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의 가계부채가 국가 경제규모 대비 세계 주요국 중 가장 높은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기업 부채도 늘어나는 와중에 정부 부채는 되레 줄어 부채 관리의 방향이 잘못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29일 국제금융협회(IIF)가 발간한 <세계 부채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분기 기준으로 세계 주요 34개 국가(유로 지역은 단일 지역으로 취급)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계 부채 비율은 한국이 102.2%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조사 대상 국가 중 유일하게 이 수치가 100%를 넘어섰다. 기업부채도 상황이 나빠졌다. 지난해 1분기와 비교하면 GDP 대비 한국 비(非)금융기업의 부채 비율은 1년 사이 3.1%포인트 상승했다. 전 세계적으로 긴축 기조가 지난 1년간 이어졌다는 점을 감안했을 때 기업부채의 증가 역시 바람직하지 않은 수치다. 이 비율이 작년에 비해 높아진 나라는 한국을 비롯해 10개국에 불과했다.
반면 눈에 띄는 대목은 정부부채 비율이 감소했다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서 1분기 한국의 GDP 대비 국가 부채 비율은 1년 전 47.3%에서 44.1%로 3.2%포인트 낮아졌다. 특히 윤석열 정권 출범 이후 긴축재정을 강화하면서 악화되는 가계부채와 기업부채에 비해 국가부채 상황이 되레 개선된 것이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장기적으로 국가를 운영하는 데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는 점이다. 정부부채의 감소는 당연히 풍선효과를 일으켜 가계부채와 기업부채를 악화시킨다. 만약 국가가 가계소득을 충분히 지원했다면 이런 현상은 거꾸로 나타나야 한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수준인 가계부채를 줄이기 위해 정부부채를 충분히 더 늘릴 여력이 있는 나라다. 한국의 GDP 대비 국가부채 비율은 50%를 밑도는 수준으로 200%를 훌쩍 넘는 일본이나 130%를 전후해 형성된 스페인 프랑스 영국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현저히 낮다.
정부는 기업이 아니다. 정부가 흑자를 내거나 부채를 줄이는 것은 기업과 달리 반드시 바람직한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지금 윤석열 정권이 긴축 재정을 강화하는 모습은 그 부담을 전부 가계와 기업에 돌리겠다는 말과 다름이 없다. 정부가 정부답게 위기의 경제에서 과감히 돈을 쓰지 않는다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한국의 가계부채 부담은 언제든 경제 위기를 가속화시키는 방아쇠가 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