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의철 KBS사장이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대통령실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 관련 기자회견에서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2023.6.8 ⓒKBS
김의철 KBS사장이 8일 자신의 직을 걸고 윤석열 대통령에게 "공영방송의 근간을 뒤흔드는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을 즉각 철회해 달라"고 촉구했다.
8일 오전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KBS 아트홀에서 '수신료 분리징수 권고 관련 KBS 사장 기자회견'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김의철 KBS 사장과 최선욱 전략기획실장, 오성일 수신료국장이 참석해, 지난 5일 대통령실의 수신료 분리징수 권고 관련 입장 및 대응 방안에 대해 밝혔다.
이날 김의철 사장은 윤 대통령을 향해 "만일 전임 정권에서 사장으로 임명된 제가 문제라면, 제가 사장직을 내려놓겠다"면서 "수신료 분리 징수 추진이 철회되는 즉시, 저는 자리에서 물러나겠다"고 말했다. 이어 "대통령실의 분리징수 추진은 공영방송의 근간을 훼손하는 중차대한 사안"이라며, "KBS의 미래와 발전을 위한 방안을 전달하기 위해 대통령님과의 면담을 정식으로 요청드린다"고 밝혔다.
그는 직을 걸고 윤 대통령에게 '대화'와 '수신료 분리 징수 철회'를 요구하게 된 데 대해 "위중한 상황 앞에서 KBS 사장으로서 무거운 결심을 했다"라며, "KBS가 어떠한 정치적, 상업적 압력에도 흔들림 없이 진정 독립적인 공영방송이 되는 데 온몸을 바치겠다는 일념으로 사장직에 지원했고, 지금도 그 생각에 전혀 변함이 없다"라고 의중을 털어놨다.
김 사장이 발언 저간에는 윤석열 정부가 전임 정권에서 임명한 자신을 마땅치 않게 여겨왔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이는 현 정부가 감사원 감사, 검찰 수사 등을 통해 전 정권서 임명된 국민권익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 정부 산하 위원회 및 공공기관 수장을 압박해 직에서 물러나게 하려 해 왔다는 점을 감안할 때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정부가 KBS에 더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해 전 정권 임명 인사인 자신이 없어야 하는데, 이를 실현하기 위해 '수신료 분리 징수' 사안을 가져와 압박하는 것이 아니냐는 상황 인식이다.
또 김 사장은 현행 방송법이 명시한 수신료 징수 사안의 실질적 주체가 KBS인 점을 짚으며, 분리 징수 문제를 담당하는 관련 부처에 '협의체 구성'을 제안했다. 그는 "수신료 징수 방식 논의가 정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도록 방송통신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부, KBS가 함께 참여하는 협의체 구성을 정식 제안한다"면서 " 적극적으로 협의에 임하겠다"고 말했다.
8일 오전 서울 여의도 KBS 아트홀에서 열린 '대통령실 수신료 분리 징수 권고' 관련 KBS 기자회견에 참석한 최선욱 전략기획실장, 김의철 KBS 사장, 오성일 수신료국장. 2023.6.8 ⓒKBS
이날 김 사장은 대통령실의 수신료 분리 징수 결정 과정의 내용과 절차에 모두 문제가 있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대통령실이 지난 3~4월 동안 '국민참여 토론'을 하며 △ 수신료 의미·가치 설명 생략 △ 현행 통합징수의 정당성과 효율성 인정한 헌재 결정 및 대법 판결 누락 △ 해외 수신료 제도에 대한 잘못된 정보 제공을 했다고 비판했다. 또 '국민 참여 토론' 투표 시스템이 1인 중복 투표가 가능한 등 시스템상 문제도 있었다며 "부정확하고 불충분한 여론 수렴 절차로 인해, 첫 단추부터 잘못 끼워진 수신료 분리징수 권고안에 대하여 심히 유감"이라고 했다.
앞서 대통령실은 '국민참여 토론' 결과를 바탕으로 전문가로 구성된 국민제안심사위원회가 해당 권고안을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김 사장은 이 같은 논의 과정에서 "KBS는 철저히 배제되었으며, 별도로 의견을 물어 온 바도 없었다"며 "이 건과 관련한 KBS의 입장 전달은 심사위원회 요청도 없이 KBS가 자발적으로 제출한 의견서가 전부"라고 재차 유감을 표했다.
그는 현행 수신료-전기료 통합 징수가 "최저의 징수 비용으로 최고의 징수 효율을 실현할 수 있음은 물론이고, 납부자 간 형평성과 공정성을 구현하여 납부 정의를 실천하는 가장 이상적인 방식"이라며 "분리징수가 현실화 될 경우, 고품격 콘텐츠 제작에 투입되어야 할 수신료는 막대한 징수 비용 지출로 의미 없이 낭비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김 사장은 'KBS가 방만 경영을 하고 있다'는 국민 비판에 대해선 "고정관념과는 다르게 KBS는 낮은 비용과 적은 인력으로 세계 유수 공영방송사와 대등하게 경쟁하며 공적 책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라며 △ 수신료 40년째 동결 △ 해외 공영방송들과의 수신료, 총 인원, TV 도달률 비교 △ 최근 3년 간 인원 12% 감축, 인건비 15% 이상 감축 △ 다양한 공적 기능 수행 등에 대해 수치를 제시하며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국민들께서 보여주신 지적과 질책에 깊이 고개 숙여 사과드리며 뼈를 깎는 성찰과 혁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덧붙였다.
한편, 지난 5일 오후 대통령실은 TV 수신료를 전기요금과 분리 징수하기 위한 관계 법령 개정과 후속 조치 이행 방안 마련을 관계 부처에 권고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대통령실은 '국민참여 토론' 과정에서 투표한 결과 "총 투표수 5만8251표 중 약 97%에 해당하는 5만6226표가 (수신료 분리 징수) 찬성으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TV 수신료는 TV수상기를 소지한 가구에 일률 부과되는 것으로, 지난 1994년부터 전기요금과 함께 한전이 일괄 징수해 왔다. 월 2500원이며, 공영방송 KBS와 EBS의 재원으로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