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12월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촛불집회 모습. 당시 전국 수백 곳에서 열린 촛불집회 중 서울 광화문 촛불집회는 주최측 추산 최대 200만명이 넘는 인파가 모였다. 광화문 앞부터 서울시청 앞을 지나 숭례문 근처까지 인파가 몰렸다. ⓒ공동취재단
윤석열 대통령과 경찰 등 정부 부처, 국민의힘, 보수언론이 쏟아내는 말을 접하면 마치 불법집회로 경제활동과 일상생활이 마비된 것처럼 느껴진다. 건설노조를 향한 비이성적 ‘건폭몰이’와 이에 저항한 양회동씨의 죽음이 시민들에게 더 널리 알려지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느끼는 입장에서는 더욱 황당하고 기이하다.
불거지는 사안마다 민주노총 탓, 문재인 정부 탓을 쌍두마차로 내미는 윤 대통령은 집회에서도 같은 입장이다. 그러나 정부여당의 ‘불법집회’ 낙인과 이를 빌미로 한 ‘금지, 불허’가 얼마나 초법적이고 위헌적인지는 정권 핵심부의 법조인 출신들이 더 잘 알 것이다. 국회에서도, 법원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결국 사소한 위반사항을 빌미로 한 강경대응에 내몰린 경찰이 총대를 멜 판이다. 최루탄, 물대포도 없으니 방송차 앞세워 방패, 곤봉을 휘두르며 멀쩡한 집회에 체포와 진압을 실행해야 한다.
초법적, 위헌적 칼날을 휘두르는 게 전직 검찰총장인 윤 대통령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오늘의 윤 대통령을 낳은 것도 거슬러 가면 탄핵촛불이다. 늦은 나이에 검사가 돼 여주지청장이었던 윤 대통령은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을 청와대의 하명을 받은 검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수사하다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이후 2016년 12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밝히는 박영수 특검의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재기했다. 박근혜는 퇴진을 피하기 위해 개헌, 2선 후퇴와 국회의 총리 천거 등을 던졌으나 촛불집회로 결집된 여론을 돌리지 못했다. 새누리당도 탄핵을 막을 의석을 갖고 있었으나 여론에 눌려 분열했고 역사적 탄핵 가결이 이뤄졌다.
특검 수사를 격려하고, 박근혜의 꼼수를 제압하고, 국회를 압박해 최종적으로 헌재의 탄핵 결정을 이뤄낸 힘은 국민여론이었고 촛불집회가 중심에 있었다. 한겨울을 넘기며 20차례가 넘게 전국 수백곳에서 많게는 수백만이 참여한 촛불집회는 거대한 역사의 물결을 일으켰고 그 한 줄기에 힘입어 윤 대통령도 국민적 스타가 돼 정치적 자산을 확보한 셈이다.
그러나 지금 촛불집회가 열린다면 합법적으로 개최될 수 있을까? 최대 200만이상 모였다는 광화문 촛불집회는 경복궁부터 서울시청을 넘어 남대문 앞까지 모든 도로를 점유해 교통을 막았다. 엄청난 인원이 함께 하는 만큼 대형스피커의 소음도 당연히 기준을 훨씬 넘었다. 촛불집회 자체가 야간집회였고, 종료 뒤에도 상당한 인원이 늦게까지 남아 있었다. 청소도 열심히 했지만 인원이 인원인 만큼 집회물품 등 쓰레기도 엄청났다. 서울시와 인근 빌딩의 협조가 있었지만 화장실 등으로 인한 불편도 컸다. 우리나라 시민사회단체가 거의 모두 ‘박근혜 퇴진 범국민행동’에 참여했는데 지금 같으면 몇 차례 뒤 ‘불법집회 전력’으로 집회 자체를 하지 못할 수도 있고, 소음 기준 초과를 이유로 집행부가 현장체포 등을 당할 수도 있다.
자유주의자이자 법률 전문가인 윤 대통령은 서울 도심 한복판에서 한밤중에 20여 차례 열린 대규모 탄핵촛불에 대해 어찌 생각하는지 궁금하다. 그때는 고마웠으나 지금은 불법인가.
참고로 헌재 결정이 있던 날, 박근혜 탄핵을 반대하는 태극기집회는 진짜 무시무시했다. 회사가 헌재 인근에 있는 바람에 군복을 입고 태극기를 든 집회를 건물 위에서 내려다봤다. 소수 보수언론 외에 기자들 역시 폭력을 피할 수 없어 회사 마크를 가리기도 했다. 결국 경찰 버스를 밀어붙이다 사망자까지 나왔다. 지금도 해마다 박근혜 탄핵일에는 집회가 열린다. 폭력행위야 현행법에 따라 처리됐겠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헌법적 권리마저 빼앗고 집회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