처럼 불법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유사 집회에 대해서는 금지 또는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헌법과 법률상 근거가 없는 조치라 논란이 예상된다.
윤 청장은 이날 오후 서울 서대문구 경찰청에서 언론 브리핑을 자처해 “경찰은 일상의 평온을 심대하게 해친 이번 불법집회에 대해 엄중하게 책임을 묻고, 재발 방지를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하겠다”며 이같이 말했다.
앞서 민주노총 건설노조는 지난 16~17일 서울 도심에서 1박 2일 총파업 상정투쟁을 벌였다. 건설노조는 첫째날 시청역 앞에서 총파업 결의대회를 연 뒤, 이어 같은 장소에서 열린 이태원 참사 200일 촛불 추모제에 참석했다. 추모제가 끝난 뒤 건설노조 조합원 일부는 용산 대통령실 앞까지 행진을 했다. 건설노조는 “행진신고 가처분 인용에 따라 행진을 시작한다”고 밝힌 바 있다.
1박 2일 총파업 상경투쟁이었던 만큼, 모든 일정을 마친 조합원들은 서울광장 등에서 돗자리를 깔고 노숙을 했다. 숙박업소에 모두 들어갈 수 없을 정도로 큰 규모의 인원이 모였기 때문이었다.
경찰은 이번 건설노조 집회를 포함해 지난 2월 말과 5월 초에 열린 집회를 병합해 수사하기로 했다. 구체적인 혐의에 대해 경찰 관계자는 “소음유지 명령과 해산명령 불응, 신고범위 이탈, 일반교통방해”라고 설명했다.
윤 청장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향후 건설노조 집회까지 제한하겠다는 뜻을 내비쳤다. 윤 청장은 “금번 건설노조처럼 불법집회 전력이 있는 단체의 유사 집회에 대해서는 금지 또는 제한하겠다”고 밝혔다. 앞으로 건설노조가 집회하는 것을 막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하지만 윤 청장은 집회를 제할 수 있는 근거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자리를 떴다. 대신 경찰 관계자가 뒤늦게 “집시법 규정들을 적용해서 금지 또는 제한을 해야 한다”며 “예를 들어 불법 폭력행위를 여러번 했는데 유사한 집회 신고를 내면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예상이 가능한 거다. 교통 행진을 하다가도 몇 개 차선만 신고했는데 이를 넘어서거나 한 전례가 있는지 등도 우리가 감안해서 금지 또는 제한을 하겠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경찰의 설명과 달리 집회를 제한할 근거가 헌법이나 집시법에 없다.
집시법 제5조(집회 및 시위의 금지)에 따르면 집회 금지 근거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해산된 정당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집회 또는 시위’와 ‘집단적인 폭행, 협박, 손괴, 방화 등으로 공공의 안녕 질서에 직접적인 위협을 끼칠 것이 명백한 집회 또는 시위’ 두 가지뿐이다. 폭력 등도 ‘명백한’ 경우에만 집회가 엄격하게 제한되는 것이다. 이 조항이 적용된 사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렸다.
심지어 경찰은 이날 건설노조 집회에 폭력행위는 없었다고 밝혔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 물건 파손이나 공무집행방해가 있었느냐’는 질문에 “그런 건 없다”고 답했다. 경찰의 말대로라면 집시법에 따른 최소한의 집회 금지 근거도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경찰은 건설노조 집회를 앞으로 금지 또는 제한할 수 있다고 앞뒤가 맞지 않은 말을 하고 있다.
건설노조는 “윤희근 경찰청장은 ‘건폭몰이’ 수사에 대해 양회동 열사 앞에 사과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입장을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