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린폴리시] 내전에 몰린 수단, 미국이 이렇게 만들었다

수단에서 탈출한 독일 국민을 태운 독일 공군 에어버스가 24일(현지시간) 독일 베를린 쇠네펠트 공항에 착륙하고 있다. 2023.04.24. ⓒ사진=뉴시스

편집자주

수단에서는 지난 4월 15일부터 압델 파타 부르한 장군이 이끄는 정부군과 다갈로 사령관이 주도하는 RSF가 사실상의 내전을 벌이고 있다. 이들은 2019년 쿠데타로 30년 장기 집권한 오마르 알바시르 전 대통령을 축출한 뒤 2021년에는 과도 정부를 무너뜨리면서 권력을 장악했으나, 두 조직을 통합하는 문제를 두고 충돌하고 있다. 양측은 22일 밤부터 7일간의 인도적 휴전에 들어갔으나 24일에도 곳곳에서 산발적 전투가 이어진 것으로 전해진다. 현재까지 수천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고 130만여명이 삶의 터전을 잃었다. 이번 무력 충돌과 멀어진 수단의 민주화의 책임을 미국에게 찾는 포린폴리시의 기사를 축약해 소개한다.  

원문:  How the U.S. Fumbled Sudan’s Hopes for Democracy

2021년 10월 말, 미국의 최고 사절이 수단의 군 사령관 및 민간 최고 지도자와 만나 민주주의로의 불안한 이행을 논의했다. 군 사령관들은 미국의 아프리카 4국 특사인 제프리 펠트만에게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지지한다며 권력을 장악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펠트만은 10월 25일 수단의 수도인 카르툼을 출발해 워싱턴으로 향했다. 그런데 비행 중에 그는 한 가지 소식을 받았다. 그가 떠난 후 몇 시간 되지 않아 수단의 군 사령관들이 민간 지도자들을 체포하고 쿠데타를 일으킨 것이다.

이후 18개월 동안 미국은 신 군부와의 끈도 유지하고 이 동아프리카 국가를 다시 민주주의로 이끌기 위해 논란이 되는 일련의 정책을 펼쳤다. 수개월의 노력 끝에 최소한 서면 상으로는 새로운 희망이 될 만한 협상안이 마련됐다. 하지만 합의 직전에 수단 정규군(SAF)의 수장인 압델 파타 알 부르한 장군과 강력한 민병대 라피드 서포트 포스(RSF)를 이끌고 있는 모하메드 함단 ‘헤메티’ 다갈로의 무력 충돌로 카르툼 전역이 불붙으면서 모든 게 무산됐다.

수단의 민주주의 이행 과정이 무너지면서 워싱턴 외교가와 원조 관계자의 반발과 분노가 폭발했다. 미국이 수단 위기의 중심에 있는 두 장군의 힘을 키우고 두 사람 간의 갈등을 증폭시키는 한편 진정으로 민주주의를 원한 활동가들을 무력하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미국 관리는 “우리가 충돌을 막지 못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위협과 방관의 반복으로 부르한과 헤메티를 더욱 담대하게 만들고 민주주의 활동가들을 배척했다”고 했다.

부르한과 헤메티의 무력 충돌은 하룻밤 사이에 카르툼을 총격전과 공습, 박격포 공격이 난무하는 전쟁터로 만들었고, 수백만 시민과 외국 외교관을 위험에 빠뜨렸다. 수단은 붕괴 직전에 내몰렸고, 반세기동안 독재와 갈등으로 고통받은 수단에 민주주의를 가려오려던 서방의 프로젝트를 (아마 영구적으로) 훼손했다.

휴전 협상이 연이어 실패하자 수단이 전면적인 내전에 빠질 수 있다는 서방 관료와 분석가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그렇게 되면 이미 인도주의적 위기를 겪고 있는 이 나라, 특히 세계 무역량의 10%가 통과해 전략적으로 중요한 홍해 지역에 위치한 이 나라는 불안과 혼돈의 권력 공백에 빠져들 것이다. (에리트리아, 에티오피아, 소말리아, 소말릴란드, 지부티로 구성된 코뿔소의 뿔 모양을 닮은 아프리카 북동부의 돌출된 지역인) ‘아프리카의 뿔’의 유럽 특사였던 알렉산더 론도스는 “지금대로라면 수단은 1990년대 초의 소말리아처럼 국가가 완전히 붕괴할 것”이라고 했다.

무력 충돌 직전의 협상 과정을 잘 알고 있는 25명 정도의 서방 관계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드러난 미국의 정책은 심각한 결함투성이였다. 몇몇 관료가 협상 진행을 독점하면서 핵심 논의에서 다른 부처나 기관을 배제했으며 미국 수단 정책의 방향에 대해 점점 커지는 비판을 무시했다. 한 관계자는 “처음부터 유엔 회담의 성공여부와 그 효과에 대한 의문이 묵살됐다. 몇몇에 불과한 관료가 그런 경고를 철저히 무시하고 수단 국민을 파탄에 빠뜨린 협상을 모든 것을 해결할 이상적인 과정이라고 선전했다”고 했다. 게다가 카르툼 주재 미국 대사관이 수년 간 인력 부족에 시달렸고, 주요 기간의 대부분 동안 대사도 없는 상태로 운영돼 올바른 정책이 나오기가 더욱 어려웠다.

미 국무부에 있었던 전략국제연구센터(CSIS) 선임연구원 캐머런 허드슨은 “미국의 외교 당국이 수단에 대한 과거의 모든 지식과 경험을 잊어버린 듯했다. 수단의 장군들은 우리를 수십 년 동안 속였다. 수단 관련 일을 했던 사람이라면 이런 일이 여러 차례 벌어진 것을 목격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 국무부는 이런 비판에 강력히 반발했다. “우리는 2021년 10월 군사쿠데타 이후 자국민의 주도 아래 민간과도정부가 수립될 수 있도록 수단 시민을 지원하는데 집중했다. 우리는 특정 협상안을 받아들이라고 압박을 가하지도 않았다. 민주주의 회복과 민간정부의 수립을 위한 합의가 이뤄지도록 주요 행위자에게 압력을 가했을 뿐이다. 거의 끊임없는 외교적 노력이 이뤄졌고, 무력충돌이 일어난 2023년 4월 15일 이전에도 두 장군 사이의 긴장이 고조될 때마다 이를 완화하기 위해 민간인과도 긴밀히 협력할 때가 많았다”. 미 국무부 대변인의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의 세계적인 증진을 외교의 핵심으로 내세웠던 조 바이든 정권에게 수단은 미국 최악의 외교 실패 사례 중 하나로 남을 것이라고 많은 관료가 말했다. 무력 충돌 발생 이후 미국 외교관과 국민이 성공적으로 수단을 탈출했어도 말이다. 이 관료들은 교전 중이 양측이 빠른 시일 내에 휴전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번 위기가 수단의 국경을 넘어 큰 파급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하며 여러 경쟁국이 이 갈등을 대리전으로 변모시킬 위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편 수단의 여러 민주주의 활동가와 시민사회 지도자들과의 인터뷰로 민주주의의 종주국이자 수단의 민주화를 지지하는 국가로서 미국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음을 알 수 있었다. 협상과정에 참여했던 한 수단 관계자는 “미국과 서방이 제대로 나서든가 아니면 그냥 사라져야 한다. 이행하지도 않을 제재 위협이나 반복하고 마지못해 뭔가를 하는 시늉만 계속 하면 미국은 우리에게 도움보다는 해를 더 많이 끼친다. 미국에 대한 신뢰를 완전히 잃었다”고 했다.

2019년 국민의 민주화 봉기로 오랜 독재자 오마르 알바시르가 축출되자 수십 년 동안 국제적으로 천대를 받던 수단이 국제사회에 다시 합류할 발판을 마련했고 미국은 수단의 민주주의를 위해 수많은 외교적 자원과 수억 달러의 자금을 투자했다. 당시에는 수단이 성공 스토리가 될 것 같았다. 수단 여성이 주도한 국민 봉기로 세계에서 가장 악명 높은 독재자 중 한 명이 축출됐으니 바이든이 2021년 9월의 유엔 연설에서 세계적인 독재 정치의 부상을 비난하고 그런 추세와 가장 두드러지게 대조되는 국가 중 하나로 수단을 선전할 정도였다. “수단은 민주주의가 세계 어디에나 존재한다는 증거”라고 바이든은 자신 있게 단언했다.

그러나 불과 한 달 후에 부르한과 헤메티가 쿠데타를 일으켰다. 이후 미국은 약 7억 달러의 원조를 동결하고 1년이 지난 후 ‘수단의 민주주의 이행이 실패하게 된 데에 책임이 있거나 관련이 있는 모든 수단 현직 및 전직 관료’의 비자 발급을 제한했다. 세계은행과 국제통화기금(IMF)도 60억 달러의 재정 지원을 동결했다. 그러나 이런 제재로 부르한과 헤메티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 미국 관계자는 “당시 우리에게는 2가지 옵션이 있었다. 올바른 것은 부르한과 헤메티의 쿠데타를 인정하지 않고 수단 국민에게 미국이 민주주의 이행에 올인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었고, 올바르지는 않지만 좀 더 쉬운 것은 두 사람을 호되게 꾸짖은 다음에 그들과 계속 협력하는 것이었다. 우리는 두 번째 옵션을 선택했다”고 했다.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드는 다른 이슈도 있었다. 당시 아프리카를 담당하는 미국의 고위 관료들은 인근 에티오피아의 전쟁에 모든 힘을 쏟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북부 티그레이 지역에서 유혈 충돌로 약 20만에서 60만 명이 사망했다. 그리고 카르툼의 미국 대사관은 인력 부족으로 상황 파악조차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전임 미국 대사는 바시르가 축출된 지 3년이 지나야 부임했다. 그때까지 미국의 수단 정책을 직접 담당한 것은 아프리카 대학교육을 위한 파트너십(PHEE)이었다. PHEE는 미 국무부에 파견된 국제개발처(USAID) 관료인 데니 펄러튼과 긴밀히 협력하면서 부르한과 헤네티와 직접 대화했다고 한다. 이들은 본국의 지원 부족으로 수단 민주화 세력과 연결되지 못한 채 자신의 역량을 넘어서는 일을 떠안은 것이다. 워싱턴에는 미국의 수단 정책 방향성과 관련된 의문이 증가하고 있었지만 PHEE는 부르한과 헤메티에 대한 직접적인 제재나 다른 압력 수단을 사용하는 여러 정책 옵션을 무시하고 수단의 여러 민주주의 단체를 정치적 협상에서 배제했다. 미 대사관은 기존의 계획에 집중하며 직원들이 제시하는 새로운 제안은 고려하지 않았다. 하지만 국무부 대변인은 “내부 정책 논의에 대해서는 언급할 수 없지만, 국무부 지도부가 수단 정책에 대한 여러 제안과 다양한 의견을 주의 깊게 고려했고, 어떤 이의도 무시하거나 억압하지 않았다”며 이를 강력하게 부인했다.

그동안 부르한과 헤메티는 수단 전역에서 힘과 영향력을 확장하고 외국 세력의 환심을 사며 훗날 치명적인 갈등을 촉발할 점점 커지는 경쟁의 발판을 마련했다. 부르한은 이웃 이집트를 후원자로 삼았고 헤메티는 아랍에미리트와 러시아에 구애했으며 바그너 그룹과의 관계도 심화하기 시작했다. (바그너 그룹은 아프리카의 다른 지역과 우크라이나 전쟁에 깊이 관여하는 러시아 용병 집단이다). 2003년 발발한 수단의 다르푸르 분쟁에서 광범위한 잔학 행위에 연루된 헤메티는 부르한의 통치에 도전하기 위해 국제적인 홍보 캠페인으로 자기를 세계무대의 정치인으로 내세우려고 했다.

헤메티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전야였던 2022년 2월 23일 모스크바를 방문해 홍해의 전략적 무역로가 지나가는 수단 해안에 러시아 항구를 만들 가능성을 논의했다. 헤메티의 뻔뻔스러운 모스크바 방문으로 최고 의사 결정권자들이 드디어 효과 있는 새로운 제재의 방아쇠를 당길 것이라 믿는 관료가 많았다. 그러나 그런 일은 없었다.

그 무렵 적어도 하나의 보고서가 작성돼 국무부 아프리카 담당국 내에서 수단에 대한 미국 정책의 위험을 경고하고 부르한과 헤메티 간의 경쟁이 낳을 수 있는 여러 결과를 나열했다. 그러나 이 보고서는 초안이 심하게 편집되고 희석됐고, 결국 국 밖으로 전달되지 않았다.

2022년 9월 중동 및 북아프리카 지역 전문 외교관인 존 갓프리가 25년 만에 처음으로 수단 주재 미국 대사로 카르툼에 도착했다 그는 즉시 수단 민주화의 주도 세력인 레지스탕스 조직 및 시민단체와 소통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그는 곧 주어진 조건에 압도됐다. 특히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티오피아 사태로 정신없는 워싱턴의 무관심 때문에 어려움이 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PHEE와 갓프리는 영국, 유엔, 아프리카연합(AU)와 동아프리카정부간개발기구(IGAD) 고위 외교관과 함께 민간 정부 수립을 위한 노력을 재개했다.

지난 12월 수단 군 지도부와 민주화 세력 일부가 수 개월 내에 민간이 주도하는 과도 정부를 수립하기로 동의하는 진전을 이뤘다. 그러나 서방의 협상 중재자들은 부르한과 헤메티의 요구에 따라 시민사회와 민주주의 활동가들을 협상에서 배제하기로 결정해 군부에게 작은 승리를 안겨줬다. 게다가 12월 합의는 곧 폭발적인 문제가 될 하나의 주요 이슈를 미해결 상태로 남겼다. 그것은 헤메티가 이끄는 민병대 RSF를 부르한이 지휘하는 SAF에 편입시켜 수단에 단일한 통합 군대를 만드는 일이었다.

군 통합 문제를 둘러싼 부르한과 헤메티 사이의 긴장이 점점 고조돼 합의를 강행할 경우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이 컸다. 전문가들은 이를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워싱턴과 미 대사관은 성과를 내야 한다는 조바심에 어떤 상황도 낙관적으로 받아들일 태세였다. 그리하여 워싱턴은 합의안이 서명되는 즉시 새로운 과도 정부의 수립을 축하할 준비를 하고 있었고, 미 대사관은 부르한과 헤메티를 만나며 일상적인 업무를 처리했다. 미 국무부 후원으로 투어를 도는 미국 락 밴드가 3월에 와서 축제에서 공연을 하기까지 했다.

미 대사관은 여느 때처럼 운영되고 있었지만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합의안 서명식이 연기됐고, 또 한 번 연기 됐다. 부르한과 헤메티는 카르툼 주변으로 병력을 모으고 있었다. 직급이 낮은 외교관들과 협상에 참여했었던 수단 시민사회 관계자들은 인맥을 동원해 비공식적으로 워싱턴에 전쟁이 곧 발발할 것 같다는 얘기를 하라고 촉구했다. 그러나 워싱턴은 이런 경고 신호를 왜곡하거나 경시했다. 베르한과 헤메티가 카르툼 주변에 병력을 모은 게 처음이 아니었고, 침착함을 유지하라고 미국이 개입한 것도 처음이 아니었다.

4월 초가 되자 12월 합의 도출에 앞장섰던 갓프리 미 대사와 가일스 레버 영국 대사는 각각 휴가를 갔을 정도로 워싱턴은 합의에 대한 확신이 컸다. 베르한과 헤메티는 합의안에 서명했고, 워싱턴에서 국무부는 외희에 수단의 민주화를 지원하기 위해 3억 3천만 달러를 마련해 달라고 했다. 최악의 상황에 대한 준비는 없었다. 미 국무부는 오랜 기간 동안 수단에 대해 국민에게 ‘여행을 삼가라’고 권고했고, 4월 13일에는 북부 수단의 카리마를 피하고 외교관들에게는 카르툼을 벗어나지 말라고 했다. 그러나 미국은 민간 항공기를 통해 수단에 있는 미국인을 대피시키거나 외교관과 관계자를 카르툼에 집결시키지도, 비필수 인원의 철수를 지시하지도 않았다.

4월 15일, 부르한과 헤메티 사이의 긴장이 마침내 폭발했다. 헤메티 군은 총격과 미사일로 SAF 기지와 카르툼 국제공항을 공격했다. 해안에서 수백 마일 떨어진 인구 밀접 도시에서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차단됐다. 미 대사관 직원과 그 가족은 22일 군 헬기를 통해 탈출했지만 500만 수단 시민과 16,000명의 미국 시민이 전쟁터가 된 도시에 갇혔다. 워싱턴에서는 의원들이 이 사태를 미군의 수치스러운 아프가니스탄 철수와 비교하며 격분했다.

미국과 수단 이중국적인 지닌 의사 부시라 이브나우프도 당시 카르툼에 갇혔다. ‘미국에서는 내가 대체되지만, 수단에서는 내가 대체될 수 없다’던 그는 다른 의사들과 함께 부상자들을 돕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나섰다. 카르툼을 빠져나가려는 사람들이 줄을 섰다. 일부는 북쪽으로 도망쳐 이집트로 향했고, 일부는 위험한 육로로 항구 도시 포트수단으로 향했다. 물이 바닥났기 때문에 더 이상 카르툼에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지옥이 따로 없었다.

서방의 관리와 전문가들은 싸움이 곧 중단되지 않으면 수단이 내전에 휩싸일 것을 우려하고 있다. 수단에서의 교전은 시리아나 리비아처럼 전면적인 내전이 아니로 아직까지는 두 경쟁 세력 사이의 싸움이다. 그러나 휴전이 이뤄져도 어떻게 해야 수단이 다시 민주주의로의 이행을 시작할 수 있을지 불분명하다.

카르툼에서의 전투는 계속되고 있다. 일부 미국 시민은 미국이나 다른 국가의 도움을 받거나 다른 방법으로 대피에 성공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그런 행운이 따르지 않았다. 민간인을 돕기 위해 카르툼에 있던 의사 이브나우프는 4월 25일 가족들이 보는 앞에서 약탈범들에게 칼에 찔려 처참하게 살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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