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가는 어떤 존재일까. 단순하게 말하면 예술가는 작품을 만드는 사람이다.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가는 시인이나 소설가, 화가, 조각가, 작곡가처럼 대개 혼자 작품을 완성하는 사람이다.
하지만 직접 작품을 다 만들지 않아도 얼마든지 예술가가 될 수 있다. 가령 기타리스트나 드러머는 혼자 작업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연극이나 영화처럼 집단적으로 작업하는 장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예술가라면 홀로 골방에 틀어박혀 고뇌하면서 작업하는 낭만주의 시대 예술가의 모델을 떠올리곤 한다.
어쨌든 예술가는 함께든 홀로든 계속 작업하는 사람이다. 창작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사실 창작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예술가는 극소수 스타급 예술가 뿐이다. 대부분의 예술가들은 다른 직업을 병행하거나 예술과 관련된 일을 닥치는 대로 하면서 살아간다.
음악가 (자료시진) ⓒpixabay
사람들은 예술가가 아무 때나 일어나 생각날 때 먹고 자면서 하루 종일 작품을 고민하며 살아갈 거라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는데, 유명 예술가가 아닌 다음에야 창작만으로 생활을 꾸려가기는 불가능하다. 아무리 유명 예술가라도 그렇게 살다가는 건강이 상해 오래 작업하지 못할 게 뻔하다.
그러니 예술가는 예술과 관련된 일을 계속하면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한 사람이라고 해야 정확하다. (만약 물려받은 재산이 있다면 가문에 감사할 일이다.) 어떤 일을 해서든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노하우 뿐 아니라, 지속가능한 활동을 할 수 있는 평판, 실력,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이 때문에 예술가로 살아가기 위해 중요한 것은 천재적인 재능이나 넘치는 영감이 아니다. 사람들은 예술가들이 어렸을 때부터 천부적인 재능을 발견할 뿐더러, 가만히 있어도 영감이 샘솟을 거라 여긴다. 하지만 모차르트가 키워놓은 환상을 버릴 때가 한참 지났다.
가만히 있으면 찾아오는 건 잡생각 뿐이다. 영감은 예술가를 먼저 찾아오는 고마운 존재가 아니라, 예술가가 끝없이 찾아 헤매는 미꾸라지 같은 사냥감이다. 예술가는 영감을 찾기 위해 책을 읽고 음악을 듣고 영화를 보고 산책을 한다. 끊임없이 뭔가를 끼적이고 궁리하다가 다른 예술가들의 작품을 기웃거리고 자신의 작품과 비교하며 좌절했다가 돌연 우월감에 빠지기를 자동 무한 반복하는 사람이다. 어제 생포한 근사한 영감이 오늘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지거나 다시 보니 보잘 것 없어 망연자실한다. 그러다가도 다시 공책을 꺼내고 자판을 두들기는 사람이다. 예술가는 이 과정을 견디고 버티고 즐기고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래야만 예술가로 살아갈 수 있다.
예술가들은 '영감'을 얻기 위해 사색하고 또 사색한다(자료사진) ⓒpixabay
이런 사람의 내면이 늘 평화로울 수 있을까. 더 이상 창작 의뢰가 들어오지 않으면 어쩌나, 작품이 팔리지 않으면 어쩌나, 작품에 대한 평가가 좋지 않으면 어쩌나, 언제까지 쓰고 그리고 만들 수 있을까를 두려워하지 않는 예술가는 없다.
게다가 요즘은 예술가가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기 위해 뭐든지 해야 하는 시대 아닌가. 트위터,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은 기본이다. 유튜브도 해야 하고, 자신의 활동과 작품을 적극적으로 포장해 알려야 한다. 이제 예술가는 창작자인 동시에 자신에 대한 기획자이자 마케터 역할까지 짊어져야 한다. 어찌 보면 예술가의 삶은 소규모 자영업자의 삶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예술가에 대한 지원과 제도적 뒷받침이 늘어나긴 했지만 갈수록 많아지는 다른 예술가와 경쟁해야 한다. 그 뿐 아니라, 한정된 시간을 노리는 수많은 매체와 장르의 예술, 오락, 취미와 싸워 이겨야 한다.
발목을 잡는 것은 세상이나 다른 예술만이 아니다. 그저 살아가기 위해 해야 할 일은 또 얼마나 많은지. 입고 먹고 자기 위해, 누군가와 함께 살아가기 위해 챙겨야 할 소소한 일들은 결코 소소하지 않다. 그렇다고 창작의 고통이 다른 노동보다 우월하거나 가치 있다는 평가를 받아야 할 이유는 없다.
생계와 노동은 모두 제각각 간절하고 치열하다. 우리는 한 사회에서 살아가지만 다른 이의 삶과 노동이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가끔 잊고 산다. 바츨라프 스밀의 주장처럼 현대 사회는 시멘트, 암모니아, 철, 플라스틱 같은 물질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 예술이 가장 숭고하고 예술만 소중한 역할을 하고 있을 리 없다.
20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사거리에서 시민들이 우산을 쓴 채 퇴근길 발걸음을 재촉하고 있다. 2021.05.20. ⓒ 뉴시스
이런 세상에서 예술가는 어떤 역할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여전히 예술이 인간의 내면을 비추고 세상을 바꾼다 말하는 이들이 있고, 현장의 고통으로 달려가는 예술가들이 있지만, 요즘 사람들은 제각각의 관심에 따라 흩어져 자신만의 둥지로 들어가 버렸다. 사람들은 예술을 통해 큰 깨달음을 얻기보다는 공감할 수 있고, 위로 받을 수 있는 예술을 선호한다. 삶과 세상을 바꾸는 예술보다 자신을 멋지게 포장할 수 있는 예술, 이해할 수 있는 예술이 각광을 받는 시대다.
그래서 예술은 기꺼이 상품이 되거나 상품의 근사한 커버가 되기를 꿈꾼다. 이해하기 어려운 작품에는 대중의 무관심뿐 아니라 혹평까지 이어진다. 잃지 말아야 할 가치에 천착하는 작품보다 트렌디한 작품이 사랑을 받을 때, 또는 예술이 밥벌이조차 되지 못할 때 예술가가 절망하지 않기란 불가능할 것이다. 무너지거나 자신을 잃어버리기 쉬운 세상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현재보다 미래를 살아가는 사람일지 모른다. 지구를 구하지 못하더라도, 지금 인정받지 못하더라도, 번번이 실패하더라도 쓰고 만들고 다듬고 고치는 사람. 미래의 성공을 위해서가 아니라 언젠가 써낼 작품을 위해 작업실에 틀어박히는 사람. 작업실에서 세상과 사람을 들여다보고 품으려는 사람. 막상 만나보면 그다지 로맨틱하거나 사려 깊지 않고 평범하거나 괴팍할지라도, 그래서 예술가에 대한 환상을 와장창 깨트리더라도 작업하고 또 작업하는 그 사람이 예술가의 진실한 실체다. 그가 버티고 작품 안팎에서 싸우는 만큼 더 나은 작품이 나오며, 자신과 세상이 달라지고 깊어지고 넓어질 가능성이 자라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