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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미국의 반도체 횡포, 굴종할 이유 없다

미·중의 전략적 경쟁이 중국의 미국 마이크론 반도체 제재를 계기로 더욱 심화되고 있다.

중국은 21일 마이크론 제품에서 심각한 보안 문제가 발견됐다면서 자국의 중요 정보 인프라 운영자에게 이 회사 제품 구매를 중지하도록 했다. 미국이 2019년 대통령 행정명령으로 중국의 화웨이와 계열사를 '수출통제명단'에 넣은 것과 유사한 조치다. 트럼프 행정부에 이어 바이든 행정부도 지난해 10월 미국 기업이 첨단 반도체 장비를 중국에 수출하는 것을 금지한 바 있다. 미국이 중국을 글로벌 공급망에서 배제하려 하고, 이에 대해 중국이 맞대응하는 국면이 본격화된 셈이다.

미·중의 갈등은 우리에게도 번져왔다. 미 하원의 미중전략경쟁특위 위원장을 맡고 있는 마이크 갤러거 의원은 23일 "동맹국인 한국도 (한국 기업이 마이크론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을 차단하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고 밝혔다. 마이크론과 함께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중국에 지금보다 더 많은 반도체를 팔아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다.

갤러거 위원장의 발언은 외국 기업의 영업에 노골적으로 개입한 것이다. 걸핏하면 강조해 온 이른바 '규칙 기반의 국제질서'와는 거리가 먼 행태다. 문제는 미국의 이런 횡포가 이번 경우만이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은 이미 반도체법을 통해 우리 기업들의 재무·영업 정보를 내놓으라고 하고 있고, 기술 유출이 우려되는 생산 시설에 대한 접근을 요구하고 있다. 우리 기업이 투자한 중국 공장에 대해서도 사실상 철수를 요구했다. 단순히 미·중 갈등을 넘어 반도체 산업 전체에 대한 주도권을 되찾아오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단기적으로나 중장기적으로나 미국의 이런 횡포에 굴종하는 건 우리에게 전혀 이익이 될 수 없다. 중국이 우리 기업의 중요한 무역 상대라는 점도 그렇거니와 미국의 구상을 추종해 스스로 반도체 산업의 하위 파트너로 전락할 이유도 없기 때문이다. 일본의 반도체 산업이 1986년 미일 반도체 협정 이후 점차 몰락의 길을 걸었다는 점도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 무엇보다 정부가 나서서 미국의 부당한 외풍을 막아야 한다. 이런 문제까지 한미동맹을 앞세우는 건 자해 행위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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