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제1원전 폭발 사고 이전, 일본에는 평범한 시민의 입장에서 핵의 위험성을 알려온 일본인 ‘핵과학자’가 있었다. 업계의 이익이 아닌 평범한 시민들을 위한 과학을 했던 그는, 그 활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제2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바른생활상(Right Livelihood Award)을 수상한 인물이다. 2000년 10월 암 투병 끝에 영면한 그는, 마지막까지 책을 집필하는 등 원전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그의 이름은 다카기 진자부로, 일본 원자력자료정보실 초대 대표다. 1961년 도쿄대학 졸업 후 원자핵연구소와 일본원자력사업에서 근무하고 1969년 도쿄 도립대학 이학부 조교수로 부임했다.
1973년 그가 몸담았던 학계와 업계를 떠나 반원전운동을 시작하게 된 배경을 보면, 곱씹을 만한 이야기가 등장한다. 그가 쓴 책 ‘시민과학자로 살다’(녹색평론사, 2011년)에 나오는 대목이다. 이는 최근 일본 오염수에 대해 “마실 수 있다”거나 “전혀 위험하지 않다”고 선전하면서 해양투기를 옹호하는 여당 의원 및 일부 핵산업종사자의 주장과 함께 고민해 볼 필요가 있다. 요약하자면 다음과 같다. (▶ 책 ‘시민과학자로 살다’)
(원전 자료사진) 독일이 가동 중단한 마지막 원전 3기 중 하나인 독일 북부의 엠스란드 ⓒ사진=뉴시스
핵발전 이후 달라진 산과 바다 표층에서 측정되는 ‘인공 방사능’ 지구, 도대체 얼마나 오염 됐나
원자핵연구소에서 기초연구에 전념하던 시절, 다카기 진자부로는 암석시료에서 ‘알류미늄26’이란 방사성물질을 검출해야 했다. 이 물질은 고감도 측정 장비를 통해 검출이 가능했는데, 장비는 아주 미세한 소리를 감지하는 기기였다. 방사성물질이 붕괴하는 소리를 감지하는 기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제는 이 장비를 사용한다고 해도, 주변에 잡음이 있으면, 알루미늄26이 붕괴하는 소리를 찾아내기 어렵다는 점이다. 주변 잡음을 완벽하게 차단하기 위해서는 두꺼운 ‘철판’ 벽으로 밀폐된 공간을 만들어야 했다. 그래서 다카기 진자부로와 연구소 직원들은 시중에 파는 철을 구해 실험했다.
그런데, 실험을 해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중에 파는 철판에 인공 방사성물질인 ‘세슘137’이 적지 않게 포함돼 있었기 때문이다. 철판에 다른 방사성물질이 섞여 있으면, 해당 방사성물질이 붕괴하는 소리 때문에 알루미늄26이 붕괴하는 소리를 찾을 수 없다.
‘세슘137’은 핵실험에서 나오는 이른바 ‘죽음의 재’ 성분이다. 인공 방사성물질이 발견되면 안 될 철판에서 방사성물질이 나오자, 그는 “크게 놀랐다”며 “방사능에 관한 한 전문가여야 하는 우리가 철의 오염 등, 주위의 환경에 관해서 아무것도 몰랐던 것”이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전문가들도 모르는 사이 핵실험과 원자력발전소에서 생성된 인공 방사성물질이 우리가 사는 땅과 바다를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결국, 그와 연구소 직원들은 원자력시대 이전에 만들어진 철판을 구해 연구에 사용해야 했다.
뿐만 아니라 그와 연구소 직원들은 연관된 연구를 위해 자연에서 생성된 자연 방사성물질을 찾아 산과 바다를 누볐는데, 그와 직원들이 목격한 것은 인공 방사성물질로 오염된 자연이었다. 표층의 진흙, 암석 등은 ‘죽음의 재’ 성분인 세슘137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다. 인공 방사성물질로 오염이 안 된 자연물은 땅속 또는 해저 깊은 곳에서 얻어야만 했다.
방사능 계측기 자료사진 ⓒ체르노빌=AP
오염 안 된 철 구하기 위해 심해로 간 과학자들
다카기 진자부로와 그 연구소 직원들만 경험한 일이 아니었다.
미국의 핵실험 프로젝트 중 하나였던 ‘방사선이 신체에 미치는 영향 연구’에 참여했던 칼 지글러 모건(Karl Ziegler Morgan) 박사는 자신의 책에서 비슷한 경험을 털어놓았다. (▶ 책 ‘성난 정령 : 한 남자의 핵 시대 산책’)
1955년, 칼 모건은 위·장·폐 등 신체 장기에 흡입된 방사성물질을 측정하는 ‘전신 계수기’(WBC)를 만들다가 예상치 못한 장애물을 만났다. 다카기 진자부로의 연구와 마찬가지로 이 장비를 만들기 위한 실험에서도 모든 면을 6인치 두께의 철판으로 막아야만 했는데, 모든 철판에서 인공 방사성물질이 검출된 것이다. 칼 모건 또한 원자력시대 이전에 침몰한 배에서 인공 방사성물질에 오염되지 않은 철판을 구해야만 했다.
물론, 다카기 진자부로와 칼 모건이 마주한 방사능 오염은 당장 인간에게 영향을 미칠 정도의 농도는 아니었다. 다카기 진자부로도 당시에는 “위험하지 않느냐”는 주변의 질문에 “허용량보다 훨씬 약하기 때문에 걱정할 것 없다”며 사람들을 안심시켰다. 다만, 그는 사람들에게 이같이 설명하다가 “도대체 내가 언제부터 국가 관료의 앞잡이가 되었나 곰곰이 생각”하게 됐다. 그가 업계와 학계, 정부의 이해관계에서 벗어난 ‘시민과학’을 추구하게 된 배경이다.
(히로시마 원폭 자료사진) 신동필의 '한국인 원폭피해자'-징용으로 히로시마에 끌려갔던 박규묵씨의 피폭상처부위에 부인이 파스를 붙여주고 있다. ⓒⓒ사진 제공 '사진가 10인의 눈' 한국측 실행위원회
일본 원폭 생존자 수명연구 “암 사망만으론 저선량 수명 손실 설명 어려워”
이 지점에서 고려해야 할 부분은 아무리 낮은 선량의 방사선이라고 해도 인체에 영향이 없지 않다는 점이다. 인체에 영향이 전혀 없다고 생각하는 저선량을 학계에서는 “문턱값”이라고 부르는데, 대한영상의학회에 따르면 이 문턱값은 최근 연구로 올수록 낮아지고 있다. 즉 아무리 낮은 선량이더라도 선량에 비례해서 암 발생 비율과 수명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 원폭 생존자의 수명연구에서 나타난 최근 몇 년간의 데이터에서는 기존의 학설로 설명하기 힘든 결과가 나왔다. (▶ 대한영상의학회 설명)
대한영상의학회는 “UN 과학위원회는 1982년 보고서에서 저선량 방사선에서는 암 이외의 다른 사망 요인은 없다고 봤다. 그러나 이후 일련의 동물실험은 암으로 인한 사망이 방사선과 관련된 수명 손실을 모두 설명할 수 없었다”라며 “더욱이 일본 원폭 생존자의 수명연구에서 얻은 최근 데이터는 이러한 가능성이 높음을 보여준다”고 설명했다.
지난 6월 2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질의하고 있다. 2023.06.20. ⓒ국회 영상회의록시스템 중계화면 갈무리
한국 피해 미미하다면... 태평양, 핵폐기물 투기장 되어도 괜찮나?
이런데, 최근 한국의 일부 과학자들은 130만t의 오염수가 바다에 버려져도 안전하다면서 오염수 해양투기를 옹호하다시피 한다. 여당인 국민의힘은 이 같은 과학자들을 국회로 초청해 기꺼이 원자력산업의 스피커가 되고 있다.
지난달 19일에는 “지금 내 앞에 후쿠시마 물이 있다면 바로 마실 수 있다”고 말해 논란이 됐던 웨이드 엘리슨 교수를 초청해 기자간담회를 개최하더니, 이달 20일에는 의원총회에 “멸치” 발언으로 유명한 정용훈 카이스트 교수를 초청해 강연을 맡겼다. 원전의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원전은 안전하다는 취지의 주장을 펼친 정 교수는 이날도 “티끌은 모아봐야 티끌”이라며 “오염수가 방류되고 100년을 살아도 큰 영향을 주지 않는다”라고 말했다. 오염수가 방류되어도 태평양은 넓으니 모두 희석될 것이고, 사람에게 별다른 영향을 주지 않을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이다.
국민의힘 의원들은 이 같은 과학자의 발언을 근거로 야당과 환경단체, 일부 언론 등이 괴담을 퍼뜨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정확히 무엇이 “오염수 괴담”인지는 말하지 않는다. 그러니 오염수 해양투기에 대한 비판적 목소리를 억누르고, 일본의 오염수 해양투기를 비호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받는다.
야당이나 시민사회 등이 오염수 해양투기에 반대하는 가장 큰 이유는 나쁜 선례를 만들지 않기 위함이다. 전 세계 436개 원전을 보유한 여러 국가 중 일본처럼 대안이 있음에도 비용을 줄이겠다며 방사성물질을 바다에 버리겠다고 하는 국가나 기관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지난 20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후쿠시마 원전 폭발 사고 이후에도 우리는 안전했으니 오염수가 방류되어도 괜찮다는 취지로 말하는 해양수산부 장관에게 이원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경북 구미 낙동강 페놀 오염사건’을 빗대 다음과 같이 비판했다.
“1991년 낙동강에서 페놀을 터뜨렸다. 페놀은 엄청난 독극물이다. 그런데 우리 전북 지역 만경강은 안전하니까 문제없다? 이것은 아니지 않나. 우리 한국은 문제없으니까 괜찮다? 그런 생각이라면, 태평양은 결국 투기장이 될 것이다. (...생략...) 물론 거기 가면 다 희석되죠. 자연방사능 수준으로 줄죠. 그 엄청난 양의 태평양 물에다가 투입하면 다 줄죠. 한 바퀴 돌고 오면 그렇겠죠. 그렇다고 해서 오염수 투기의 명분이 되는 것은 아닌 거다. 그러면 안 되는 거다. 그렇게 너도나도 투기하기 시작하면 우리 바다가 살 수 있나? (...생략...) 그 첫출발을 일본이 하고 있다는 것이고, 막아야 한다는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