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원한다면 이상해도 괜찮아! 국립극단 청소년극 ‘영지’

3년 만에 다시 무대에

국립극단 청소년극 ‘영지’ ⓒ국립극단

“안녕, 난 영지야. 나는 새의 머리에 인간의 몸통에 개구리의 다리를 가졌어. 날개도 있고 꼬리도 있지. 내일은 또 다르고 모레는 또 달라.”

3년 만에 영지가 돌아왔다. 2019년 초연된 ‘영지’는 말괄량이 삐삐를 연상시키는 외모에 11살짜리 우주 대스타급 엉뚱함으로 무장한 아이였다. 3년 만에 돌아온 영지는 무언가 달라져 있었다. 배우가 달라졌으니 영지가 달라진 것은 당연하겠지만 영지는 성장해 있었다. 변함없는 11살의 아이였지만 영지는 분명 성장했다.

영지는 공연 전부터 무대에 나와 관객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무표정한 얼굴로 객석에 앉는 사람들을 하나하나 쳐다보더니 혼자서 춤도 추고 어슬렁어슬렁 무대를 오가기도 했다.

이번 시즌에서는 새롭게 제7의 멤버가 등장한다. 제7의 멤버는 이야기를 끌어가기도 하고 극의 등장인물이 되기도 하고 음악과 음향효과를 모두 담당하는 멀티맨이 되기도 한다. 초연의 무대가 동화 속 같았다면 이번 무대는 기괴한 소품과 사이키 조명, 대형 스크린으로 변하는 벽면이 좀더 성숙한 영지의 놀이터로 변했다.

영지의 방을 가득 채운 오브제를 보는 재미도 크다. 영지가 완전무결해 작은 쓰레기도 없을 것 같은 병목안 마을을 돌아다니며 모은 물건들이다. 영지는 이 물건들로 이야기를 만든다. 버려진 인형을 빼곡히 붙여 만든 스탠드, 알록달록 나비 스티커로 장식한 파란 소주 병, 인형의 얼굴과 동물 인형의 몸통을 이어붙인 아기 인형 등 영지의 상상이 만들어낸 오브제는 보는 재미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주요한 등장인물이 된다.

영지는 어떤 아이일까?


이쯤에서 영지를 다시 소개해 보자. 영지는 ‘가장 깨끗한 동네 1위’로 뽑힌 완전무결한 마을 ‘병목안’에 전학을 왔다. 이 마을에는 모범생 소희와 마을의 마스코트 효정이 산다. 소희와 효정은 엉뚱하지만 재미있는 이야기와 놀이를 만들어 내는 영지에게 빠져든다. 풍경화를 그려야 하는 미술시간, 영지는 자신이 그리고 싶은 양배추를 잔뜩 그려 놓는다. 또 수업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언가를 찾으러 가야 한다며 씩씩하게 교실을 나서기 일쑤다.

국립극단 청소년극 ‘영지’ ⓒ국립극단

‘정상’인 세상에 나타난 ‘비정상’같기도 하고 ‘비정상’인 세상에 등장한 ‘정상’같은 아이 영지. 누군가에겐 새롭고 누군가에겐 어딘가 위험해 보이는 영지를 병목안 사람들은 악마 아니면 마녀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런 ‘영지’는 어떻게 탄생되었을까?

국립극단 청소년극은 청소년이 창작의 주체이자 구성원이 되어 참여한다. 다양한 예술 프로젝트에 참여하여 리서치와 창작, 공연 제작에 협력하고 있는 청소년 파트너 17인과 연극과 교육을 연결하기 위한 교사들의 네트워크인 협력학교 교사들이 국립극단 청소년극의 구성원들이다.

‘영지’ 역시 이들과 다양한 리서치와 오픈 리허설을 통해 청소년들의 피드백을 받았다. 그러니 ‘영지’는 창작진에 의해 탄생했고 청소년들에 의해 성장한 캐릭터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영지는 시간의 흐름과 함께 조금씩 성장했다. 성장의 방향은 아마도 매 시즌 다를 것 같다. 이번 시즌에서 ‘영지’는 자기만의 문으로 떠남을 선택했다. 영지가 도착한 또 다른 세상엔 학업의 무게에 쓰러지는 아이도 없고 어른의 욕망을 대신하는 인형으로 사는 아이도 없기를 바라게 된다.

‘영지’는 청소년극의 또 다른 모습


청소년극 ‘영지’를 찾는 관객들은 다양하다. 청소년극은 청소년의 이야기이지만 무조건 청소년이 관람하는 것은 아니다. 그럴 필요도 없다. 지나온 청소년 시절의 기억을 돌아볼 수도 있고 청소년을 둔 부모여도 좋다. 어린이가 보아도, 청년이 보아도, 중년이 보아도 각자의 느낌으로 즐길 수 있다. ‘영지’는 이야기 뿐만 아니라 볼거리도 다채롭다. 이전 시즌 익명으로 등장했던 ‘악마 선생’들은 ‘뿔 선생’ ,‘뼈 선생’, ‘털 선생’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얻었다. 이름만큼이나 개성 강한 악마들의 등장은 관객들을 동화 속 어딘가로 데려간다.

국립극단 청소년극 ‘영지’ ⓒ국립극단

‘영지’를 떠올리면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음악’이다. 같은 음악이라도 각자 표현하는 몸짓이 다르고 같은 소리라도 반응하는 울림도 역시 다르다. 신개념 굿판 같기도 하고 아이들의 은밀한 의식 같기도 한 아이들의 춤판은 볼 때마다 신기하다. 흥겹다거나 신난다고 말하기 힘든 것은 필자가 너무 나이 들어 버린 탓이다. ‘영지’ 속 모든 음악과 소리, 움직임은 한번 보면 절대 잊기 어렵다. 완벽한 세상에서 완벽한 삶을 만들고 싶은 어른들과 달리 내일 또 다르고 모레 또 다른 자신을 만들고 싶은 영지와 친구들의 이야기는 청소년극의 또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영지’는 전 회차 한글 자막 도입, 배우의 대사에 자연스럽게 가미된 음성 해설을 제공한다. 오는 6월 11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선보인다. 또 서울 공연 이후에는 경남 의령 의경 군민 문예회관, 경기도 성남아트센터 앙상블시어터 등에서 지역 청소년 관객들과 만남을 준비하고 있다.

한편, 이 공연 종료 이후 ‘빨간 지붕’ 소극장 판이 있는 용산구 서계동 부지에는 새로운 공연장이 건립된다. 완공 후 국립극단은 이곳으로 다시 돌아온다.


청소년극 ‘영지’

공연날짜 : 2023.05.18~06.11
공연장소 : 국립극단 소극장 판
공연시간 : 평일 19시 30분 / 토, 일 15시(화요일 쉼)
러닝타임 : 70분(인터미션 없음)
관람연령 : 11세 이상 관람가
작 : 허선혜
연출: 김미란
출연진 : 김보경, 김지원, 박소연, 전선우, 지승태, 최지혜, 하재성
공연예매, 문의 : 국립극단(1644-2003)
* 전 회차 음성해설, 한글자막 진행/이동지원 서비스 매주 토요일 1일 3회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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