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경 더불어민주당 혁신기구 위원장이 2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1차 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2023.06.20. ⓒ뉴시스
민주당 혁신위원회가 출발했다. 지난 23일 오후에는 비공개회의 결과를 발표했는데, 사실상 첫 번째 혁신안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이 “민주당 의원 전원이 불체포 특권을 포기하는 서약서를 제출하고 향후 체포동의안 가결을 당론으로 채택할 것”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진짜 폐지되어야 할 특권은?
필자는 헌법에 보장된 불체포 특권이 남용되어서는 안 되겠지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폐지되어야 할 특권은 다른 곳에 있다. 예를 들면, 국회의원들이 사용하는 정치자금 영수증은 열람만 가능하고 복사가 안 된다. 정치자금법에서 그렇게 만들어 놓았다. 그러니 감시가 어렵다. 많은 분량의 서류를 눈으로 보고만 가라고 하는데, 감시가 쉽겠는가?
이런 식으로 국회의원들이 누리는 특권은 곳곳에 있다. 1억 5천만 원이 넘는 과도한 연봉과 9명에 달하는 보좌진도 특권이다. 그 외에 국회사무처 예산에서 과도하게 지원받는 돈들도 있다. 특권 폐지를 하려면 이런 특권들부터 손봐야 한다.
더 큰 문제는 민주당이 약속을 안 지키는 정당이라는 것이다. 약속을 안 지키는 정당이 어떻게 신뢰를 받을 수 있겠는가?
민주당 혁신위원회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작년 대선 당시에 이재명 후보와 민주당 국회의원 전원이 약속한 것부터 지키는 것이다.
대선 당시 약속을 지키는 것이 혁신
지난 대선 당시로 돌아가보자. 당시 이재명 후보는 막판에 ‘정치교체’와 ‘국민통합’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다당제 구조로의 전환을 포함한 정치개혁방안을 발표했다.
지난해 2월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의원총회에서 당시 당대표였던 송영길 전 의원이 발언하는 모습. 당시 민주당은 당제 구조로의 전환을 포함한 정치개혁방안을 만장일치로 결의한 바 있다. ⓒ뉴시스
그리고 2022년 2월 27일 민주당 의원총회는 “승자독식 선거제도의 근본적 개혁을 통해 실질적 다당제를 구현하고 다양한 민심을 받들겠습니다. ①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위성정당을 방지하는 연동형 비례대표제와 권역별 비례대표제, ②지방선거에는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 등 비례성을 대폭 강화해 세대, 성별, 계층, 지역 등 다양한 민심이 반영되는 선거제도를 만들겠습니다”라고 만장일치로 결의했다.
그러나 그 이후의 상황을 보면, 어떤가? 민주당은 지방선거에서 3인 이상 중대선거구제를 도입할 의지가 없었다. 심지어 민주당이 다수당인 시·도의회에서도 2인 선거구를 만들었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약속을 깬 것이다.
그리고 지금 국회에서 이뤄지고 있는 선거제도 논의에서도 당 차원의 개혁 의지가 보이지 않는다. 몇몇 의원들만 선거제도 개혁을 얘기할 뿐이다.
선거제도는 정치의 기본이고 헌법 못지않게 중요한 제도이다. 그런데 이런 제도와 관련된 약속도 지키지 않으니, 도대체 국민들이 민주당을 어떻게 믿겠는가? 특히 거대양당에 환멸을 느끼고 있는 많은 유권자들은 민주당이 대선 당시에 약속했던, ‘국회 구성의 다양성이 보장되고 다당제가 가능한 변화’를 원하고 있다.
민심은 근본적인 변화를 원하고 있다
지난 5월 선거제도에 관한 500인 시민참여단의 공론조사 결과도 변화를 원하는 민심을 보여준다. 숙의 전과 숙의 후로 나눠서 실시한 공론조사에서, 선거제도 개편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숙의 후에는 84%에 달했다.
그리고 선거제도 개편의 방향과 관련해서도 비례대표 숫자를 늘리는 것이 좋다는 의견이 숙의 전에는 27%에 불과했지만, 숙의 후에는 70%에 달했다.
비례대표 의석 배분 방식과 관련해서도, 정당득표율에 따른 의석배분을 보장하는 방식(준연동형 또는 그보다 강화)을 지지하는 비율이 숙의 전에는 28%였지만 숙의 후에는 52%로 늘었다. 반면에 과거의 병립형(지역구 따로, 비례대표 따로 뽑아서 비례성이 보장되지 않는 방식)으로 돌아가자는 의견은 숙의 전에는 48%였지만, 숙의 후에는 41%로 줄었다. 이 문항과 관련해서는, 숙의 전에는 잘 모르겠다는 비율이 24%에 달했는데, 그런 사람 대부분이 숙의 후에는 연동형 방식을 지지하는 쪽으로 기운 것으로 보인다.
‘숙의 후’에 나온 결과는 시민들이 정보를 제공받고 토론을 한 후에 나온 결과라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이 공론조사 결과 이외에도 여러 여론조사 결과들이 민심을 보여준다. 지난 1월 9일~11일 ‘미디어토마토’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52.3%가 다당제 구도로 전환해야 한다고 응답했고, 27.7%만이 양당제 구도를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2023년 1월 21일 MBC가 발표한 여론조사에서도 다당제가 적합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56.8%, 양당제가 적합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29.6%였다. 즉 민심은 다당제를 선호하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국정에 관한 교섭단체대표연설을 하고 있다. 2023.06.19. ⓒ뉴스1
그렇다면 민주당이 해야 할 선택은 분명하다. 자신들이 대선 당시에 했던 약속을 지키는 것이 민심과 부합하는 일이다.
국민의 힘이 반대한다는 것은 핑계에 불과하다. 만약 국민의 힘이 반대해서 내년 총선 이전에 선거제도를 더 진전시키는 것이 어렵다면, 민주당은 두 가지를 하면 된다.
민주당이 해야 할 두 가지
첫째, 최소한 현재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유지하면서, 위성정당 방지조항만 신설하는 것이다. 가령 50% 이상의 지역구에서 후보를 공천하려는 정당은 비례대표도 일정 비율 이상 공천하도록 의무화하면 거대양당이 위성정당을 별도로 만들기는 어려워진다. 또 다른 방식도 좋다.
둘째, 향후에 선거제도 논의는 국회의원 중심이 아니라, 국민들이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가 맡는 내용을 공직선거법에 담는 것이다. 이번에 진행된 500인 공론조사는 매우 시일이 촉박하게 진행되었지만, 그래도 의미있는 결과가 나왔다. 만약 좀더 시간을 두고 국민들이 참여하는 논의를 한다면, 지금 필요한 정치개혁 과제들을 다룰 수 있을 것이다. 국회의원 선거제도만이 아니라, 대통령 결선투표제 도입, 지방선거제도 개혁, 국회의원 특권폐지도 국민들이 참여하는 공론화위원회에서 다루면 된다. 이것을 법제화하자는 것이다.
이 두 가지는 민주당이 단독으로 통과시키더라도, 국민의 힘이 반대할 명분이 약하다. 윤석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민주당이 해야 할 일은 명확하다. 약속을 지키기 위한 진정성 있는 노력부터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