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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한철의 교육단상] 70년대로 되돌아간 집단적 얼차려, ‘아침 체인지’

하윤수 부산광역시교육감이 8일 오전 8시 사하구 승학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학생들과 ‘아침 체인지(體仁智)’ 활동을 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

매일 아침 8시 20분 경, 교문을 들어서는 학생들이 가방을 멘 채 운동장으로 향한다. 운동장에는 전교생이 트랙을 걷고 있다. 10여분 후면 학생들은 모두 교실로 들어가고 운동장은 텅 빈다. 매일 보는 우리 집 앞 ㅇㅇ중학교 아침 풍경이다.

5월 18일, 광주에서 열린 시도교육감협의회에서 하윤수 부산 교육감이 소위 ‘아침체인지’를 소개했다. 부산교육청은 ‘아침체인지(體仁智)’를 ‘수업 전 신체 부대낌을 통해 존중과 배려의 정신과 두뇌를 깨워 공부 집중력을 높이기 위한 활동’이라고 했다. 하 교육감의 2가지 핵심 공약인 학력신장과 인성교육 실현 중 인성교육의 일환으로 실시 중이다. 농구, 축구, 운동장 트랙 걷기 등 다양한 활동 모두 가능하지만 많은 학교가 운동장 걷기를 한다. 현재 약 360여개 학교가 참여하며, 이는 부산의 620여 개 학교 중 58%에 해당한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있다.

심지어 이주호 장관은 부산교육감에게 아침체인지 소개를 요청하고 학교 체육활성화 계획을 발표했다. 이 장관은 직접 아침 체육활동을 보러 부산을 방문하기도 했다. 지역에서 먼저 정책을 추진하고 중앙에서 전국화하는 모양새다. 전국적인 열풍이 분다고 소개했지만 다른 지역에서 구체적으로 시행하고 있는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매일 운동장에서 벌어지는 부산교육청의 아침체인지(體仁智)


보수교육감의 핵심사업이 교육을 수십 년 전으로 돌리려는 현 정부의 정책과 맞물린다. 부산의 절반 이상의 학교에서 한다는 것은 강제적인 요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하 교육감이 말한 정신과 두뇌를 깨우기 위한 아침체인지는 군대의 얼차려나 70~80년대 학교에서 있었던 집단적 체육활동을 떠올리게 한다. 성평등을 양성평등으로 바꾼 이 정권의 모습과 비슷하다. 노회한 교육자들이 자신이 하던 전체주의적 국민체조와 비슷한 제도를 도입하고선 이것을 인성교육을 위한 핵심사업으로 포장한다. 시대를 역행해도 너무 한다는 생각이다. 군대에 갔다 온 사람들은 알 것이다. 사격이나 유격훈련을 앞두고 극심한 신체 단련을 먼저 시킨다. 그 목적은 신체 단련도 있지만 중요한 훈련을 앞두고 정신을 깨운다는 데 의미를 둔다. 그게 바로 소위 얼차려다. 십여 년 전까지만 해도 교문 앞에서 지각한 학생이나 복장 규정을 어긴 학생들에게 얼차려 주는 것은 다반사였다. 목적은 군대와 다르지 않았다.

부산교육청의 아침체인지를 들여다보면 그냥 집단적으로 잠시 걷는 행위다.

사람들은 어떤 일이든 당사자의 동의가 있으면 가능하다고 한다. 더러는 ‘아침에 운동을 하면 좋은 거지’라고 단순하게 말한다. 그러니 자율이라 포장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자율이라는 이름하에 강제가 작동하는 현실이다. 얼마나 자신 없는 정책이었으면 아침체인지를 하는 학교의 교장과 교감에게 직무 성과 평가를 잘 주겠다고 했겠는가? 20분 정도 운동장 돌기를 지도하면 3만원의 수당도 준다. 교육정책이라고 할 수도 없는 사업에 193억원의 거대 예산은 이해하기 어렵다.

전체주의 역사를 알거나 독재 시대를 경험한 우리는 집단적 동의가 얼마나 엉뚱하게 작용하는지 경험했다. 집단적인 학교 체육이나 국민 체조의 역사를 보면 알 수 있다. 1977년부터 시작한(물론 그 이전에도 있었지만) 국민체조는 1950년대 일본 자위대체조를 간략화해서 만든 라디오 체조를 따라한 것이다. 국민체조가 성행하던 시기를 떠올리면 모든 국민과 학생이 강제적으로 실시했다. 군대에서 먼저하고 민간에 보급되었으니 그 집단 체육의 역사를 알고 나면 동의 여부를 떠나 섬뜩한 군국주의, 전체주의의 냄새가 난다. 그것도 예전 시대를 모범으로 생각하는 보수 교육 관료들의 발상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몸을 움직여 인성을 깨운다? 이런 생각이 그야말로 집단적 얼차려다. 다시 옛날로 돌아가지는 않을까 우려된다.

학생들이 몸을 덜 움직여 인성이 발달하지 않는가? 로마시대에도 조선시대에도 젊은 사람들을 우려했었지만 세상은 오히려 더 발전했다. 청소년과 청년의 인성은 당연 어른 세대에서 나온다. 학생들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것은 수면 시간과 아침 식사일지 모른다. 한국 청소년의 수면 시간은 OECD 국가 평균보다 1시간 부족하며, 55% 넘는 학생들이 수면이 부족하다고 했다. 아침 체인지를 위해 학교에서는 예전 등교시간보다 더 당기는 경우도 있다. 학생은 잠도 식사도 더 부족해진다. 수업시간 중에 자는 학생들 때문에 교사들이 얼마나 고민이 많은데 아침 활동으로 더 조는 학생이 많다고도 한다.

또 학생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학업에 대한 부담을 줄여주는 것이다. 학생들에게 이렇게 일률적으로 강제하지 않아도 학업 부담을 덜어주고, 시간 여유를 주면 돈 들이지 않고도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몸을 움직일 것이다. 무한 경쟁의 학업 부담을 주면서 인성을 위한 체육 활동을 말하는 것은 언어도단이고 과욕이다. 하 교육감의 주요 공약 2가지, 학력신장과 인성교육은 함께 할 수 없는 정책이다. 우리나라 교육 현실을 안다면 대입제도를 고치고 경쟁교육을 완화할 방법을 내어 놓는 게 인성교육을 위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아침체인지는 진정 시대착오적인 발상이다.

고3 학생들이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대비하는 모의평가에 앞서 담임선생님에게 시험 전 준비사항을 들으며 피곤해 하고 있다. 2016.06.02 ⓒ뉴스1

학업 부담 덜어주면 학생들 스스로 몸을 움직인다

교육과정을 잘 이해하고 적용하는 교육감이라면 교사들이 교육과정을 잘 구현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 교육과정에 지덕체를 형성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더하여 학교 스포츠 시간도 있다. 방과후에 하는 스포츠클럽도 많이 확대되고 정착하고 있다. 그야말로 자유로운 시간에 자유롭게 몸 움직일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국가와 교육청이 할 일이다. 학교에 교육과정과 생활지도 외의 활동이 추가되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며, 교육과정을 잘 이행할 자신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다.

소름 끼치는 것은 교육부 장관이 이 제도를 좋아하고 여러 시도 교육청들이 벤치마킹하겠다는 것이다. 국민체조를 보급하던 5공화국 시절, 강제로 아침에 국민체조를 시켰고, TV방송을 통해서는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국민체조에 동참하고 있다’고 선전했다. 독재시대 특징 중 하나가 집단 동원이고 행사였는데 다시 그런 사업을 전국화하겠다니 어이없다. 부산교육청이 근거로 제시하는 외국 사례나 외국 학자가 말한 신체 활동의 긍정성은 모두가 공감한다. 외국의 경우, 학생들이 신체 활동을 즐길 수 있는 교육 환경이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하지만 우리는 다르다. 학생들에게 여유를 주지는 않으면서 전체 학생을 대상으로 무의미에 가까운 운동장 돌기와 같은 활동을 시킨다는 것이 바람직한가? 결국 어른들의 자기만족을 위해 학생들에게 또 다른 부담을 주는 건 아닌지? 시대 흐름을 읽지 못하고 자신들의 경험을 교육에 적용하는 교육감과 관료의 게으름은 아닌지? 선거를 통해 정권을 잡고 교육청을 접수했다고 하지만 시대를 역행하고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정책을 밀어붙이는 것이 맞는지? 교육부장관까지 나서서 모범적인 사업으로 추켜세우는 모습이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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