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신유청 연출과 박근형 배우가 만든 명품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국립극단 대표 배우 박근형의 60주년 기념 무대··· 자본주의 사회를 향한 날카로운 비판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포스터 ⓒ국립극단

고전극의 위대함은 인간에 대한 깊은 통찰과 언제나 유효한 동시대성에 있다. 이는 수많은 고전극이 수십, 수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끊임없이 무대에 오르고 관객을 감동시키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 같은 고전극이라고 해도 어떤 시기에 관객을 만나느냐에 따라 영향력이 달라지기도 한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그렇게 2023년 봄이라 하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5월, 우리를 찾아왔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현대 희곡의 거장 ‘아서 밀러’의 작품으로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된 이후 퓰리처상, 토니상, 뉴욕 연극 비평가상 등 연극을 대표하는 3개 상을 모두 휩쓴 현대 희곡의 걸작으로 불린다. 또한,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공연되고 사랑받는 20세기 최고의 작품 중 하나로도 꼽힌다.

경제 대공황으로 무너지는 중산층 가정의 모습


조금 낡았지만 평범한 중산층 가정집으로 한 남자가 들어선다. 그는 와그너 상사에서 30여 년 간 일해 온 세일즈맨 ‘월리 로만’이다. 윌리는 오늘도 영업을 위해 먼 지역을 다녀왔다. 이제 그는 나이가 들어 예전 같지 않다. 윌리의 아내 ‘린다’는 그런 윌리를 살뜰하게 보살핀다. 오랜 시간 집을 나가 생활했던 큰아들 ‘비프’가 돌아왔고, 아직 철이 없는 둘째 아들 ‘해피’까지 와 윌리의 집은 오랜만에 식구들로 꽉 찼다.

조금 삐거덕대고 다투기도 하지만, 윌리의 집은 평범한 미국 중산층 가정의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연극은 윌리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숨겨진 진실을 드러낸다. 윌리는 잘나가던 시절 회사 사장과 개인적인 친분을 나눌 정도로 성공한 세일즈맨이었다. 하지만 이제 인맥도 다 끊어지고 능력도 한계에 다다른 상태, 그에게 남은 것은 끝날 것 같지 않은 할부금 뿐이다. 게다가 예순까지 일하느라 만성피로와 환각 증세까지 겪고 있다.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공연 사진 ⓒ국립극단

큰아들 비프는 과거 뛰어난 외모로 풋볼을 잘하는 고등학생이었으며, 좋은 대학에 갈 수 있는 탄탄대로를 걷고 있었다. 윌리는 ‘재능과 인기만 있으면 성공할 것’이라 믿으며 비프에게 성공에 대한 지나친 환상을 심어 준다. 하지만 비프는 수학 과목에서 낙제해 고등학교 졸업이 불가능해진다. 그리고 보스턴으로 출장을 간 아버지를 만나러 갔다가, 불륜 장면을 목격하고 대학 진학을 포기해 버린다. 그 이후 비프는 정착하지 못한 채 떠돌이 생활을 한다.

둘째 아들 해피는 향락적인 생활에 빠져 살고, 아내 린다는 몸과 정신이 쇠약해져가는 윌리를 걱정하며 살아간다. 이들의 모습 뒤에는 경제 대공황이라는 시대 배경이 자리한다. 살인적인 물가와 높은 실업, 미래가 보장되지 않는 암울한 현실 속에서 한 중산층 가정이 몰락하는 모습은, 허우적댈수록 거미줄에 엉켜 먹잇감이 되고 마는 곤충들의 최후와 닮아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허상 속에 선택한 죽음

일과 성공에 갇혀 산 윌리를 에워싼 것은 ‘외로움’이다. 윌리는 자신의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을 느끼지만 도움을 주려는 친구의 손조차 잡을 수 없다. 과거의 성공에 갇힌 윌리에게, 변화하는 세상은 자리를 내주지 않는다. 그런 윌리가 의지하는 것은 과거와 환각 속에 등장하는 형의 존재다.

윌리와 가족들은 한 가닥 희망을 갖고 있었다. 비프는 오랜 방황 끝에 예전 직장의 사장 올리버를 만나 투자를 받겠다는 계획을 한다. 윌리는 자신의 회사 사장을 만나 세일즈 업무가 아닌 다른 일을 하는 부서로 옮겨 달라고 요청하며, 마지막 주택 할부금을 내기 위해 얼마의 돈을 가불하려 한다. 그리고 윌리는 두 아들과 함께 만나 새로운 시작을 축하하기로 약속한다.

어느 세일즈맨의 죽음 공연 사진 ⓒ국립극단

한때 잘나가던 자영업자가 자살하고, 존재조차 잊힌 이들은 고독사한다. 과로와 스트레스, 혹은 원인불명의 재해로 죽기도 한다. 일하다 죽기도 하고 여행을 떠난 길에 죽기도 한다. 모든 죽음의 이유가 다를 수는 있어도, 이들에겐 공통점이 있다. 행복했던 삶이 있었고 행복하고 싶었던 이유가 있었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수십 년 간 세일즈를 해 온 윌리의 죽음으로 끝이 난다. 그는 자신이 죽고 난 뒤 나올 고액의 보험금이 가족들의 미래를 살릴 것으로 생각한다.

명품 배우, 명품 연기, 명품 연극


연기 경력만 도합 백 년이 넘는 배우 박근형과 예수정의 연기는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의 감동을 증폭시킨다. 더불어 동시대성을 구현한 연극의 날카로운 비수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 한 무대에서 오고 가는 과거와 현재의 흐름이, 하나의 이야기처럼 흐르는 극의 구성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배우들의 연기가 새로운 명품 연극을 탄생시켰다.

“당신 보험금으로 마지막 빚을 다 갚아 드디어 자유로워졌는데”라는 아내 린다의 대사가 내내 머릿속을 채운다. 윌리가 평생 할부금을 갚아야 하는 세상이 아니었다면, 변하는 세상이 뒤처지는 사람들의 손을 잡아 주었다면, 사회가 거대한 울타리가 되어 주었다면 어땠을까? 세상은 빠르게 바뀌는데 왜 여전히 윌리 같은 이들이 자꾸 많아지는 걸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은 연극이 너무 현실 같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도 다양하게 각색되어 공연됐다. 이번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2020 백상예술대상 ‘백상 연극상’, 2020 동아연극상 ‘연출상’을 수상한 신유청 연출이 맡았다. 주인공 ‘윌리 로만’역에 대배우 박근형이 열연을 펼친다. 윌리의 곁을 지키는 ‘린다 로먼’역에는 배우 예수정이 45년 경력의 농도 짙은 연기를 보여준다. 큰아들 ‘비프 로먼’역에는 배우 성태준과 이형훈이 캐스팅되었다. 윌리의 둘째 아들 ‘해피 로먼’ 역은 배우 김동완과 윤상훈이 맡아 매력을 드러낼 예정이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은 오는 6월 7일(수)까지 국립극장 달오름에서 공연되며, 인터파크 티켓과 국립극장을 통해 예매할 수 있다.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공연장소 : 국립극장 달오름
공연날짜 : 2023년 5월 21일(일)~6월7일(수)
공연시간 : 화, 목, 금요일 19시 30분/수, 토, 일요일 14시/월요일 공연 없음
러닝타임 : 180분(인터미션 15분)
관람연령 : 14세 이상 관람 가능
원작 : 아서 밀란
연출 : 신유청
출연진 : 박근형, 예수정, 성태준, 이형훈, 김동완, 윤상훈, 신현종, 김보현, 박민관, 김유진, 이찬렬, 우가은, 이예원, 박승재
예매 : 인터파크 홈페이지, 국립극장 홈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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