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올바른 역사의식은 없이 대결만 강조한 히로시마 회담

윤석열 대통령과 일본의 기시다 총리가 21일 히로시마의 한국인 원폭피해자 위령비를 참배했다. 대통령실은 “한국인 원폭희생자 위령비 참배는 한국 대통령으로서는 처음이며, 한일 정상이 공동으로 참배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라고 그 의미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두 나라의 아픈 과거를 치유”하고 “동북아,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핵 위협에 두 정상, 그리고 두 나라가 공동으로 동맹국인 미국과 함께 대응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대통령은 두 나라의 아픈 과거를 치유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것이 미국의 핵우산체제 하에서의 한미일군사동맹이라고 해석하는 듯하다.

한·일 두 정상의 이날 공동참배는 미국·영국·프랑스 등 서방7개국(G7)이 모여 북한·중국·러시아를 겨냥한 적대의식을 한껏 고취한 성명서를 채택한 뒤다. G7은 러시아에 대해서는 우크라이나에서의 핵무기사용 우려를, 중국에게는 핵전력증강정책 비난을, 북한을 상대로는 제재유지를 강조했다. 같은 날 한미일 정상도 따로 모여 인도태평양지역에서 3국 안보협력을 강조했다. 아픈 과거사를 억지로 끌어다 붙였지만 미국 주도의 대결 구도를 재확인한 것일 뿐이다.

히로시마·나가사키 두 지역은 한미일 3국 모두에게 아직까지 해명되지 않은 복잡한 문제들로 얽힌 공간이다. 미국은 50만명 규모의 민간인 사상자를 낸 1945년 원폭투하에 대해 지금까지 사과하지 않았고 일본은 그런 미국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의 핵우산 체제 아래에서 경제적 이익을 구하는 친미노선을 취해왔다. 한국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로 강제동원된 민간인 수만명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가해자들에 대해 이렇다할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정부의 공식입장인 ‘전쟁조기종결론’의 변형된 형태인 ‘식민지조기종결론’으로 입막음해왔다. 치유는 사실에 대한 인정이 우선이다. 원폭투하의 실제 목적은 전후 세계질서에 대한 미국의 패권의지 때문이라는 것과 50만명의 사상자 중 조선인과 중국인 피해자들이 10%에 달했다는 역사적 사실 말이다.

대통령실이 강조한 것 처럼 과거사 치유와 미래지향적 메시지가 제대로 전달되려면 한미일 3국의 각종 입장은 최소한 아래 다섯가지 정도가 포함되어야한다. 첫째 일본의 침략전쟁과 식민지화를 비판하고 일본의 가해책임을 분명하게 한 뒤, 둘째 미국의 원폭 사용에 대해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며, 셋째 ‘강제징용된 조선인’과 원폭 피해자들을 기억하고 위로해야하며, 넷째 핵확산 금지 뿐만 아니라 핵무기사용금지 원칙을 확인하고, 다섯째 핵보유국 간 군사적 대결이 첨예화되고 있는 위태로운 현실을 바꾸기 위한 의지를 보여야한다. 하지만 이번 히로시마 회담은 신 냉전체제를 고착화하는 대결정책에 위령비 참배라는 이벤트를 덧붙인 것에 불과했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