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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세금 250억원 들여 40m 재벌총수 흉상 세우겠다니...제정신인가

울산시가 시비 250억원을 들여 기업인의 대형 흉상을 설치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현대그룹 창업주인 고 정주영 회장, SK그룹의 고 최종현 회장, 롯데그룹의 고 신격호 명예회장 등의 흉상을 30~40m 높이로 만들어 울산의 관문 지역 구릉 위에 세우겠다는 것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 4명의 얼굴 조각으로 유명한 러시모어산 국립공원의 '큰바위얼굴' 조각상과 비슷할 것이라는게 울산시의 설명이다. 사업비만 250억원이다.

듣는 귀를 의심하게 하는 이야기이지만 김두겸 울산시장은 진지하다. 김 시장은 31일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울산의) 영광의 시작은 기업에서 시작됐고, 그 창업주들의 업적을 기리고자 흉상 설치를 추진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이 사업을 통해 "부족한 인재, 높은 땅값 등으로 수도권 투자나 이전을 고려 중인 기업에게 울산 재투자를 유인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란다.

김 시장과 울산시가 '기리고자' 하는 이들은 이른바 재벌총수다. 전세계에 한국 밖에 없다는 '재벌체제'를 만든 장본인들이다. 극심한 정경유착과 문어발 확장, 편법 승계, 가혹한 노동 착취와 중소기업 후려치기가 이들의 전매 특허였고, 이로 인해 감옥을 들락거리기도 했다. 재벌체제는 현재까지도 이어지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점을 만들어냈다. 단지 이들이 돈을 많이 벌었고, 이들의 지배 하에 있는 기업들의 규모가 크다는 이유로 지방정부가 나서서 이런 일을 기획한다는 건 황당하기 그지없다. 이런 짓을 벌인다고 '오너가 2,3세'들이 울산에 재투자를 할 것이라는 기대도 어수룩하다.

30~40m에 달하는 대형 흉상이 높은 산 위에 세워진다고 생각해보면 괴기한 느낌마저 든다. 김 시장의 구상대로라면 울산을 오가는 사람들은 좋든싫든 이 흉상을 보게 될 것인데, 봉건시대의 송덕비도 그렇게는 못했다. 산 위에 세워진 초거대 흉상은 울산을 상징하는 '흉물'이 아니면 '조롱거리'가 될 것이 뻔하다.

울산시는 250억원의 재원을 전액 시비로 확보하기로 하고, 6월 시의회에 추경 예산안을 제출한 상태다. 추경은 본예산에 반영하지 못한 시급한 사업을 위한 것이다. 재벌 총수의 얼굴을 새겨 산 위에 올리는 게 그리 시급하고 절실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김 시장과 울산시는 정신을 차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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