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이완배 협동의 경제학] 이동관 씨에 대한 기억과 리더의 자질에 대하여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가 요즘 한창 화제인 모양이다. 방송통신위원회 차기 위원장으로 사실상 내정됐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그의 아들 학교폭력 논란까지 재조명되는 상황이다.

그런데 이와 별개로 나는 이동관 씨에 대해 제법 할 말이 있는 사람이다. 동아일보에서 그와 10년 정도 함께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는 그의 인생(?)에 어느 정도 개입한 경험이 있기도 하다.

가급적 이 칼럼에서 개인적 이야기는 자제하려 하는 편이지만 이번 칼럼에서는 그와 관련된 개인적 일화를 좀 길게 소개하려 한다. 지금 세간의 논란이 되고 있는 이동관 씨의 여러 문제점과 별개로 그가 과연 리더의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를 판단하는 데에 이 글이 나름 도움이 되기를 소박하게 소망한다.

2005년 정치부장 이동관과 기자총회

나는 1997년부터 2007년까지 동아일보에서 사회부와 경제부 기자로 일했다. 그 10년 동안 가장 놀라운 경험을 꼽으라면 나는 단연코 2005년 동아일보 평기자총회 사건을 꼽는다. 당시 기자협회보가 이 사건을 ‘평기자들의 명예혁명’이라고 표현했을 정도로 이 사건은 동아일보 내에서 큰 파장을 일으켰던 일이었다.

김대중 정부 중반 무렵부터 동아일보가 극우화의 길을 걸은 것은 익히 알려진 바다. 그런데 2005년은 신문이 보수화되고 어쩌고를 떠나 진짜 동아일보 조직 분위기가 그야말로 멍멍이판의 극치를 달릴 때였다.

기자들은 사내 메신저에서 회사와 관련된 그 어떤 이야기를 하지 않을 정도로 극도로 몸을 사렸다. 회사가 기자들을 감시한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눈치 보기와 공포는 극악에 달한 수준이었다. 이런 분위기 탓에 2003년부터 2005년까지 30명이 넘는 기자들이 회사를 떠났다.

바로 그 시기 이동관 씨는 동아일보 정치부장으로 승승장구하며 조직 문화를 멍멍이판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담당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기사로 한번 그와 크게 충돌한 적이 있었는데, 선배들이 이동관과 나의 화해 자리를 주선한다며 술자리에 초청한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선배가 나에게 “야, 네가 이동관 부장에게 개기면 안 되지. 우리 이 부장께서는 조만간 편집국장도 하실 큰 인물인데 네가 잘 모셔야지” 뭐 이런 개소리를 공개적으로 내 면전에서 하기도 했다. 진짜 조직 문화가 개판 오분 전이었던 시절이었다.

평기자들의 기자총회는 그런 공포스러운 조직문화에 대한 불만에서 시작됐다. 나를 포함해 10년차 이하 각 기수 대표들이 모여 “기자총회를 열고 편집국장에 대한 재신임안 투표를 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나는 확신했다. 재신임안 투표가 성사되기만 하면 당시 국장단은 절대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을 말이다. 그만큼 기자들의 조직에 대한 신뢰도가 바닥까지 추락한 상황이었다.

기수 대표들은 토의 내용을 철저히 비밀에 부치기로 약속했다. 워낙 공포정치가 횡행하던 시절이어서 반란(?)이 성공하지 못하면 주동자들은 진짜로 죽을 수도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다. 나는 마지막 기수대표 회의를 마친 뒤 회사에서 발제문을 작성하고 몇몇 세부 사안을 조율한 다음 오후 9시쯤 퇴근했다.

그런데 그때 휴대전화가 울렸다. 나와 매우 가깝게 지내던 정치부 차장급 선배가 다급한 목소리로 “야, 너희들 기자총회를 열어서 편집국장 재신임 투표를 하기로 했다면서? 진짜냐?”라고 물었다.

지난 2019년 6월 6일, 극우 성향 유튜브 채널 ‘신의한수’에 출연한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보 모습 (자료사진) ⓒ유튜브 채널 ‘신의한수’ 갈무리

순간 나는 패닉에 빠졌다. 기수 대표들이 그토록 보안을 강조하며 비밀스레 추진해온 일이 마지막 준비회의를 마치자마자 간부들에게 새버린 것이다. 내가 그 선배에게 물었다.

“편집국장 재신임 투표를 하기로 한 게 아니라, 그걸 할지 말지를 결정하자는 안건을 기자총회에 올리기로 한 겁니다. 그건 그렇고 선배, 이거 기수 대표들끼리 비밀 지키기로 약속한 건인데 도대체 이야기를 어디서 들으셨어요?”

이때 그 선배가 한 말이 나는 지금도 잊히지가 않는다. “야 이 미친놈아. 비밀은 무슨. 이동관이 벌써 알고 있더라. 이동관이 편집국장한테 뛰어가서 보고했어!”

참 열심히 사는 인간 아닌가? 그렇게 비밀리에 추진한 일을 그렇게 번개처럼 수소문해서 알아내고 쪼르르 편집국장에게 달려가 보고하다니. ‘야, 진짜 이 인간은 내가 인정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리더의 자격

칼럼 앞부분에서 ‘내가 그의 인생(?)에 어느 정도 개입한 경험이 있다’고 표현한 이유가 있다. 당시 기자총회는 117명이 참여해 무려 4시간 20분의 격론 끝에 성공적으로 마무리됐다. 편집국장 재신임 투표를 진행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조직 문화를 개판으로 만들었던 당시 편집국장은 재신임 투표가 시작되기 전에 스스로 사임했다. 편집국장의 오른팔로 불리며 미래의 편집국장 자리를 예약했던 이동관 씨도 불명예스럽게 정치부장에서 물러났다.

만약 그 사건이 없었다면 이동관 씨는 동아일보를 떠나지 않았을 것이고 편집국장까지 했을 것이다. 워낙 처세에 능한 인물이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쫓겨났고 이후 이명박 대선후보 캠프에 참여해 지금까지 알려진 그 길을 걸었다.

내 기억으로 이동관 씨는 정말 리더로서 최악의 인물이었다. 그는 윗사람 권력자들에게는 입 안의 혀처럼 군 반면 아랫사람들에게는 철저한 감시의 주도자였고 공포의 대상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안에서 전례 없던 공포정치 분위기가 형성된 데에는 그의 지분이 상당했다.

그래서 대놓고 말하자면 나는 이동관 씨를 극혐한다. 그가 보수적 인물이어서 하는 이야기가 아니다. 동아일보 내에서 보수적 인물이 어디 이동관 씨 하나뿐이었겠나?

그를 극혐하는 이유는 그가 리더로서의 자격을 전혀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기억하는 한 이동관은 출세를 위해 후배들을 언제든지 팔아먹을 준비가 돼 있는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동관 씨 같은 사람에게는 사실 이념도 별로 중요하지 않다. 출세를 위해서는 언제이건 태세를 전환할 수 있는 종류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은 절대 리더의 자리에 올라서는 안 된다. 정치를 해서도 안 된다. 결단코 민중을 위해 일을 할 의지가 없는 사람들이다.

이명박 시절 언론 탄압으로 악명을 떨쳤던 이 철지난 구시대 인물이 또 다시 장관급 후보로 물망에 올랐다. 10년 만에 다시 주류 사회의 맨 꼭대기로 돌아오기까지 이동관 씨는 윤석열 대통령에게 얼마나 알랑방귀를 뀌어댔을까? 그가 방통위원장에 오르면 그 알랑방귀를 유지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조직원들을 피곤하게 할까?

그에 대한 개인적 기억을 갖고 있는 나로서는 파노라마처럼 그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리더의 자격이 없는 이동관 씨의 귀환이 나를 유독 슬프게 만드는 이유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