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육십 대의 할머니 유튜버가 세상을 뒤집어 놓기도 했고, 또 다른 할머니 유튜버는 자신의 옷차림을 이십 대 여성들 사이에서 유행시키기도 했다. 광고에서 노인 모델을 만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이렇게 나이가 더이상 장벽이 되지 않는 세상으로 변해가고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노인으로 산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여전히 독거노인의 고독사가 사회 문제가 되고 있으며 노년에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모두에게 열려 있지 않다. 65세 이상 노령인구가 전체 인구의 18.2%(2023년 5월, 통계청)에 달한다는 통계 자료를 굳이 가져오지 않아도 노령화는 우리에게 확실히 체감된다.
이를 사회 문제로 대하기에 앞서, 해가 갈수록 나이가 드는 우리 자신을 생각해보자. 노년의 그림자가 성별을 가리지는 않지만 여성으로 나이가 든다는 것은 더 많은 제약과 문제를 헤치고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노년 여성들의 삶을 재조명하는 작품들이 속속 등장하는 것은 이런 흐름의 반영이기도 하다.
‘두산인문극장2023: Age, Age, Age 나이, 세대, 시대’의 두 번째 공연 프로그램인 연극 ‘20세기 블루스 20th Century Blues’는 네 명의 60대 여성을 통해 ‘나이듦’에 대해 이야기한다. 이 연극은 미국 극작가 수잔 밀러(Susan Miller)의 작품이다.
여성이자 노인인 네 여자의 솔직한 110분간 대화
무대는 비영리 강연회 TED에서 강연하는 60대 사진작가 대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대니는 뉴욕현대미술관에서 개인 회고전을 준비 중이다. 그동안 자신이 해 온 사진 작업을 가장 잘 표현해 줄 작품을 고민하던 대니는 40년 동안 꾸준하게 촬영해온 친구들의 사진을 떠올린다. 그리고 그 사진을 회고전에 전시하기로 마음먹는다. 문제는 친구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동의를 구하는 일이다.
두산인문극장 2023 두 번째 연극 ‘20세기 블루스’ ⓒ두산아트센터
대니의 집에 친구들이 하나둘 모여든다. 동물 병원을 운영하는 수의사 ‘개비’는 혼자의 삶을 연습 중이다. ‘맥’은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저널리스트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며 여성 파트너와 동거 중이다. 부동산 중개사인 ‘실’은 사람들을 대하는 직업 때문에 성형을 계획 중이다. 오래된 친구들이 그러하듯 소소한 일상부터 신변의 변화까지 모든 것이 이야깃거리가 된다.
대니는 그동안 함께 찍어 온 사진들을 회고전에 전시하고 싶다는 뜻과 동의서에 사인해 주기를 요청한다. 하지만 친구들의 반응은 기대를 벗어난다. 사진전에 동의하느냐, 마느냐로 불붙기 시작한 대화는 네 여성의 40년 삶을 거슬러 오른다. 유색인종으로 미국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했을 맥도, 먹고살기 위해 발버둥 치며 사는 실도, 가사와 학업의 이중고를 겪으며 살아온 개비도, 모두 나이 앞에선 여지없이 멈칫하게 되고 움츠러들고 만다.
회사에서 밀려나고, 나이 들어 보이지 않기 위해 성형을 해야 하고, 예고 없는 죽음 앞에 불안하기만 하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희로애락을 담은 사진을 대중들에게 보이는 것이 발가벗겨진 채로 선 것처럼 겁나고 불편하다. 아무도 그것을 아름답다고 이야기해 주지 않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더 그렇다. 대니는 친구들의 반대에도 사진을 전시할 수 있게 될까?
나이 든 여자로 산다는 것
극 속에는 자신의 존재를 잃어가는 또 다른 여성이 등장한다. 치매 증상으로 요양원에 있는 대니의 엄마 베스의 존재다. 내가 나 자신의 존재를 잊게 되는 병, 치매를 앓고 있는 베스의 모습은 나이 듦의 또 다른 종착점이기도 하다. 우리는 주름지고 탄력 없는 몸매에 전사 같은 생존력을 장착한 60대 여성들의 모습을 110분간 마주하게 된다. 성적 취향, 커리어, 노화 등 현실의 문제들을 60년 삶 속에서 우러난 진한 언어로 표현해 관객을 공감시킨다.
두산인문극장 2023 두 번째 연극 ‘20세기 블루스’ ⓒ두산아트센터
열심히 살아왔지만 아무것도 아닌 나이 든 존재가 되어버렸다고 생각했던 이 여성들은 조금씩 세상을 향해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낼 용기를 낸다. 공연장 벽면을 가득 채운 네 여성들의 사진은 나이 들어가는 노년의 기록이 아니라 일생에서 가장 젊은 오늘의 기록이다. 나이 앞에 위축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들의 110분간 대화는 분명 힘이 될 것이다.
현대 사회 노인의 역할은 무엇인지, 사회는 노인을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는지와 같은 여전히 남아있는 질문은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탄탄한 연기로 채워졌다. 배우 박명신, 강명주, 성여진, 이지현, 우미화는 네 명의 60대 여성이자 친구인 맥, 실, 개비, 대니역으로 무대에 오른다. 대한민국 대표 배우인 이주실은 대니의 엄마 베스 역으로 관객을 만난다. 2016 『한국 연극』이 선정한 ‘공연 베스트 7’ 연극 ‘썬샤인의 전사들’의 부새롬이 연출과 윤색을 맡았다.
‘20세기 블루스’는 관객들의 관람 접근성을 높이기 위해 공연기간 동안 다양한 접근성(Barrier-free) 서비스를 제공한다. 공연 중 대사 및 소리 정보, 그림기호가 표시되는 한글자막 해설·장면 전환이나 인물의 등·퇴장, 표정, 몸짓 등 대사 없이 처리되는 장면에 대한 음성해설·관람 전 공연의 무대 모형을 직접 만져보며 오디오 가이드를 통해 감각 경험을 할 수 있는 터치 투어를 진행하고 있다. 작품 소개, 무대나 조명 등 시각적 요소를 포함한 공연 관련 안내 사항은 음성 혹은 문자 형식의 자료도 제공한다.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 및 관람 당일 로비에 비치된 QR코드를 통해 누구나 다운로드할 수 있다.
공연 예매는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와 인터파크에서 가능하며 온라인 예매가 어려운 장애인 관객은 접근성 매니저를 통해 통화 혹은 문자로 예매 가능하다.
연극 ‘20세기 블루스’
공연날짜 : 2023년 5월 30일(화)~6월 17일(토) 공연장소 : 두산아트센터 Space111 공연시간 : 화,수,목,금요일 20시/토, 일요일 15시/월요일 공연 없음 러닝타임 : 110분 관람연령 : 14세 이상 작 : 수잔 밀러 번역 : 최유솔 윤색, 연출 : 부새롬 출연진 : 이주실, 박명신, 강명주, 성여진, 이지현, 우미화, 류원준 공연예매 : 두산아트센터 홈페이지, 인터파크 티켓 공연 문의 : 두산아트센터 02-708-5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