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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제도 수명 다했다”는데...바뀔 수 있을까

‘갭투자 유도’ 전세제도, 전세대출에 보증보험까지... 전세사기 먹잇감으로 전락

자료사진 (해당 기사와 관련 없는 사진입니다.) ⓒ뉴시스

우려하던 상황이 터졌다. ‘무분별한 갭투자’가 ‘전세사기’ 폭탄으로 돌아왔다. 한 사람이 갭투자로 적게는 수십 채에서, 많게는 수천 채의 집을 사들였다. 집을 새로 지어 시세와 전세가 역마진을 빼먹었다. 집값과 전셋값이 폭락하며 지옥도가 열렸다. ‘보증금 못 돌려주겠다’며 배째라고 나왔고, 파산신청으로 엑시트 전략을 썼다. 세입자와 연락을 끊고 잠적해 버렸다. 전국 수많은 세입자는 피 같은 전세자금을 날릴 위기 처했다. 보증금이 자산의 전부인 청년들의 죽음이 이어졌다. 피해자들은 전세사기를 ‘사회적 재난’이라 규정한다. 

전세제도에 대한 근본적인 고찰이 필요한 시점이다. 부동산 학자들은 “많은 사람이 전세사기에 대한 위험은 인식하게 된 지금이야말로 전세 비중을 축소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까지 “전세제도가 그동안 우리 사회에서 역할을 했지만 이제는 수명이 다한 게 아닌가 그렇게 보고 있다”고 말했다. 

전세는 다른 국가에서 보기 힘든 한국의 독특한 주택 임대차 제도다. 조선시대부터 전세와 유사한 제도가 존재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만큼 오랜 역사를 가졌고,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자리잡았다. 

전세제도는 국내 금융시스템이 제대로 잡기 전, 사금융 역할을 했다. 집주인 입장에서는 일정기간 집을 내어주는 대신 돈을 융통할 수 있었고 세입자는 목돈을 맡기고 거주권을 얻었다. 집주인은 보증금만큼의 이자를 절약할 수 있었다. 세입자는 월세 없이 양질의 주거환경을 누렸다. 집주인-세입자가 윈윈인 것처럼 보였다. 

18일 서울 용산구 대통령 집무실 앞에서 열린 전세사기·깡통전세 문제 해결을 위한 시민사회대책위원회 출범 기자회견에서 참석자들이 전세사기 문제 해결을 촉구하는 손팻말과 최근 사망한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추모하는 국화꽃을 들고 정부의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2023.04.18 ⓒ민중의소리

전세제도가 만든 ‘갭투자’... 전세사기 먹잇감으로 전락


전세제도 단점은 명확하다. ‘갭투자’를 유발한다. 최근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는 전세사기 역시 상당수가 ‘갭투자’를 악용해 수백, 수천 채의 집을 사들인 전세사기였다.

매매가가 3억원인 집 전세가가 2억원이라면 1억원만 가지고 집을 살 수 있었다. 집값이 오를 때 발생하는 이익은 갭투자를 유도해 가수요를 발생시킨다. 자금 여유가 없는 사람도 본인의 능력을 초과한 주택을 구입했다. 이른바 가수요다. 갭투자로 인한 가수요는 매매수요 증가로 이어져 집값을 끌어올린다. 이후 집값이 상승한 만큼 전셋값도 상승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구조다.

집값 상승기 갭투자는 ‘성공한 투자’처럼 보인다. 집주인은 전세계약을 갱신할 때마다 보증금을 올려 이익을 챙길 수 있다. 기존 세입자가 나간다고 해도 더 높은 보증금으로 새 세입자를 받으면 그만이다.

문제는 집값이 하락할 때다. 집값 하락으로 전셋값이 내려가면 그 차액을 세입자에게 보존해 줘야 하는데, 대책이 없는 경우가 많다. 갭투자를 두고 말만 투자일 뿐 ‘집값 상승’에 배팅한 도박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경기도 화성시 동탄신도시의 대규모 전세사기도 ‘갭투자’로 인해 발생했지만, 사기로 이어진 결정적인 이유는 ‘집값 하락’이었다. 동탄신도시 전세사기의 원흉인 박모씨 부부는 갭투자로 250여채에 달하는 오피스텔을 사들였다. 집값이 오를 때는 문제가 없었다. 이들 부부는 집값 상승기 계약을 갱신 때마다 보증금을 올려 차익을 챙겼다. 하지만 2022년 급격한 금리인상으로 집값과 전셋값이 함께 폭락하자,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나섰다.

전강수 대구가톨릭대학교 경제금융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세제도는 집값이 올라갈 때는 투기의 수단으로, 집값이 떨어질 때는 역전세나 깡통전세 문제를 불러온다”면서 “지금 당장은 전세사기로 인해 전세 수요가 사라질 것처럼 보이지만 시장이 다시 역전돼 집값이 올라가면 언제든지 다시 살아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처럼 갭투자를 통한 전세사기 수법이 가능했던 데는 ‘전세대출’ 제도도 한몫했다. 소득 등 개인의 조건과 상관없이 전세금의 80%까지 가능하다 보니 집주인이 요구하는 만큼 전셋값을 올려줄 수 있었다는 지적이다.

전세대출은 전세수요를 늘리는 데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전세가격이 3억원인 경우 금융권에서 80%인 2억4천만원을 대출받을 수 있다. 자기자본 6천만원만 있으면, 3억원짜리 전세를 살 수 있다는 의미다. 저금리 상황에서는 자기자본 20%마저도 마이너스 통장이나 신용대출 등으로 충당이 가능하다. 사실상 전세금의 대부분을 대출만으로도 조달할 수 있었던 셈이다.

전세대출이 세입자들의 주거 안정에 기여했다는 순기능을 무시할 순 없지만, 최근 5년 새 비정상적으로 폭증한 것도 사실이다. 폭등한 전셋값을 마련하기 어려운 서민·청년층은 전세 대출로 몰려든 것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7년 말 48조6천억원 규모였던 전세자금대출은 2022년 7월 170조2천억원까지 늘었다. 특히 20대의 대출 규모는 같은 기간 3조6천억원에서 28조1천억원으로 8배 가까이 급증했다.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를 방지하겠다며 추진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전세보증금반환보증’도 오히려 전세 사기를 부추겼다. 실제 보증보험 가입시 전세금 액수와 상관없이 전세금 전액을 보장해 준다는 점을 악용해 매매 가격 이상의 전세 계약을 체결하는 식의 수법이 생겨나기도 했다.

정부도 이 같은 문제점을 인식하고 HUG의 보증보험 가입 요건을 강화하는 내용을 이달부터 시행했다. 이에 따라 보증보험 가입 여부를 결정할 때 전세가율(주택가격 대비 전세가격 비율)은 90%가 적용된다. 주택가격 산정 기준은 공시가격의 140%다. 이전 기준은 전세가율 100%에 공시가격의 150%였다.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 교수는 “정부의 전세보증보험·전세대출 제도로 인해 세입자들은 문제 없이, 무리 없이 올라간 전세금을 다 댈 수 있었다”며 “전세대출을 초저금리로 해줬고, 보증보험은 사실상 다 가입할 수 있었다. 이런 구조 자체가 정부에서 사실상 갭투자를 하라고 판을 깔아준 것”이라고 꼬집었다. 

아파트. (자료사진) ⓒ제공 = 뉴시스

숨겨진 부채 ‘전세보증금’, 가계부채 리스크 과소평가 우려...
임재만 교수 “정확한 파악이 우선, 전월세신고제 즉시 시행해야”


전세보증금이 숨겨진 가계부채라는 점도 전세제도의 문제로 지적된다.

전세시장의 거래 자금은 국민경제의 흐름을 나타내는 자금순환계정에 반영되지 않는다. 전세보증금이 가계 부채인 동시에 자산으로 인정돼 상쇄되기 때문이다.

전세보증금은 가계부채의 지표인 가계신용통계에서도 제외된다. 금융중개기관을 통해 공급되는 자금만 집계하기 때문에 개인을 통해 공급되는 자금인 임대보증금을 포함하지 않는다. 결국 전세보증금을 고려하지 않은 가계대출 규모와 가계대출의 LTV(주택담보가치 대비 대출비율) 수준이 낮게 평가돼 한국의 가계대출 리스크가 과소평가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실제 한국은행이 공식 집계한 지난해 말 기준 가계신용 잔액은 1,867조원이다. 하지만 여기에 가계부채 관련 국제통계에 잡히지 않는 전세보증금을 반영하면 한국의 가계부채는 3천조원에 육박한다는 분석 결과가 나왔다.

지난 6일 한국경제연구원(한경연)이 발표한 ‘전세보증금을 포함한 가계부채 추정 및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최근 5년간(2017~2022년) 전세보증금을 포함한 국내 가계부채는 700조원 이상 증가한 것으로 집계됐다. 국내 전체 전세보증금 규모는 2017년 말 770조9천억원에서 2022년 말 1,058조3천억원으로 5년 새 287조4천억원(37.3%) 증가했다. 전세와 반전세(보증금이 월세의 240개월 치 초과) 보증금을 합친 것이다.

전세보증금에 금융기관 대출 등을 더한 가계부채는 같은 기간 2,221조5천억원에서 2,925조3천억원으로 703조8천억원(31.7%) 늘어난다.

보고서에 따르면 2021년 기준 한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105.8%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1개국 중 4위인데, 전세보증금을 포함하면 156.8%로 높아지며 1위로 올라간다. 소득에서 각종 세금과 부담금 등을 제외한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도 전세보증금 반영 전에는 206.5%이나, 이를 포함하면 303.7%로 높아진다.

한경연은 “고금리 상황에서 넓은 의미의 가계부채가 크게 늘어나면서, 언제든 우리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전세보증금이 국내 금융시스템의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전세사기로 인한 피해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세입자가 늘어나고 있는 만큼 전세사기 피해자들이 전세대출을 반환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전세대출을 갚지 못하는 세입자들이 늘어날수록 금융기관의 손실도 커지는 구조다.

임재만 교수는 “제대로 파악조차 안 되는 전세보증금에 대해 경각심을 가져야 한다”며 “최근 전국으로 확산하는 전세사기도 개인만의 피해로 보는 건 맞지 않다. 자칫 전 재산을 날린 피해자들이 전세대출을 반환하지 못하는 상황으로 이어진다면 그땐 금융시스템의 위기까지 초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임 교수는 “전세보증금으로 인한 문제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선 먼저 그 규모를 투명하게 파악하는 것이 우선돼야 한다”며 “정부는 전월세신고제 계도기간을 1년 더 유예할 것이 아니라 지금이라도 당장이라도 시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대차3법 중 하나인 전월세신고제는 보증금이 6천만원을 넘거나 월세가 30만원을 초과하는 경우 계약일로부터 30일 이내에 임대인과 임차인이 의무적으로 계약 내용을 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도록 한 제도다. 신고 의무를 어기면 최대 1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하지만 정부는 전월세신고제의 계도기간을 1년 더 연장할 방침이다. 지난 16일 원희룡 장관은 “주택임대차 신고라는 단편적 행정에 행정력을 쏟는 것보다는 임대차시장에 대해 전반적으로 큰 틀의 공사를 해야 한다”며 “전월세신고제 계도기간의 1년 추가 연장하겠다”고 밝혔다.

임 교수는 “전세보증금의 규모를 보다 정확하게 파악하기 위해선 전월세신고제 시행이 필수”라며 “전세제도를 손보겠다는 정부가 정작 전세보증금 규모를 파악할 수 있는 전월세신고제를 유예하겠다는 건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라고 꼬집었다.  

부동산업체 자료사진 ⓒ뉴시스

집값 ‘올라도, 내려도’... 집주인-세입자 갈등 커져


집값 급등락기 발생하는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갈등도 전세제도의 문제점 중 하나다. 그동안 아무 일도 없었던 것 같지만, 실제로는 과거 집값이 급격히 변화하는 상황이 발생할 때마다 집주인과 세입자의 갈등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됐다.

1980년대 말 경제호황과 수요급증으로 집값이 급상승할 때는 전셋값이 세입자의 지불능력 이상으로 상승한 바 있다. 전세가격 상승이 정점이던 1987년 1월부터 199년 4월까지 40개월동안 집값은 55.6%, 전셋값은 91.4%나 상승했다.

당시 ‘전세금을 올려 달라’는 집주인의 요구와 ‘더 이상 돈을 마련할 수 없다’는 세입자간의 갈등이 커졌다. 결국 세입자들은 전세보증금 마련을 위해 월 소득의 30% 이상을 주거비로 지불해야 했다. 전세금을 마련하지 못한 경우엔 집의 규모를 줄이거나 월세로 전환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1997년 말 외환위기 이후 집값이 급락하며 전년 대비 평균 12.4% 하락했다. 이 기간 전셋값도 18.5% 하락했다. 특히 서울이나 수도권 주변 도시의 경우는 집값이 22.5%, 전셋값은 40% 이상 폭락하기도 했다.

집값 하락도 집주인과 세입자간의 갈등의 원인이 됐다. 전셋값이 급락하면서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돌려주지 못하는 집주인이 많아졌고, 보증금을 돌려받으려는 세입자와의 갈등이 심화했다.

이 같은 전세제도는 결국 세입자들로 하여금 잦은 이사를 유발했다. 국토연구원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임차가구의 평균 거주기간은 3.2년에 불과했다. 자가가 아닌 세입자의 경우 3.2년마다 이사를 했다는 의미다.

반면 임대주택제도가 정착된 외국의 경우 임차가구의 평균 거주기간은 7~8년 정도다. 특히 OECD국가 중 임대주택제도가 가장 발달한 것으로 평가되는 독일은 임차가구의 평균 거주기간이 12.8년으로 한국의 4배에 달한다.

부동산 규제완화 자료사진 ⓒ뉴시스

“전세 당장 없애는 건 불가능... 지금이라도 줄여나가야”
공공임대주택 확충-자가소유 촉진-월세 안정화 필요


부동산 학자들은 이 같은 전세제도에 대해 “없어지는 것이 맞다”면서도 “오랜 시간 존재해 온 제도인 만큼 당장 없애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평가했다. 다만 최근 전세사기로 인해 전세제도에 대한 경각심이 커지고 있는 만큼 지금이라도 전세의 비중을 줄여나가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하지만 전세비중을 줄이는 건 쉽지 않다. 우선 장기공공임대주택 재고 확충이 필수다. 현재도 공공임대주택 수용에 비해 재고가 부족한 상황인 만큼 공공임대주택 재고 확보는 전월세시장 안정 기반 구축과 서민의 주거비 부담 완화에 크게 기여할 수 있다.

주택구입비용 경감을 통해 자가 소유를 촉진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가율을 높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택을 소유하는 데 드는 비용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 하지만 현재와 같이 주택가격 수준이 여전히 높은 상황에서 서민의 자가 소유는 어려운 실정이다. 부담 가능한 주택의 공급과 생애최초구입지원 강화 등을 통해 서민층의 자가소유를 촉진해 주거안정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월세시장 안정화도 필요하다. 월세에 대한 투명성 강화 및 분쟁 감소를 위해 임대료 인상 절차를 보다 구체화하는 식이다.

임재만 교수는 “전세시장 규모를 축소하기 위해서는 공공임대를 확대하고 민간임대를 축소하는 과정에서 월세의 안정화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내 부동산 시장의 대대적인 체질개선이 우선돼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전세제도를 없애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상황인 만큼 먼저 부동산 거래로 인한 불로소득 발생을 최소화하는 방식의 체질 개선을 통해 전세 악용을 막아야 한다는 것이다. 

전강수 교수는 “전세제도에 대한 문제 제기는 처음이 아니다. 10년 전에도, 20년 전에도 똑같이 있었다”며 “요즘처럼 사기로까지 이어지진 않았지만 역전세 문제가 있었고, 그때도 전세제도의 수명이 다했다는 평가가 나왔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 교수는 “전세의 문제는 전세시장에서 생기는 게 아니라, 부동산 매매시장에서 투기가 일어나고 꺼지는 일련의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라며 “전세제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투기가 주기적으로 일어나 나라를 흔들고, 꺼지면 또 난리가 나는 한국 부동산 매매시장의 문제를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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