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경영학에는 ‘인사관리’라는 분야가 있다. 기업이 노동자를 다룰 때 어떤 관점으로 대할 것인가를 연구한 학문이다.
20세기 중반까지 인사관리 이론의 핵심은 인적자원관리(HRM, Human Resources Management)라는 것이었다. 기업이 인적자원(Human Resources)을 대할 때 이들을 어떻게 잘 관리(Management)하느냐에 인사관리 이론의 초점이 맞춰졌다는 이야기다. 예를 들자면 이 노동자는 어느 부서에 배치할까, 저 노동자에게는 월급을 얼마를 줘야 할까, 승진은 언제 시켜주고 퇴직은 언제 하도록 해야 할까 등이 인사관리의 주요 업무였다.
그런데 20세기 후반 들어 인적자원개발(HRD, Human Resource Development)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했다. 이 개념은 기업이 인적자원(Human Resources)을 대할 때 이들을 잘 관리(Management)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역량을 개발(Development)시켜주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자들에게 교육 강좌도 제공하고, 해외로 교육도 보내주는 등 다양한 인력 개발을 위한 노력을 시작했다는 이야기다.
우리나라 기업들도 이런 이론의 발전에 영향을 많이 받았다. 과거에는 노동자들을 관리하는 팀의 이름이 대부분 인사팀이었는데, 요즘은 인재개발원이나 인력개발실처럼 팀 명칭에 ‘개발’을 넣는 경우가 많다. 이 또한 HRM이 HRD로 바뀌면서 생긴 변화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상품이 아니라는 선언
과연 엄청난 발전인가?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데 그와 별개로 여기서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다. 인적자원을 관리하는 것에서 개발하는 것으로 변하는 와중에도 기업이 노동자를 보는 변치 않는 시각이 존재한다는 점이 그것이다. 그게 뭘까? 바로 인적자원(Human Resources)이라는 단어다. 즉 기업은 인간을 본질적으로 ‘자원’으로 본다는 이야기다.
인간을 자원으로 보는 이 시각은 인간이 하나의 인격을 가진 존재라는 사실을 부정한다. 그리고 그 뒤에는 오로지 인간을 ‘얼마짜리 상품’으로 보는 계산적인 시각이 깔려 있다.
이런 시각은 노동자들의 임금을 결정할 때에도 잘 드러난다. 경제학에서는 물건의 가격이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본다. 그래서 주류경제학은 노동자들의 임금 또한 수요와 공급에 의해 결정된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만약 인간이 이렇게 거래되는 상품이라면 시장에 내놓은 상품(인간의 노동력) 중 자본가 입장에서 하자가 있는 상품들, 예를 들면 노인이나 장애인, 저학력층의 노동은 어떻게 처리될까? 시장 원리에 따르면 이들의 노동력은 매우 싼 가격에 거래되거나 아예 퇴출된다.
여기서 근본적 질문이 등장한다. 인간을 상품처럼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가능한가? 거래가 안 되는 상품은 버리면 그만이지만, 인간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노인이라는 이유로, 저학력층이라는 이유로 버리면 그들은 목숨을 잃는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의 목숨도 위험해진다.
탈상품화가 이뤄낸 복지국가
이번에는 다른 이야기를 하나 해보자.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게 잘 사는 나라를 꼽으라면 항상 그 첫머리에 이름을 올리는 나라는 북유럽의 복지 강국 스웨덴이다.
그런데 복지국가의 북극성이라 불리는 이 나라의 경제 철학이 무엇일까? 바로 ‘탈상품화(decommodification)’라는 것이다. ‘탈상품화’ 이론의 핵심은 인간을 어떤 경우에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으로 봐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1984년 스웨덴 총리였던 올로프 팔메(Olof Palme, 1927~1986)는 이 탈상품화 이론을 당시 집권당이었던 스웨덴 사민당의 철학으로 공언을 했다. 이후 탈상품화는 지금까지도 복지국가 스웨덴의 상징이 됐다. 1984년 하버드 대학교에서 팔메가 한 연설은 상품이 아닌 인간의 가치에 대한 그의 뜨거운 열망을 잘 나타낸다.
“자유주의자들은 시장이 잘 돌아가도록 하기 위해 연대나 동정심 같은 감정을 억누르라고 가르친다. 사유재산과 계약의 자유, 자유경쟁 같은 이념을 더 확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것이 소위 그들이 말하는 ‘시장의 마술’이다.하지만 나는 ‘시장의 마술’보다 ‘인간 온정의 마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사회의 목적은 인간의 삶과 동떨어진 그 어떤 것을 추구하는 이념이 아니다. 사회의 목적은 인간을 넘어서서 멀찍이 있는 그 무엇도 아니다.
사회와 제도는 지금 이곳에 있는 인간을 위한 것이다. 각자 삶의 목표를 성취해 가며 그들의 일상을 돕는 것이다. 사회와 연대의 목적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회의 자원을 활용해 삶의 크고 작은 과제를 성취해 나가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복지사회의 출발점이자 목적이다.”
실로 멋지지 않은가? 국가의 철학에 ‘인간 온정의 마술’이 등장한다. 우리가 사는 사회의 목적은 결코 국내총생산(GDP)이니 경제성장률이니 하는 숫자에 있지 않다고 선언한다. 사회의 목적은 인간 그 자체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한 나라의 철학이 이렇게 설정되면 그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다. 대학을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차별을 받지도 않는다. 사회적 연대가 확고해지면서 소외계층이 사라진다. 이게 바로 복지국가의 북극성이라 불리는 스웨덴이 그려가는 멋진 사회다.
한국 사회가 이렇게 변모하는 것은 불가능한가? 오로지 돈돈 거리면서 기업 민원이나 처리하는 데 혈안이 된 이 정부의 하는 모습을 보면 한숨부터 나온다. 하지만 우리는 우리의 꿈을 포기할 수 없다. 인간이 자원이 아닌 그 존재만으로 존중받는 복지 사회를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아직 너무나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