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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민갑의 수요뮤직] 샤일록 김준수만 보인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국립극장

고전은 시간이 흐르면 다르게 읽게 된다. 읽는 사람이 바뀐 탓이다. 세대가 바뀌고 가치관이 바뀐 탓이다. 그래서 당대에는 아무렇지 않았던 작품이 후대에 비판받는 경우가 흔하다. 실제로 예전 드라마를 지금 보면 남편이 아내를 무시하는 대사를 흔하게 날리고, 남성 애인이 동의도 없이 키스하는 장면이 버젓이 나와 당황스럽다. 그뿐이랴. 요즈음 옛 작품을 다시 써야 하는지 말아야 하는지 격론이 펼쳐지는 이유다.

그래서 국립극장 레퍼토리 시즌 작품으로 선보인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또한 다시 쓴 게 아닐까. 원작 ‘베니스의 상인’은 셰익스피어가 1596년~1597년에 쓴 작품이다. 426년 전 작품인데다, 한국의 이야기가 아니기도 하다. 연출가 이성열, 극작가 김은성, 소리꾼 한승석, 음악가 원일을 비롯한 제작진은 이 작품을 대극장에서 펼쳐지는 창극으로 만들며 변화를 감행했다.

먼저 제목을 ‘베니스의 상인들’로 바꾸었다. 작품의 갈등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샤일록이 유대인이라는 설정은 지워버렸다. 과거 작품에선 샤일록이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지나친 미움을 받으며 반유대주의를 확산시키는 빌미가 되었기 때문이다. 주인공과 샤일록의 대립은 동일하지만, 샤일록은 자본주의 초기 힘 있는 독점자본가로, 주인공 안토니오는 그에 맞선 상인조합 대표로 설정해 갈등의 근거를 바꾸었다. 물론 바사니오와 포샤의 사랑 이야기, 포샤와 네리샤의 활약은 동일하다.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국립극장

그렇다면 독점자본가와 상인조합의 갈등이라는 중심 서사가 존재하는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 ‘베니스의 상인들’은 그 이유를 충분히 보여주지 못한다. 극의 재미는 대부분 샤일록 역의 김준수로부터 나온다. 그는 끝까지 악랄함을 잃지 않은 자본가로 분해 고집스럽게 안토니오의 가슴살 1파운드를 잘라내려 분투한다.

수많은 창극과 공연을 통해 창극단의 스타로 등극한 김준수는 이번 작품에서도 왜 그에게 팬들의 환호가 몰리는지 보여준다. “돈으로 살 수 없는 것을 돈으로 살 수 있을 때 또 다시 태어나서 그 때는 기필코 만세영화 누리리라”라는 그의 마지막 선언은 느슨했던 극을 단숨에 팽팽하게 마감해버린다. 샤일록의 노래가 무겁게 다가오는 이유는 2023년 한국이 그가 꿈꾸는 사회가 되어버렸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독점자본가 샤일록을 선명하게 그려낸데 반해, 그와 갈등하는 상인조합의 리더 안토니오와 사랑에 빠진 바사니오에게는 기회가 제대로 주어지지 않았다. 상인조합의 리더인 안토니오와 로맨스의 주인공인 바사니오의 인물형이 충분히 구축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그저 성공하고 싶다고, 단숨에 사랑에 빠졌다고만 얘기할 뿐이다. 그 결과 그들에게 선의나 진정성, 대안적 가치를 발견하기 어렵다. 그들의 꿈과 진심을 확인하고 공감할 기회, 그 과정에서 유태평양과 민은경, 김수인을 비롯한 주연급 배우들이 매력을 발산할 기회, 그들을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끼고 인식을 확장하며 감동받을 기회는 좀처럼 주어지지 않는다.

사실 독점자본가와 상인조합의 대결이라는 갈등은 똑같이 부르주아로 성장하는 상인들 간의 갈등일 뿐이어서, 관객이 극중 인물에 공감할 수 있는 선의와 정당성을 불어넣는데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극에서는 샤일록 측이 일방적으로 악행을 저지르는 것처럼 묘사하지만, 인도에 진출하려는 상인조합 상인들이라 해서 선의로 가득한 인물일 리 만무하다. 상인조합 상인들은 사회적 약자가 아닐 뿐 아니라, 인도의 입장에서 보면 그들이나 샤일록이나 둘 다 침략자일 뿐이다. 그런데도 작품에선 그들의 식민주의적이고 침략적인 속성은 아예 드러나지 않는다. 일확천금을 꿈꾸는 듯한 모습 또한 아무 문제의식 없이 수용된다. 극중 바이킹을 희화화하는 장면까지 보고 나면, 작품의 제작진들이 어떤 계급과 민족의 시선으로 보라고 권하는지 씁쓸하게 알게 된다.

‘베니스의 상인들’에는 실력과 명성을 갖춘 제작진이 참여했을 뿐 아니라 유태평양, 김준수, 민은경을 비롯한 국립창극단의 대표 배우들이 출연했다. 안토니오나 바사니오 역을 맡을 거라 예상한 김준수가 샤일록을 맡았다는 사실은 신선하고, 재즈 드러머 한웅원이 지휘를 맡았으며, 이소월이 비트메이킹을 담당했다는 사실도 이채롭다.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국립극장

그럼에도 샤일록 외의 인물에게 빠져들 수 있는 작창과 음악은 충분하지 않다. 작창과 음악은 평이한 편이다. 대중적인 작품을 지향해서인지 무난한 곡의 연속이다. 록 음악 스타일의 연주를 자주 활용하고, 일렉트로닉 비트가 수시로 등장함에도 기억에 남는 선율이나 작창은 적다. 분위기에 맞는 곡들이 이어지긴 해도 극이 끝난 뒤 기억하고 흥얼거리게 되는 곡이 없다.

특히 대부분 영상으로 처리한 무대는 좀처럼 오라Aura가 없어 화려한 의상을 빛바래게 만들고 몰입을 방해한다. 한국 전통의상과 서구의 의상을 혼합한 탓인지 집단 등장 장면을 비롯한 여러 장면에서는 마당놀이의 기시감이 스치고, 현실을 풍자하기 위해 가져온 ‘영끌’ 같은 단어는 겉돌뿐 아니라 가볍게 느껴진다. 전체적인 어조가 통일되지 않고 산만하게 느껴진 이유는 아직 초연이기 때문일까. 앞으로 계속 작품을 다듬고 손보면 나아질 수 있을까.

다시 만나는 ‘베니스의 상인들’에서는 2023년다운 질문을 듣고 싶다. 더 많은 인물에 빠져들고 싶다. 국립창극단의 작품이라면 그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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