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소픽

미중 갈등 속 반도체 부활 꿈꾸는 일본…그리고 한국

미국 기술 절실한 일본, 대중 수출 높은 한국…라피더스 2나노 양산도 전망 회의적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05.21. ⓒ뉴시스

일본이 미중 갈등 속에서 반도체 부활을 꾀하고 있다. 미국의 중국 제재에 동조하면서, 기술 지원을 얻어내고 있다. 미국으로부터 실익을 얻지 못하는 한국과 사뭇 다른 모습이다. 한국은 중국 배제에 따른 피해가 큰 만큼, 일본과는 다른 전략을 취해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일본은 첨단 반도체 양산을 위해 설립한 신생 기업에 대규모 자금도 지원하고 있다. 전망이 밝지만은 않다. 현지에서 비판 여론도 고조되고 있다. 반도체 세액공제 확대로 ‘재벌 감세’ 지적이 제기되는 한국 상황을 돌아보게 한다.

2일 업계에 따르면,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과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미국 디트로이트에서 회담한 뒤 ‘미일 상무·산업 파트너십(JUCIP)’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미국과 일본은 경제 협력 강화를 약속했다. 양국 통상 장관은 공동성명에서 “양국과 세계 경제가 다양한 경제적 도전과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는 가운데, 미일 협력을 심화하는 것이 양국 경제적 번영과 안보를 강화하고 지역 경제를 유지·강화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점을 재확인했다”고 밝혔다.

핵심은 반도체다. 공동성명에는 “미국 상무부와 일본 경제산업성은 보다 탄력적인 반도체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접근 방식에 대한 강력한 일치를 확인했다”는 문구가 담겼다. 미국과 일본이 얘기하는 ‘탄력적인 반도체 생태계’는 한국과 대만에 집중된 칩 생산 공장의 분산이다. 양국은 공동성명에서 “반도체 공급망 탄력성을 약화시키는 생산의 지리적 집중을 해결하기 위해 협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미국 마이크론 점유율은 D램 25%, 낸드플래시 12%에 그친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시장은 한국 기업이 장악하고 있다. 파운드리(위탁생산) 분야는 대만 TSMC와 삼성전자 점유율이 총 75%에 달한다. 미국은 설계와 장비, 일본은 소재·부품·장비에서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생산 분야에 있어서는 한국과 대만에 의존하고 있다.

김양팽 산업연구원 전문연구원은 “공동성명에 언급된 '반도체 생산의 지리적 집중 해소‘는 미국이 추진하는 전략”이라며 “생산 공장을 분산하기 위해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짓도록 하고, 일본 내 공장 건설을 지원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구체적인 방안도 제시됐다. 미국과 일본은 차세대 반도체 개발을 위해 기술 개발과 인재 육성에 관한 로드맵을 마련하기로 했다. 미국이 설립을 추진 중인 ‘국립반도체기술센터(NSTC)’와 일본 정부가 지난해 만든 ‘기술연구조합 최첨단 반도체기술센터(LSTC)’ 간 협력을 촉진한다. 미국 NSTC는 차세대 반도체 연구개발 허브 역할을 할 전망이다. 국제 표준과 기술 로드맵을 설정하는 데 있어 독점적인 권한을 행사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지난해 설립된 LSTC는 일본의 첨단 반도체 연구개발 거점이다. 도쿄대를 비롯한 주요 대학과 국책 연구기관 등이 참여하는 산관학 협력 네트워크의 중심이다.

미국과 일본은 이른바 ‘경제 2+2’로 불리는 미일경제정책협의회(EPCC) 2차 회의도 조만간 갖기로 했다. 회의에는 양국 외교·통상 장관이 참석한다. 지난해 7월에 열린 1차 회의에서 양국은 ‘첨단반도체에 관한 공동 연구개발’을 논의하고, 공동 연구개발을 통해 2나노 반도체 양산을 추진한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지나 러몬도 미국 상무장관(왼쪽)과 니시무라 야스토시 일본 경제산업상은 지난달 26일(현지 시간) 미 디트로이트에서 회담한 뒤 ‘미일 상무·산업 파트너십(JUCIP)’ 공동성명을 발표했다. ⓒ일본 경제산업성

미국 지원으로 반도체 부활 꾀하는 일본…“한국은 달라야”

미일 반도체 기술 협력 중심에 신생 파운드리(위탁생산) 기업 라피더스가 있다. 지난해 8월 일본 대표 기업 8곳이 출자해 설립한 반도체 기업이다. 오는 2027년 2나노 반도체 양산을 목표로 한다. 현재 양산되는 최선단 공정은 3나노다. 삼성전자와 TSMC의 2나노 양산 목표 시점은 2025년이다. 공정이 미세해질수록 기술 개발과 생산 안정화에 많은 시간과 자원이 투입되는 만큼, 신생 기업 라피더스의 목표는 도전적으로 평가된다.

미국 기술이 뒷받침한다. 라피더스가 참여하는 일본 LSTC가 미국 NSTC의 지원으로 첨단 설계·장치·소재 기술을 연구개발한다. 미국의 반도체 핵심 기술이 일본 LSTC를 통해 라피더스로 들어가는 구조다. 라피더스의 히가시 데쓰로 회장이 LSTC 이사장을 겸직한다. 히가시 회장은 반도체 장비업체 도쿄일렉트론의 회장을 역임한 바 있다.

라피더스는 미국 IBM과도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양사는 차세대 반도체 공동 개발 협약을 맺었다. 라피더스 소속 개발자가 IBM 연구개발 시설에서 기술을 배운다. 지난달 30일 현지 언론을 통해, 라피더스가 지난 4월부터 IBM에 개발자를 보내기 시작했고, 총 파견 인력을 100명으로 계획하고 있다는 보도가 전해지기도 했다. 앞서 IBM은 지난 2021년, 세계 최초로 2나노 공정을 적용한 반도체 테스트 칩을 개발했다고 밝힌 바 있다.

라피더스와 IBM 간 협업은 단순히 민간 차원에서 이뤄진 것이라고 보기 어렵다. 미국과 일본의 정부가 반도체 동맹 강화의 일환이다. 지난 1월 미일 통상 장관 회담에 IBM과 라피더스 경영진이 참석해 2나노 반도체 공동 개발을 공식화했다.

일본이 미중 갈등 국면에서 반도체 부활을 꾀하는 모양새다. 미국의 중국 제재에 적극 동조하며 기술 지원을 끌어내고 있다. 일본은 오는 7월부터 웨이퍼에 회로를 새기는 노광장비와 세정·검사에 사용하는 장비 등 첨단 반도체 분야 23개 품목을 수출 규제 대상에 추가할 방침이다. 앞서 미국은 지난해 10월부터 중국에 대한 첨단 반도체 장비 수출을 금지하고 있다. 일본은 이번 수출 규제가 모든 국가에 적용돼 중국을 겨냥한 게 아니라고 하지만, 미국의 중국 제재에 보조를 맞춘 것이라는 시각이 많다.

한국 외교 기조도 미국에 쏠려있다. 한미일 협력 강화를 내세우는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 4월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 등 미국과 거리를 좁히고 있다. 방미 직전에는 로이터통신과 인터뷰에서는 대만 해협 긴장 상황과 관련해 “힘으로 현상을 바꾸려는 시도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언급해, 중국을 자극했다. ‘미국 쏠림’ 외교에도 한국은 이렇다 할 실익을 얻지 못하고 있다. 미국 반도체법상 영업기밀 요구와 중국 내 증설 제한 등은 한국의 투자 기업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는 가운데, 한국 정부는 미국 측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다. 오히려 미국은 한국 정부를 향해 ‘중국의 마이크론 제재를 이용하지 말라’며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중국 판매를 통제하라고 압박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은 반도체 산업 구조가 다른 만큼 대응도 달라야 한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한다. 한국은 걸출한 종합반도체 기업을 보유하고 있으며, 중국을 최대 판매 시장으로 두고 있다. 미국도 기술과 시장 측면에서 중요하다.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이루는 게 최선이라는 얘기다. 일본은 중국과의 관계가 상대적으로 옅다. 반도체 생산보다는 소부장이 강하다. 생산 능력을 갖추기 위해 미국의 기술이 절실하다.

이종환 상명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교수는 “한국은 중국 수출 문제가 있어 미중 사이에서 뚜렷한 스탠스를 취하지 않는 게 좋다”며 “자꾸 미국 쪽으로 기우니까 실제 이익은 줄어드는 형국”이라고 말했다. 이어 “일본은 중국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며 “미국의 지원으로 빨리 반도체 생산 경쟁력을 키우려는 전략이 가능하다”고 했다.

주요 업체별 차세대 반도체 개발 및 양산 계획 ⓒ산업연구원

‘어벤져스’ 라피더스 둘러싼 우려

라피더스는 일본 정부가 추진하는 반도체 부활 전략의 일환이다. 미국으로부터의 기술 지원은 반도체 재기를 위한 포석인 셈이다. 1980년대 반도체 시장을 주름잡았던 일본은 시장 수요와 동떨어진 기술 개발에 집중하다가 몰락했다. 가령 PC와 휴대폰 등 수요처는 고성능 반도체를 요구하는데, 일본 기업은 성능 향상보다 내구성 강화에 골몰했다는 평가다. 일본이 첨단 산업 근간이 되는 반도체 산업을 장악하자 위기감을 느낀 미국의 제재도 타격이었다. 미국은 일본과 반도체 협정을 맺어, 일본 반도체 가격을 일정 수준 이하로 내리지 못하게 통제했다. 일본 반도체는 가격 경쟁력을 잃고 쇠퇴해 갔다.

지난 2021년 일본이 발표한 ‘반도체 산업 전략’에 2나노 반도체 생산 계획이 담겼다. 일본 반도체 경쟁력은 소부장 분야에 국한된다. 생산 분야에서 경쟁력이 미미하다. 반도체 생산 공장 수는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나, 대부분 노후화됐다. 40나노 이상의 로우엔드 공장이 주를 이룬다. 첨단 반도체 설계 능력은 전무한 수준이다. 첨단 반도체 생산 공장을 갖추는 게 일본 정부 전략의 골자다. 일본 경산성은 “미중 기술 패권 대립에 의해 반도체 확보는 경제안전보장과 직결되고 있다”며 “국내 반도체 생태계에서 놓친 분야인 첨단 반도체에 대해 외국 파운드리와 합작 공장을 설립하는 등 일본 산업 분야(정보통신·자동차 등)에 불가결한 국내 제조 기반을 확보해야 한다”고 반도체 산업 전략 배경을 설명했다.

라피더스의 목표 달성에 회의적인 시각이 제기된다. 출자 기업 면면을 보면 반도체 수요 기업이 중심이다. 세계 1위 완성차 기업 토요타를 비롯해 자동차 부품 덴소, 일본 1위 통신사 NTT, 통신·전자기기 기업 일본전기주식회사(NEC)가 참여한다. NEC는 1980년대 반도체 생산 세계 1위를 차지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반도체 사업에서 철수한 상태다. 정작 반도체 기업은 소니와 키옥시아뿐이다. 소니는 스마트폰 카메라에 사용되는 이미지센서를 만든다. 해당 시장에서 세계 1위를 달리고 있으나, 첨단 미세공정과는 거리가 있다. 키옥시아는 낸드플래시에서 2, 3위를 다툰다.

미국으로부터 기술을 들여온다고는 하지만, 반도체 양산은 기술만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양산의 바로미터는 수율이다. 수율은 웨이퍼 한 장에서 생산한 반도체 칩 가운데 결함이 없는 합격품의 비율을 이른다. 기술이 있으면 시제품을 만들 순 있지만,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수율이 뒷받침돼야 한다. 첨단 반도체 생산은 고도의 암묵지를 요구한다. 같은 장비라도 배치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 소재의 미세한 변화도 제품 품질에 큰 영향을 미친다. 각종 소재와 장비 사이에서 최적의 효율성을 찾는 데에는 경험의 축적이 필요하다. 반도체 생산 분야에서 10년 이상의 잃어버린 시간을 보낸 일본이 단기간에 양산 능력을 갖출지 의문이 제기되는 배경이다.

김양팽 전문연구원은 “기술적으로 생산은 가능할 테지만, 시장 경쟁력은 별개”라면서 “수율 등 시장 경쟁력은 약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환 교수는 “반도체 생산에서 노광공정이 가장 중요한데, 일본은 원래 상당한 기술력을 가지고 있다”며 “목표 달성은 가능할 것으로 보이고, 수율도 한 번에 올릴 수는 없겠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개선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2027년이 되면 이미 2나노는 최고 수준의 공정이라고 할 수 없는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삼성전자와 TSMC는 그보다 앞서갈 것이고 격차를 좁히는 게 쉽지는 않을 거라는 얘기다.

자금도 문제다. 라피더스가 밝힌 향후 10년간 투자 규모는 5조엔(약 50조원) 수준이다. TSMC의 지난해 시설 투자액 약 45조원과 비슷한 수준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파운드리 사업에만 15조원을 투입한 것으로 추정된다. 오는 2042년까지 용인 시스템반도체 클러스터에 300조원을 투자한다는 계획이다. 10년간 150조원으로, 라피더스 투자 규모의 3배에 달한다. 일본 정부 지원으로는 메우기 어려운 차이다. 투자 규모로 보면, 라피더스와 기존 양강 기업 간 격차는 오히려 벌어지는 셈이다.

닛케이신문은 라피더스의 양산 목표에 대해 “선행투자를 위한 자금력이 요구되고, 세계 시장에서 경쟁해야 하는 대기업의 벽은 높다”고 평가했다. 정부 자금 지원의 한계도 꼬집었다. 이 신문은 “과거 히타치와 NEC, 미쓰비시전기의 반도체 사업을 모체로 한 엘피다는 투자 경쟁으로 재무가 악화돼 국가 자금이 쏟아졌지만 12년 만에 파산 신청에 몰렸다”고 했다. 1999년 설립된 엘피다는 D램 시장 치킨게임에서 밀려 2013년 미국 마이크론에 인수됐다. 엘피다가 정부로부터 받은 공적자금과 채권단 융자를 합하면 한화로 총 2조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라피더스는 일본 정부에 더 많은 자금을 요구하고 있다. 히가시 회장은 지난달 교도통신과 인터뷰에서 기술개발 관련 2조엔(약 20조원) 규모의 자금이 필요하다며 중장기적인 정부 지원을 요청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민간으로부터의 추가 조달은 쉽지 않고, 정부 지원이 중심이 돼야 한다”면서 연간 3천억엔(3조원)의 국비를 받아 생산 라인 구축과 노광장비 도입 등을 추진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공장건설에 필요한 3조엔(30조원)은 기업공개(IPO)로 조달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현재 라피더스 출자액은 총 73억엔(730억원)이다.

라피더스에 대한 대규모 지원을 두고 일본 내에서 비판 여론이 일고 있다. 제1야당인 입헌민주당의 류이치 요네야마 중의원 의원은 “2조엔의 거액 자금은 주식시장을 통해 ‘리스크 머니’를 조달하는 것이 이치에 맞으나, 일본에서는 국가가 국채로 조달하고 ‘노 리스크’로 전달하는 계획이 될 것으로 보인다”며 “일본이 몰락의 길을 걷는 것으로 보인다”고 비판했다. 언론을 통해 ‘공적자금이 투입됐으나 파산한 엘피다 사례의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 ‘정부 지원에 의존해서는 성공할 수 없다는 진심이 보이지 않는다’ 등 목소리가 전해지기도 했다.

한국도 반도체 산업에 막대한 지원을 하고 있다. 이른바 ‘K칩스법’이 통과되면서, 반도체 설비투자에 대한 대기업 세액공제율이 기존 8%에서 15%로 상향됐다. 정부의 반도체 산업 육성 노력 필요성에는 공감대가 형성됐으나, 효과가 검증되지도 않고 국가 재정에 부담을 주는 세제지원 방식은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제기되기도 했다.

반도체 육성을 위한 다양한 지원 방식이 거론된다. 이종환 교수는 “반도체 투자는 세액공제뿐 아니라 인프라가 매우 중요하다”며 “특히 인력 문제가 심각하다. 학부 단계부터 반도체 전공을 선호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전문가는 “반도체는 전략 자산인 만큼 최대한 지원해야 한다”면서 “생태계 구축 차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사람이 모자라고, 소부장 육성도 만만치 않다”며 “몇몇 기업에 대한 세액공제로 될 일이 아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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