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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그들끼리 채용 드러난 선관위, 근본적 쇄신에 나서야 한다

지난달 31일 노태악 중앙선거관리위원장은 전날에 이어 다시 한번 “송구하다”고 말하며, 외부기관과 함께 전현직 직원에 대한 전수조사를 하는 등의 대책을 발표했다. 지금 선관위는 부정채용 사례가 속속 드러나면서 창설 이래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거의 똑 같은 형태의 채용비리로 김세한 전 사무총장이 사퇴했던 것이 불과 1년 2개월 전이다. 이번 사태는 선관위 내에서 이런 비리와 부도덕한 관행이 얼마나 뿌리 깊고 광범위했는지 드러내는 사례다.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만 봐도 이 문제는 한두 사람의 일탈로 치부될 수 없다. 응시 대상자의 인적사항이 이미 기록되어 있는 황당한 ‘채용 계획’ 문건이 발견됐다. 그리고 이들은 면접위원 3명 전원의 만점을 받아 합격했다. 이 채용은 별도의 모집 공고도 없이 해당 지자체의 추천을 받는 비다수인 대상 채용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런 식으로 지금까지 드러난 사례만 11건이고, 대상과 친인척 범위를 넓혀서 전수조사를 해 보면 얼마나 광범위할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다.

채용 후의 상황도 석연치 않다. 지난 해 채용된 박찬진 사무총장의 자녀는 9급 공무원인 상태에서 경력직 채용 된 후 6개월 만에 8급으로 승진했다. 송봉섭 사무차장의 자녀도 1년 3개월 만에 8급에서 7급으로 승진했다. 작년에 사퇴한 김세환 전 사무총장 자녀는 8급 공무원인 상태에서 선관위에 채용된 뒤 6개월 만에 7급이 됐다. 보통 8급에서 7급으로 승진하는데 5년 이상 걸리는 점을 생각해 보면 모두 이례적으로 빠른 승진이다.

사실상 음서제도나 다름없는 채용이 이루어지고 채용 뒤에도 누가 봐도 이상한 초고속 승진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진 곳이 다름 아닌 공정한 선거관리를 사명으로 하는 선관위였다. 그래서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 민주주의에 대한 신뢰 그 자체를 뒤흔들 수 있는 사건이다. 철저한 조사를 통해 뿌리를 뽑지 못하면 선관위에 대한 신뢰는 쉽게 회복될 수 없다.

선관위원장은 현직 대법관이 겸임하고, 9명의 선관위원은 대통령과 국회, 대법원이 각각 3명씩 지명해서 선출한다. 이들은 대부분 비상근이고, 보통 사무총장이 승진하는 상임위원 1명이 상근자다. 임기가 끝나면 떠날 외부인들을 제외하면 선관위 내부에서 승진한 상임선관위원과 사무총장, 사무차장 세 사람이 실세일 수밖에 없는 구조다. 그런데 선관위는 헌법상 독립기관으로 외부의 감시가 사실상 없다시피 한 조건이다. 선관위는 감사원으로부터도 회계 감사를 받을 뿐 직무 감사는 받지 않는다. 내부 감사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 견제장치가 아무 것도 없는데, 조직의 실세들부터 채용비리의 주범이니 내부 통제가 제대로 이루어졌을 리 없다.

부패하기 딱 좋은 토양에서 수십 년 관행이 더는 감출 수 없을 만큼 쌓여서 터져 나왔다. 그런 의미에서 노 선관위원장이 이날 내놓은 ‘외부기관과의 전수조사’ 정도로는 한참 부족하다. 기본적으로 선관위의 정보제공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자체 조사는 최소한의 신뢰도 받기 어렵다. 이미 드러난 비리에 대한 철저한 수사와 아직 드러나지 않은 비위에 대한 전면적인 조사는 기본이고 다시는 이런 일이 반복되지 않기 위한 구조 개혁 논의도 뒤따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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