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나지 않은 “정의연 오보 사태”, 입방아 오른 ‘그 의혹’이 만들어진 과정

30년 ‘위안부 운동’ 매도한 단독·속보 경쟁, 부실 취재...“하이에나 떼 같던 언론” 성찰 촉구한 시민사회

더불어민주당 윤미향 당시 당선인이 지난 2020년 5월 29일 국회 소통관에서 정의기억연대(정의연) 회계 부정 의혹 등에 관한 기자회견을 하고 있는 모습. (자료사진) 2020.05.29 ⓒ정의철 기자

3년 전 5월, 누군가에겐 손쉽게 주무르고 가볍게 입방아질한 하나의 기삿거리에 불과했지만 ‘일본군성노예제 문제해결을 위한 정의기억연대(정의기억연대)’에게 “정의연 오보 사태”는 현재 진행형이다. 30년 ‘위안부 운동’의 역사와 헌신, 사명감은 송두리째 부정당했고, 환부는 아물 새 없이 더 따가운 ‘모함’으로부터 깊어져 갔다.

지난달 31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상희·홍익표,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공동 주최하고, 민주언론시민연합·정의기억연대가 공동 주관해 열린 ‘정의연 오보 사태 언론에 무엇을 남겼나’ 토론회는 2020년 5월부터 쏟아진 정의기억연대 회계 부정 의혹, 윤미향 의원 악마화에 관한 기사들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주장으로 점철됐는지를 짚었다.

언론의 “몰이해”가 키운 허위 의혹들
하루 340건의 윤미향·정의연 보도


주제 발표를 맡은 조선희 민언련 활동가는 2020년 5월 7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언론이 왜곡한 것이 오보 사태의 출발점이라고 짚었다.

조 활동가는 “이용수 선생은 국회로 가는 윤미향 의원에 대한 서운함을 표시하며 ▲한일 국민 간 건전한 관계 구축을 위해 학생 간 교류와 공동행동 등 넓히는 교육사업에 집중해야 한다 ▲투쟁 과정에서 오류가 있다면 극복하고 시민사회단체 투명성을 제고해야 한다 ▲2015년 졸속합의 관련 시민사회 의견수렴 과정 및 정부 관계자 대화 내용 등을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할머니의 기자회견이 끝난 뒤, 남은 건 “‘윤미향 의원이 개인 계좌로 모금해 돈을 유용하고 가족에게 일감을 몰아줬으며 치매 상태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를 이용해 기부하게 했다”는 자극적인 프레임의 기사 행렬들이었다.

조 활동가는 “언론은 윤 의원의 시민단체 활동가 당시 월급과 자녀 유학비가 얼마인지 궁금해했고, 시민단체 회계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맥줏집 3,300만 원 지출’ 오보 등을 쏟아냈다”며 “언론의 집중적 의혹 제기와 검찰의 피의사실 흘리기, 언론이 이를 다시 받아쓰는 과정 등을 통해 의혹은 더욱 공고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 2월 해당 사건에 관해 1심 판결이 났고, 윤 의원은 대부분 혐의에서 무죄를, 함께 기소된 정의연 전 상임이사 김 모 씨는 전부 무죄를 받았지만 “언론은 이전 보도에 대한 반성 없이 기존 보도 내용을 기정사실화하거나 법원 판결 또는 검찰 수사를 비판”하는 모습이다.

민언련이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되는 지난 2020년 5월부터 9월 사이의 발행 기사 중 ‘윤미향’ 또는 ‘정의기억연대’ 키워드가 포함된 전체 보도를 살핀 결과, 언론보도로 촉발된 쟁점 가운데 10개 의혹을 추리면 다음과 같다.

보도로 촉발된 의혹들

①맥줏집에서 하룻밤 3,300만 원 썼다? ②국고보조금이 사라졌다? ③국고보조금을 ‘셀프심사’했다? ④윤미향, 기부금 유용해 아파트 샀다? ⑤윤미향, 기부금 유용해 딸 유학 보냈다? ⑥정의연, 윤미향 아버지에게 일감 몰아줬다? ⑦정의연, 윤미향 배우자에게 일감 몰아줬다? ⑧안성 쉼터 비싸게 사고 싸게 팔았다? ⑨길원옥 할머니 치매 이용해 돈을 빼갔다? ⑩윤미향, 개인 계좌로 장례비 모아 횡령했다?

①·②·⑧은 ‘국세청 공시를 보니 기부금 운영에 문제가 있다’ 방향에, ④·⑤·⑥·⑦은 ‘재산형성 과정이 문제 있다’, ③·⑨·⑩은 ‘보조금·기부금 모금이 문제 있다’에 관해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그리고 각각의 의혹을 첫 보도한 언론사와 기사 발행 날짜, 제목은 다음과 같다.

10개 의혹 각각의 첫 보도

① 한국경제(2020.05.11.), ‘[단독] 하룻밤 3300만원 사용..정의연의 수상한‘ 술값’
② 조선일보(2020.05.15.), ‘[단독] 정의연 4년간 13억 국고보조금 중 8억 사라졌다’
③ 조선일보(2020.06.16.), ‘[단독] 윤미향이 심사하고 윤미향이 받은 지원금 16억’
④ 조선일보(2020.05.18.), ‘[단독] 곽상도 “윤미향 2012년 2억원대 아파트 경매로 현금구매”’
⑤ 조선일보(2020.05.11.), ‘딸 미국 유학보낸 윤미향 부부, 소득세는 5년간640만원’
⑥ 한국일보(2020.05.15.), ‘[단독] 위안부 피해자 ‘쉼터’엔 할머니들이 없었다’
⑦ 중앙일보(2020.05.13.), ‘[단독] “정대협·정의연 소식지 편집회사 대표는 윤미향 남편”’
⑧ 한국일보(2020.05.15.), ‘[단독] 정대협 ‘수상한 회계’…기부금 받아 산7억대 ‘쉼터’ 7년 후 부채로 둔갑’
⑨ 조선일보(2020.06.12.), ‘[단독] 할머니 가족 “숨진 소장이 돈 빼내” 정의연 “아들이 돈 요구”’
⑩ 중앙일보(2020.05.14.), ‘[단독] SNS서 기부금 모금, 윤미향 개인계좌 3개로 받았다’

기사 대부분이 이 할머니 기자회견 이후 2주 이내에 쏟아져 나왔다. 조 활동가는 “네이버에 2020년 5월 7일부터 20일까지 검색 시 2주간 총 4,737건의 보도가 검색된다. 하루 340여 건의 윤미향·정의연 관련 보도가 쏟아져 나온 것”이라고 짚었다. 시민들은 어느 것이 사실인지 가릴 틈 없이 매일 반복적인 의혹 제기에 노출됐다.

끝없는 받아쓰기, 여전히 남아있는 기사들

조 활동가는 대부분 의혹 보도들이 사실관계는 정리하지 않은 채 모호한 주장만 담은 ‘묻지마 의혹 제기’였고, 의혹의 출처는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 검찰, 언론 자체 추론 등으로 다양했다고 언급했다. 그러면서 “언론이 제기한 의혹 상당수는 사실이 아니었거나 불기소 또는 무죄 판결을 받았다. 언론의 취재 의도가 이용수 선생 기자회견 요지에 부합했던 것인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해결 운동에 대한 성찰적 접근이었는지 평가가 필요한 대목”이라고 강조했다.

정의연 측의 해명·반론을 기사 방향에 맞춰 취사선택해 쓴 기사, 사실 확인이 부족한 상태에서 취재된 단편만 비춰 보도한 기사, 정치권의 의혹 제기를 사실 확인 없이 인용한 기사, 앞서 타 언론사에서 나온 기사 흐름에 맞춰 ‘자극적인 제목’만 추가해 받아쓰는 기사 등을 통해 의혹은 계속해서 확대 재생산됐다. 특히 정의연의 해명·반론이 있어도 일부 언론은 이를 묵살한 채 변함없이 같은 의혹 제기를 반복했다. 조 활동가는 정의연이 언론중재위원회에 정정보도 및 손해배상을 청구한 언론사는 일부일 뿐, 아직도 바로잡아야 할 보도들이 온라인에 쌓여 있다고 했다.

조 활동가는 “‘정의연 오보 사태’는 단순한 검찰 발 받아쓰기 보도 문제로만 볼 수 없다. 정치권력과의 결탁, 검찰 권력과의 유착, 기자의 무지와 취사선택, 기능하지 못한 데스크, 저널리즘 본령에 대한 오해, 단독 보도 남발, 무분별한 받아쓰기 등 한국 언론의 낡은 인식과 고질적 관행이 만든 사건”이라며 “사법부는 윤 의원의 유무죄를 판단할 뿐 정의연 보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해 주지 않는다. 언론의 자성이 언론 스스로의 신뢰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라고 당부했다.

수요시위(자료사진) ⓒ뉴시스

“하이에나 떼 같던 언론...오보 사태 끝나지 않아”

토론자로 나선 강경란 정의연 연대운동국장은 “정의연 마녀사냥에 나선 세력들은 역사문제를 봉합하려는 데 방해가 되는 운동단체를 흠집 내려 각자의 힘을 보탰다”며 “정의연이 주도하는 일본군 ‘위안부’ 운동, 일본에 역사 정의를 요구하는 운동이 가장 걸림돌이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강 국장은 3년 전을 떠올리며 “언론이 우리 말을 어떻게 편취하고 이용할지 몰라 무서웠고, 우리가 잘 대응하지 못해 지난 운동 성과가 무화되고 정당성이 훼손될까 두려웠다”고 토로했다. “기사 클릭을 유도하기 위해서 뭐든 하는, 언론 보도 준칙을 잊은 하이에나 떼 같았다. 취재를 했거나 무슨 단서가 있어 보도를 하는 게 아니라 이슈가 되어 지금 사람들이 관심이 있으니 일단 쓰고 보자는 식이었다.”

그 과정을 “일사불란하게 짜인 각본의 수순”으로 기억한 강 국장은 “‘정의연 오보 사태’를 보면 단독, 속보 경쟁을 위해 불충분한 1~2명의 취재원 수, 부실한 취재 내용, 심지어는 한 명이 본인의 생각만으로 주장하는 내용들을 그대로 기사화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했다. 언중위 제소 등 대응에도 몇백, 몇천 건의 보도가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지는 상황에서 피해구제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강 국장은 “오보 사태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힘주어 말했다. 강제동원 피해자 지원 단체, 노동조합 등 시민사회를 향한 부당한 공격과 여권, 일부 언론의 합작은 여전히 득세하고 있다. 강 국장은 “부당한 공격에 결코 침묵하지 않고 굳건히 연대 단체들 곁에 설 것”이라며 “2020년의 포화 가운데서도 정의연이 망하지 않은 이유는 언론이 제기한 회계 부정이 없었기 때문”임을 다시금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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