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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 읽기] 꽃이 있는 정물


이달 말부터 장마가 시작될 것이라는 일기예보가 있습니다. 곳곳에 핀 꽃들이 장마 전까지 그 화려함을 최고로 끌어 올리는 모습을 보다가, 과거 학창시절 미술 수업 때 화병을 놓고 그리던 ‘정물화’ 생각이 났습니다. 작품 속 소품 정도로 머물렀던 꽃이 정물화의 주인공으로 자리를 차지한 것은 대략 1600년 무렵부터인데, 이 시기에 정물화로 명성을 날린 얀 브뤼헐 (Jan Brueghel The Elder / 1568 ~ 1625)의 공로이기도 합니다.

나무통 속의 꽃들 Flowers in a Wooden Vessel 1606~1607 oil on wood 98cm x 73cm ⓒ빈 미술사박물관, 오스트리아

통이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로 색색의 꽃들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130여 종의 꽃들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얀 브뤼헐의 테크닉과 의지가 온전히 반영된 작품입니다. 모든 꽃은 정확하게 묘사되었고, 그에 더해 서로 다른 각도에서 보이는 꽃들의 모습을 겹치지 않게 배열해 모든 꽃을 알 수 있게 했습니다.

꽃은 크기에 따라 배열되어 있는데, 작은 꽃은 꽃다발 하단에, 그 다음 크기의 꽃은 중앙에 그리고 흰 백합과 푸른 붓꽃과 같은 큰 꽃은 상단에 배치하는 구도를 사용했습니다. 꽃들은 한 계절에 피는 것들이 아니라 사계절에 피는 꽃들을 모두 모아 놓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을 완성하는 데는 최소 1년이 걸렸겠지요. 그가 남긴 편지에도 봄에 그리기 시작해 가을에 완성했다는 구절이 있습니다. 그림에 대한 그의 의지는 대단했습니다.

얀 브뤼헐은 플랑드르 화가 피테르 브뤼헐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형도 유명한 화가였지요. 꽃을 잘 그려서 ‘꽃의 브뤼헐’이라는 별명을 얻었는데 다른 작품에서는 사물의 질감을 완벽하게 묘사해서 ‘벨벳의 브뤼헐’이라고도 불렸습니다. 꽃에 대한 얀 브뤼헐의 애정은 대단해서 새로운 꽃을 찾아 여행을 했고 “겨울이 다가와 모든 것이 얼음으로 뒤덮일 때, 나는 그림 속의 꽃을 보며 상상 속의 향기를 즐깁니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정물화는 일반적으로 인생의 헛되고 무상함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또 다른 의미를 작품 속에 숨겨 놓는 경우가 있지요. 얀 브뤼헐의 이 작품도 자세히 보면 그런 의도가 보이기도 합니다.

나무통 속의 꽃들 가운데 일부 ⓒ나무통 속의 꽃들 가운데 일부

나무통 왼쪽 아래에는 바닥에 떨어져 마르고 있는 꽃송이가 보입니다. 통 속의 화려한 꽃들과는 다르게 검은 배경 속에서 시들어 가는 꽃은 화려한 찰나의 순간 ‘참 덧없다’ 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열흘 붉은 꽃은 없다’는 우리 옛말도 있지만, 절정의 순간은 영원하지 않다는 경고의 의미를 담고 있어 그림을 볼 때마다 마음을 다잡게 됩니다. 이런 역할을 정물화가 했던 것이지요.

나무통 속의 꽃들 가운데 일부 ⓒ나무통 속의 꽃들 가운데 일부

그런가 하면 나무통 꽃에 매달린 잠자리의 모습도 보입니다. 얀 브뢰헐은 꽃뿐만 아니라 동물들에 대한 묘사도 탁월했는데, 그의 친한 친구였던 페테르 루벤스와 합작으로 작품을 몇 점 그리기도 했습니다. 그림 속 풍경과 등장하는 동물들은 얀 브뤼헐이, 사람은 루벤스가 그리곤 했습니다. 언젠가는 시들 꽃에 매달려 있는 잠자리는 어떤 상징을 담고 있는 것일까요?

최근 얀 브뤼헐의 이 작품에 대해선 다른 의미가 있다기 보다는 자연의 꽃을 그대로 즐겨 보라는 화가의 뜻이 담겼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습니다. 생각해보면 그림을 감상하는 것은 각자의 몫이니까 모든 정물화에 알레고리가 담겨 있다고 보는 것도 어색한 일입니다. 문득 나무통에 담긴 꽃들 가운데에서 이름을 아는 꽃이 얼마나 되는지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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