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이 27일 울산 동구청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동구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이 7월 1일로 취임 1년을 맞이한다. 진보당 소속으로 ‘진보 유일 구청장’으로서 화제를 모으며 울산 동구에 다시 등판한 김 구청장은 다른 지역과 차별화된 정책 추진으로 이목을 끌고 있다.
무엇보다 조선산업이 밀집해있는 지역인 만큼, 지역주민이기도 한 하청노동자들의 열악한 삶을 개선하기 위한 정책이 긍정적인 평가를 이끌어내고 있다. 물론 반대도 심했지만 김 구청장은 국민의힘이 다수인 야당을 설득해 기어코 ‘구청장 1호 결재사업’으로 역점 추진한 ‘동구노동복지기금 조성사업’을 진행할 수 있게 됐다.
김 청장은 취임 1주년을 앞둔 27일 울산 동구청장실에서 가진 민중의소리와의 인터뷰에서 이를 대표적인 성과로 꼽았다. 그는 “노동이냐 기업이냐 선택하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과 같다고 생각한다. 기업 없는 노동이 있을 수 있냐고 얘기하는데, 그러면 노동자 없는 기업이 있을 수 있는가”라며 “이러한 측면에서 기업과 노동자가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필요했다”고 강조했다.
김 청장은 기대를 모으고 있는 ‘진보행정’의 방향성에 대해선 “저는 모든 사업을 추진할 때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주민의 의견에 따라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사업을 시작한다”며 “지방자치가 주민자치로 가는 과정”이라고 말했다.
김 청장은 각종 사회 현안에 대해서도 소신을 밝혔다. 그는 최근 들어 집회 장소를 두고 참가자들과 지자체 간 갈등이 곳곳에서 발생하고 있는 데 대해서는 “집회는 토론의 장이 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장이 되기도 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는 장이 되기도 하는데, 지금은 집회를 단순히 항의하고 싸우는 것으로만 보고 있는 게 문제”라며 오히려 “그런 공간이 많이 열려야 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김 청장의 인터뷰 질의응답을 정리한 것이다.
“‘노동복지기금’, 벼랑 끝에 서있는 노동자에겐 위기자금이자 생활안정기금”
- 지난해 취임 당시 주민 누구나 행복한 ‘더 잘사는 동구’를 만들겠다고 약속하셨다. 이제 1년이 됐는데, 소감 한 말씀 부탁드린다.
“제가 10년 전에도 구청장을 지내서 이번에 들어올 때는 행정 일반에 대해서 그나마 경험치가 있으니까 예전보다는 좀 수월하게 하지 않겠나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녹록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10년 사이 환경이 변한 것도 있지만, 특히 울산 동구의 경우 조선사의 어려움에 코로나까지 겹치면서 더욱 어려운 상황에 처했고, 인구도 10년 전 당시 18만 명 정도에서 현재 15만 명 정도까지로 줄어들었다. 또 조선사의 어려움 속에서 일자리를 잃었던 많은 사람들의 상처가 깊기도 하고, 이런 저런 경우를 보면 구민들의 실제 생활 자체가 굉장히 어려워져 있어서, 생각보다 대응이 만만치는 않았던 것 같다. 정말 사람들이 긴축 재정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어려운 상황이 현실로 다가와 있는 것을 최근 많이 느끼게 된다. 이제 이것을 회복하기도 하고 새로운 대안을 만들기도 해야 되는데, 문제는 속도를 어떻게 내느냐는 것이다. 한편으로는 조바심과 조급함도 많이 나서 정신없이 지냈다.” - 지난 1년 동안 추진한 사업 중 가장 뿌듯하게 여기는 성과는 무엇인가.
“취임 직후 ‘구청장 1호 결재사업’으로 역점 추진한 ‘동구노동복지기금 조성사업’이다. 최근 구의회에서 동구노동복지기금 설치·운용안이 통과됐다. 동구는 조선산업이 있는 제조업 중심 도시이기도 하고 노동자들이 많이 밀집돼 있는 곳이기 하다. 그리고 2014년부터 2018년 사이 조선산업이 어려운 시기에 한 3~4천 명이 한꺼번에 일자리를 잃는 아픔을 겪었던 지역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런 부분들을 어떻게 치유하고 함께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 수 있는가 여기에 대한 고민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 지금 현대중공업은 정규직 7천 명 정도 빼고 나면 모두 하청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하청 노동자들이 안정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이 필요했다. 주민들은 우리가 죽도록 일하며 살아왔는데 우리가 생존의 벼랑 끝에 서있을 때 국가는 어디에 있고 우리에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느냐고 묻고 있다고 본다. 이젠 그에 대해 답을 해야 할 시기라고 생각했다. 노동복지기금은 그들에게 위기자금이자 생활안정기금이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아쉬운 점은 당초 계획한 것보다 기금 규모가 조금 삭감된 채 통과됐다는 것이다. 당초 임기 내 100억원 규모로 구 예산을 확보할 계획이었으나 우선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더 의미있다는 판단에 따라 우리 구 본예산의 100분의 5 범위에서 기금 규모를 조성하도록 하는 내용으로 조례가 통과됐다. 그러면 연간 16억 원, 4년 해봐야 80억 원이 채 되지 않는다. 이걸로는 사실은 언 발에 오줌 누기 식밖에 안 된다. 그래서 시작은 우리가 하지만, 이제 광역자치단체나 중앙정부도 함께 실현해나갈 수 있도록 해야 할 것 같다. 80억 원이 아니라 800억 원이라도 만들어서 우리 국민이자 주민이자 노동자인 그들의 삶을 함께 보호해야 한다. 앞으로 울산시장, 고용노동부도 잇따라 만나서 노동복지금 함께 조성하자고 제안할 생각이다. 정규직 노동조합도 만나 사회적 책임을 함께 지자고 말씀드리고 있다.”
- 지난해 국민의힘 의원들의 반대로 동구노동복지기금 조례가 한차례 부결되지 않았나.
“그렇다. 여러 가지 정치적으로 복잡성이 많았다. ‘노동’이라고 하면 일단 진보적인 것이라며 경계하는 부분도 있었고, 노동과 기업을 구분해서 보면서 ‘왜 기업이 아니라 노동이냐’는 시각도 있었다. 결국은 기업을 선택해온 것이 지난 날들이었다. 그 결과 수많은 기술자들은 먹고 살기 위해서 이곳을 떠나야 했고, 해외로 기술이 유출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노동이냐 기업이냐 선택하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논쟁과 같다고 생각한다. 기업 없는 노동이 있을 수 있냐고 얘기하는데, 그러면 노동자 없는 기업이 있을 수 있는가. 이러한 측면에서 기업과 노동자가 공존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게 필요했다. 조선산업이 2026년부터 2027년까지 수주가 거의 다 됐다고 얘기하지만 일할 사람이 없다고 지금 난리가 나 있다. 그 자리를 외국인 노동자가 채우고 있다. 노동자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는 것을 두고 ‘위험하고 힘든 노동을 기피하는 것’이라고만 얘기할 게 아니라, 그들의 노동을 제대로 존중하고 그들의 삶을 보호하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노력했느냐를 먼저 고민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게 늘 정치적으로 선택의 문제로 여겨졌던 것 같다. 이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공존의 문제로 바라봐야 된다고 여야를 모두 설득했다. 그 결과 단지 노동자 살리기를 넘어서 노동자, 기업, 지역이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모델과 모범을 만들어보자는 데 대한 공감대가 이루어지면서 조례가 통과됐다고 본다.”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이 27일 울산 동구청장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동구
- 그밖에 타 지역과 차별화된 사업을 여러 가지 추진하셨는데, 최소생활 노동시간 보장제는 꽤 화제가 됐다. 소개를 부탁드린다.
“올해부터 주 15시간 미만 근무하는 초단기간 노동자에게 주 15시간 이상의 근무시간을 제공해 4대보험 혜택과 연차, 주휴수당 등을 제공하는 ‘최소생활 노동시간 보장제’를 전국 최초로 시행하고 있다. ‘노동을 통해 최소한의 생활은 보장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취지에서다. 우선 구청 및 산하기관에서 일하는 장애인일자리 근무자 등 50여명이 대상인데 이들의 반응이 아주 긍정적이다. 얼마 전 장애인들이 일하는 작업장을 찾아가니 ‘우리도 이제 연차가 생겼다’며 좋아하셨다. 이들이 15시간 미만 근무를 한다는 사실을 구청에 들어오기 전에는 사실 몰랐다. 보건복지부에서 장애인이나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지원책으로 만든 일자리였는데, 착한 일자리인 줄 알았더니, 나쁜 일자리더라. 그래서 근무시간을 1시간만 딱 늘려주면 임금도 늘어나고 노동자로서 받을 수 있는 각종 혜택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처음에는 복지부에서 예산 등의 이유로 어렵다고 했는데, 1시간 이상 노동시간을 추구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책임지겠다고 해서 진행할 수 있게 됐다. 최근에는 다른 지자체에서도 문의를 하며 관심을 보였고, 실제 추진 준비를 하는 지자체도 많은 것으로 안다. 우리의 정책이 나비효과를 일으켰으면 좋겠다.”
- 고향사랑기부금을 활용한 청년공유주택 조성사업도 새롭게 다가온다. 어떻게 추진하고 있나.
“고향사랑기부제는 인구 소멸 등으로 위기에 처한 고향을 살리기 위해 자발적인 기부를 하도록 하는 게 기본 취지다. 그런데 그 기부금이 단체장의 쌈짓돈이 되거나 건설사업에 마구잡이로 사용된다면 기부한 사람들에겐 또 다른 상처를 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목적성을 보다 분명히 하는 게 필요하다고 봤다. 그래서 일반 기부방식의 고향사랑기부금을 특정사업에 지정기부 할 수 있도록 운용방식을 변경하고, 지정기부금을 모아 내년부터 청년공유주택 조성사업을 할 생각이다. 사회에 갓 진출한 청년노동자들은 상대적으로 임금이 적기 때문에 주택비 부담이 크다. 그래서 타 지역에서 동구로 신규 취업하거나 형편이 어려운 청년노동자에게 도심 속 원룸이나 빌라를 리모델링한 청년공유주택을 저렴하게 제공할 계획이다. 청년들과 토론을 하면서 단순히 주택을 제공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단순히 ‘숙소’가 생기는 것만으로는 청년들이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거 개념을 넘어서 문화생활 공동체로서 그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주택을 한번 만들어보려고 하고 있다.”
- 동구의 지금 최우선 현안과 해결 방안은 뭐라고 생각하나.
“인구 소멸 문제가 가장 심각한 것 같다. 10년 사이에 3만 명 정도가 줄어들었고 앞으로 늘어날 가능성이 없는 도시가 돼버렸다. 여러 기관에서 분석한 인구 소멸 우려 지역 1, 2순위로 동구가 거론될 정도다. 농어촌 지역도 아니고, 조선산업이 활황기를 맞이하고 있다는 지금, 동구가 왜 인구 소멸되고 있느냐며 다른 지역 사람들은 이해를 잘 하지 못하는 상황이다. 이 문제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조선산업이 잘 되느냐 안 되느냐 이것만 쳐다볼 문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우리의 삶과 운명을 개척해나가는 방향에서 지역 대안들을 찾아나가야 한다. 기초단체뿐만 아니라 중앙정부, 기업 등 전체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 조선을 넘어서 산업을 다양화해야 하고, 산업 생태계에 맞춰서 산업을 다변화하는 것도 필요해 보인다. 동구에 예쁜 관광지가 많은데, 관광산업을 성장동력으로 잘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다. 대기업 중심의 구조를 넘어서 마을 기업이나 협동조합, 사회적 기업 같은 걸 잘 만들어서 공동체 자산을 구축해내는 것도 지금 필요할 것 같다.”
‘주민자치’ ‘적극행정’ 새로운 모델
- 울산 동구의회 구성을 보면 국민의힘 의원이 다수이고 진보당 의원은 한 명뿐인 여소야대 구도이다. 그러다보니 정책 추진 과정에 어려움도 많을 것 같은데, 이를 어떻게 타개하고 있나.
“물론 쉽지 않다. 정치공학적으로 협치도 하고 논의를 잘 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게 기본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구청장이든 구의원이든 모두 주민들로부터 위임된 권한을 가지고 일을 하는 사람들 아닌가. 그렇다면 주민의 뜻에 따라서 그것을 결정하고 집행할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저는 모든 사업을 추진할 때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것을 우선으로 한다. 주민의 의견에 따라서 우선순위를 정하고 사업을 시작한다. 만약 이 사업을 구의회가 거부한다면 ‘구청장의 사업’을 거부하는 게 아니라 ‘주민의 사업’을 거부하는 게 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지방자치가 주민자치로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그동안 어떤 예산 문제를 두고 여야가 많이 부딪히지 않았던 큰 이유도 거기에 있다고 본다.”
- 단순히 주민 의견을 수렴하는 건가, 아니면 주민자치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는 건가.
“일반 여론 수렴하고는 좀 다르다. 제가 구청장이 되기 전에 주민대회 조직위원장을 맡아 주민대회를 연 적이 있다. 당시 2만 명이 넘는 동구 주민이 모여 어떤 의제가 필요하고 어떤 고민이 있는지에 대해 의견을 냈다. 다 모으면 몇 천 가지가 된다. 그 중에서 의견을 모으고 모아서 토론한 결과를 두고 나중에 투표를 통해 우선순위를 정했다. 그때 1순위로 나온 게 염포산터널 무료화였다. 올해 1월 1일부터 무료화가 됐지만 그때만 해도 터널을 지나가면 이용료를 받았다. 주민들을 매일 들락날락하는 곳에서 왜 돈을 받냐는 당연한 얘기를 하셨다. 제가 취임한 지난해에도 2차 주민대회가 2만 명 참여 속에 열렸다. 하청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해 달라, 돌봄 문제를 해결해 달라는 의견이 주로 나왔고, 이를 바탕으로 정책을 마련하고 예산을 수립하는 과정에 있다. 올해도 3차 주민대회가 열린다. 오늘 조직위원회가 출범해 저도 다녀왔다.”
- 임기 시작 전 진보당 당선인 워크샵에서 “착한 행정은 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고 들었다. 어떤 의미였나.
“늘 해오던 일반 행정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가 강하다. 이를 테면 중대재해처벌법과 관련해서 우리 기초단체에서 할 수 있는 게 뭐가 있느냐고 물으면 법적으로 대단히 제한적이거나 할 수 있는 게 없을 것이다. 하지만 사람이 죽어 가는데 중앙정부냐 지방정부냐를 따지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모두가 당장 나서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닌가. 기초단체에서 하는 관리형 행정이 아니라 그것을 넘어서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면,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이라면, 좀 더 나은 방향으로 갈 수 있는 것이라면 그것은 모든 것이 의제가 될 수 있고 그것을 하기 위한 노력들을 기울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 동구청 1층에 ‘적극 행정’이라고 적혀 있던데, 그런 의미인가.
“그렇다. 전인미답인 것처럼 보이지만, 안 하니까 전인미답이 되는 것 아닌가. 이를 테면 교육 문제는 당연히 교육청 담당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동구를 떠나는 주민들에게 그 이유를 물어보면 아이들 교육을 위해 좋은 환경을 찾으러 간다고 얘기한다. 인구 소멸이 되고 지역이 고령화되고 있는데 교육 문제는 교육청 문제니까 우리는 요구만 하고 있으면 되겠나. 저는 그에 대해 적극적으로 사업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것 때문에 공무원들이 초기에는 좀 힘들어했다. 시각을 서로 맞추는 데만 해도 몇 개월이 걸린 것 같다. 지금도 충분하지는 않지만 최소한 우리 구청 단위에서 왜 교육 문제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는지 정도는 맞춰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2023년 상반기 동구 교육 발전 토론회에 김종훈 동구청장이 참여한 모습. ⓒ동구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 국민 불안 큰 만큼 일단 막고 대책 세워야”
- 최근 들어 지자체나 기초단체가 시민들의 불편 등을 이유로 집회나 시위를 할 장소를 내어주지 않고 있어 갈등이 곳곳에서 빚어지고 있다. 단체장으로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헌법적 권리, 법적 권리 이런 걸 떠나서 조선시대든 어느 시대에서도 사람들의 목소리와 요구를 전적으로 가로막은 적은 거의 없었다. 이를 테면 옛날에 밀양백중놀이(바쁜 농사일을 끝내고 고된 일을 해오던 머슴들이 음력 7월 15일경 지주들로부터 하루 휴가를 얻어 흥겹게 노는 놀이)라는 게 있었다. 그날 하루는 양반에 대해서 마음껏 욕을 할 수 있도록 마당을 열어주기도 한다. 오히려 거기에 돈을 보태주기도 하고 마음껏 먹고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그때도 그들의 목소리를 다 경청한 것이다. 그런 건 사람이 존재하는 한 늘 있어 왔다. 그것이 때로는 토론의 장이 되기도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장이 되기도 하고, 대안을 만들어내는 장이 되기도 하는데, 지금은 집회를 단순히 항의하고 싸우는 것으로만 보고 있는 게 문제라고 생각한다. 집회를 통해 문제 제기를 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어떤 식으로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는 걸까. 총이나 칼을 들어야 하는 거냐고 되묻는 거다. 집회 자체를 가로막으면 문제가 쌓여서 오히려 큰 폭발을 가져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래서 지자체에 집회를 막을 권한이 있느냐 없느냐 이런 걸 떠나서, 그렇게 집회를 막으면 안 된다. 오히려 그렇게 모여서 얘기하라고 해야 하는 거다. 저는 그런 공간이 많이 열려야 한다고 생각한다.”
- 바다와 직접 맞닿아있는 지역인 만큼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방류에 대한 우려도 상당할 것 같다.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실 건가.
“방사능 오염수 방류 문제는 당장 눈에 보이는 피해도 문제지만, 나중에 피해 규모가 어느 정도로 어디까지 확산될지 예측할 수 없기에 주민들이 느끼는 불안감이 더 크다. 며칠 전에 길을 지나가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한 분이 소금을 자전거에 싣고 가시길래 제가 인사를 했더니 ‘김 청장도 소금 좀 사놔’ 이렇게 말씀을 하시더라. 왜냐고 물어보니 소금을 살 데가 없다고 하셨다. 소금을 사러 온 동네를 다녀야 되는 게 현실로 되어 있는데 정부는 문제가 없다고만 얘기하고 있는 셈이다. 설령 진짜로 문제가 없다고 하더라도 국민들의 불안이 큰 만큼 일단 일본에 오염수를 방류하지 말라는 얘기를 해야 하고, 만약 문제가 될 경우에는 우리가 어떻게 하겠다는 대책도 있어야 되는데 이것도 제대로 없다. 상당 부분 어려움과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을 텐데 이를 오히려 정치화하고 있는 것 같다. 국민들의 삶 속에서 이 문제를 바라보고 접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자체 차원에서 오염수 방류를 대응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을 거라고 본다. 다만 오염수 방류가 미치는 영향에 대해서 해안가를 끼고 있는 지자체들과 함께 공동대응 방안을 마련해보려고 하고 있다.”
김종훈 울산 동구청장이 일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정부 대책 마련 및 지자체 공동대응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는 모습. ⓒ동구
- ‘유일한 진보 구청장’으로서 성과를 보여야 한다는 부담도 적지 않으실 것 같다. 어떤 구청장으로 남고 싶은가. 그리고 앞으로 진보정치 실현과 진보집권 모델을 어떻게 만들어갈 건가.
“사실 일을 시작하면서 부담도 많이 컸다. 여기서 우리가 잘 하지 못하면 여러 진보운동과 진보정당이 제대로 발전할 수 있겠는가, 우리가 책임과 역할을 다해야 하는 것 아닌가 이런 고민이 많았다. 각 진보정당 차원을 넘어서서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함께 머리를 맞대어 의제를 만들어내고 공감대를 형성해 함께 문제 해결을 위해 나아가는 계기를 만들면 좋겠다. 이를 통해 진보행정의 모범과 모델을 만들고, 진보행정의 한계를 깰 수 있길 바라며 일을 하고 있다.”
- 작년 지방선거에서 진보단일후보로 당선되셨는데, 내년 총선을 앞두곤 지금도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진보대연합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진보대연합과 노동자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원칙과 방향은 무엇이라고 보시나.
“우리가 진보운동을 한 지는 오래됐다고 하더라도 진보정치를 한 역사는 그에 비해 길지 않다. 그런데 지금은 짧다고 얘기할 수도 없다. 다만 성과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다고 본다. 진보정치를 하는 개개인이 똑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라 하나의 힘으로 단결돼 있지 않아서라는 게 저는 가장 크다고 본다. 그러다보니 진보진영이 어떤 목소리를 내더라도 국민들은, 노동자들은 거기에 주목하지 않는다. 각 진보정당이 주장하는 정책들은 주민과 국민들의 영역에서 들여다보면 어떤 차이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상황에서 서로 자기가 옳다고 목소리를 내는 게 맞는지, 이제는 진보정당, 진보정치를 하는 사람들이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지금이라도 하나로 뭉치게 되면 정말 좀 더 나은 정치를 할 수 있는 길이 열리지 않을까. 서로 가지고 있는 걸 내려놓고 비워야 새롭게 채워지는 건데 지금까지 그러지 못했던 것 같다. 지금은 어떤 정치 논리가 중요한 게 아니라 정말 나라를 구하고 어려운 사람을 위한다면 자기 자신부터 새롭게 출발하겠다는 마음가짐을 가질 때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