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0.4% 부정사용 적발해놓고 시민단체 겁주는 대통령실

대통령실이 비영리 민간단체에 지급된 보조금에 대해 부처별 감사를 벌인 결과, 최근 3년간 314억원의 부정사용을 적발했다고 발표했다. 보조금을 지급받은 1만2천개 단체를 대상으로 행정부 29개 부처가 반년 가까이 들쑤셨는데, 부정사용 총액은 전체 보조금 6조8천억원의 0.46%에 불과했다. 이렇게 미미한 적발건수를 발표하면서 “횡령, 리베이트 수수, 사적 사용, 서류 조작 등 온갖 유형의 비리가 확인되었다”고 너스레를 떨었다.

비영리 민간단체가 정부보조금을 목적에 맞지 않게 사용한 것은 잘못이다. 부정한 사용 내역이 있다면 반드시 국고에 환수해야하고 범죄사실이 확인되면 처벌받아야 마땅하다. 하지만 대통령실이 적발했다는 3년간 304억원의 보조금 부정사용은 현재의 보조금지급시스템으로 얼마든지 예방할 수 있고, 문제를 바로잡을 여지도 충분하다. 전체 시민단체를 파렴치한 절도범 취급하면서 호들갑 떨 일이 아니다.

문제를 삼은 정부보조금은 23년 전 제정된 비영리민간단체지원법에 기초한 것이다. 영리가 아닌 공익활동 수행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단체에 대해 특정한 정치성향이나 종교편향적이지 않아야한다는 전제 하에 시민사회와 민간단체의 성장을 돕기 위해 마련된 법이다. 정부가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모두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에 그동안 집행된 예산으로 시민사회가 촘촘하게 주민과 접촉하여 행복을 증진시키는 효과가 작지 않았을 것이다. 정부가 해야할 일을 대신해주는 측면도 큰 것이다. 게다가 현행 보조금 지급 시스템은 완전하게 전산화되어있고 각 부처가 보조금 사업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충분히 규율하고 통제할 수 있도록 되어있다. 일부 단체 등에서 발생한 미미한 일탈행위를 근거로 전체 보조금 사업을 싸잡아 비난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다.

대통령실이 나서서 이토록 거창하게 소동을 벌이는 것은 시민단체를 겁주고 줄세우기 하려는 숨겨진 목적이 의심된다. 앞서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시민단체라는 이름으로 국가보조금을 빼먹어 도둑질하고 피해자에게 돌아갈 보상금을 빼먹는 짓이 우리 사회에 만연돼 있다”고 한 것이나, 여당이 ‘시민단체 선진화 특별위원회’를 구성한 것을 보면 집권세력이 무엇을 노리는지 파악하는 것이 어렵지 않다. 총선을 앞두고 정권에 비판적인 시민사회 전체를 상대로 돈줄을 끊고 목을 비틀어 저항하지 못하게 막겠다는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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