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녹색전환을 한다고요?] 자동차 위험사회에서 녹색전환이라는 등불

부산 북부 백산초 뒤 스쿨존 횡단보도. 6월 19일 4시 36분 퇴근하던 사서 교사 백OO 씨가 좌회전 하던 트럭에 치인 사고 현장. 신호등은 꺼져있다 ⓒ백솔빈

한 달 사이 세 명의 교통사고 소식을 들었다. 동료의 아들은 길에서 뺑소니로 세상을 떠났다. 친구 하나는 전주에서 먹통인 보행자감응신호등에 길을 건너다 트럭에 치여 구사일생으로 목숨을 건지고 입원해 있다. 그리고 며칠 전, 친구의 언니는 부산의 신호등 꺼진 어린이보호구역에서 화물차에 치여 의식불명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있다. 기사는 사고의 배경을 이렇게 썼다.

“2023년 6월 26일 오후 4시 36분 부산 백산초등학교 사서 교사 백OO 씨의 사고 구간은 보행자 신호등이 꺼져 있었던 데다 속도위반 카메라조차 설치돼 있지 않아 예견된 인재라는 말이 나온다. 2017년 11월에도 이 사고 지점 근처를 지나던 75세 노인이 차량에 치여 숨지는 일이 발생해, 4년이 지난 2021년 9월 보행자 신호등이 설치됐으나, 보행자도 적은데 신호 때문에 차량이 정체된다는 민원이 폭주해 약 두 달 만에 점멸신호로 바뀌었다.”

자동차가 사람보다 먼저인 위험사회

자동차가 사람보다 먼저인 위험사회에 살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하루에 교통사고로만 772.1명이 다치고, 7.5명이 죽는다. 작년 한 해에만 교통사고로 281,803명이 다쳤고, 2,735명이 죽었다. 이렇게 한국은 교통사고 사망자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국가 중 하나인데, 사망자 중 보행자 비율은 무려 38.9%로 OECD 국가 평균의 2배에 달하는 세계 1위다. 자전거 사고와 사망자 비율도 마찬가지로 높다. 사람이 계속 차에 치이고 있는데, 이 사회는 안전을 보장하지 않고 있다.

자동차에 지배된 사회는 생명을 죽인다. 자동차의 매연은 다량의 미세먼지와 탄화수소 등의 유해한 배기가스를 배출하며, 이는 1943년 로스앤젤레스 스모그처럼 수많은 생명을 앗아가기도 한다. 국제청정교통위원회(ICCT)는 자동차로 인해 2015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약 38만 5천여 명이 조기사망 했다고 밝혔다. 그리고 이제는 자동차를 비롯한 해로운 운송 수단이 전 세계 화석연료 온실가스 배출의 4분의 1을 차지하며 기후위기의 주범으로 꼽히고 있다. 자동차로 목숨을 잃었던 생명들과, 앞으로 잃을 무수한 생명까지 헤아릴 길이 없다.

우리는 정말 자동차에서 벗어날 수 없는 걸까. 2022년 한국의 자동차 등록 대수는 2,550만대로 두 명 중 한 명꼴로 차를 가지고 있다. 교통연구자 전현우는 한국 사회가 자동차에 지배되고 납치되었다며, “자동차는 한국 교통망과 도시 체계의 중심축을 지배하였고, 더불어 제도의 우선순위 역시 지배하고, 길에 대한 사람들의 상상과 심성, 즉 마음도 지배하게 되었다.”고 썼다. 한국 사회는 ‘더 넓게, 더 빨리’를 구호로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했던 반세기 전 신화와 세계관에서 한 치도 못 벗어나고 있다. 8차선 고속도로가 일궜다는 ‘한강의 기적’의 이면에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와 같은 비극이 있었음을 기억해야 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전에 한 번도 경제성장을 멈춰온 적 없는 이 사회는 이제는 기후위기를 목전에 두고 갈 길을 잃고 있다. 자동차 한 대는 있어야 중산층이라는 생각이 기후위기 시대의 한복판에서도 유효할까.

설 연휴 첫날인 21일 오전 서울 잠원 IC에서 바라본 경부고속도로 하행선(오른쪽)에 귀성 행렬이 몰려 정체가 일어나고 있는 모습. 2023.01.21. ⓒ뉴시스


차 없는 도시로 안전한 녹색전환

197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자전거를 타던 6살 딸아이를 교통사고로 잃은 언론인 빅 랑겐호프(Vic Langenhoff)는 ‘아이들을 그만 죽여라(Stop de Kindermoord)’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1970년대 당시 네덜란드는 자동차가 10년 만에 약 3백만 대로 다섯 배가 늘어나, 도로 혼잡과 매연으로 인한 스모그 등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었다. 무엇보다 교통사고 사망자가 3천 명 이상으로 폭증했고 그중 아이들이 약 5백 명 이상이었다. 분노한 시민들은 “아이들을 그만 죽여라”를 구호로 사고다발 지역을 점거하고 자전거로 바리케이드를 쳤다. 이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수십 년간 안전하게 걷고 자전거를 탈 수 있는 ‘차 없는 도시’를 요구하고 만들어왔다. 그렇게 반세기가 지난 지금, 암스테르담은 세계 ‘자전거의 수도’라 불리며, 생태적 한계와 사회적 기초를 보호하는 전환도시의 대명사가 되어 있다.

이는 한 도시만의 역사가 아니다. 북유럽을 선두에, 미국과 호주가 뒤를 이어 세계 도시들은 ‘비전 제로(Vision Zero)’를 실행해 가고 있다. 비전 제로는 아무도 죽거나 중상을 입지 않는 안전한 교통 시스템을 위해, 중심가의 차량과 주행속도 제한, 자전거 도로 확대, 대중교통 강화 등 도시 공공성을 증진시키는 도시 계획이다. 한 예로, 노르웨이 오슬로는 학교 주변으로 ‘심장 구역(Heart Zones)’을 설정해 아예 차량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했다. 그 결과 노르웨이 오슬로는 2019년 보행자 사망자 0명이라는 초유의 기록을 세웠다. 핀란드 헬싱키도 2020년 교통사고 사망자 0명을 이어서 기록했다.

녹색전환은 이처럼 안전한 도시를 만들어 가는 과정이다. 아무도 자동차에 스러지지 않기 위해서는 도시의 모든 것이 바뀌어야 한다. 기후위기가 안전의 문제이기에, ‘비전 제로’와 온실가스 ‘배출 제로’는 함께 간다. 널리 알려진 프랑스 파리시는, 2050년까지 도시의 탄소발자국과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대담한 목표를 내걸고 15분 안에 자전거와 도보로 모든 이동이 가능한 도시로 전환하는 15분 도시(15-min city) 기후플랜을 내걸었다. 이 계획은 시 내 72%의 주차 공간을 없애고 자전거 주차 공간과 공원으로 바꾸고, 차도를 막아 9개 650km의 자전거도로와 보행로 체계로 바꾸며, 시내 차량 통행 속도를 시속 30㎞로 제한하는 것이 골자다. 스페인 바르셀로나는 ‘두려움을 모르는 도시(fearless city)’라는 슬로건 아래 2020년 2050 탈탄소화 목표와 5가지 행동영역 242가지 실전조치를 담은 기후비상사태 선언과 계획을 만들었다. 이어서 채택한 ‘슈퍼블록(Super Block)’이라는 새로운 도시계획 전략은, 기존의 9개 블록 지구를 하나로 묶어 그 사이 기존의 도로에 광장과 녹지축을 형성하고, 자동차 통행을 금한 후 보행자, 자전거, 응급차량만이 출입하게 하는 전환 프로젝트다. 그 외에 콜롬비아 보고타와 메데진의 씨클로비아(Ciclovia)와 같이 지정된 날에 도로의 차량 운행을 통제하고 광장을 만들어 보행자, 자전거 이용자에게만 개방하는 사례도 있다.

1972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아이들을 그만 죽여라(Stop de Kindermoord)’시위. ⓒEnvironmental Justice Atlas

한국 사회는 어디로 가게 될까

한국의 17개 광역 시·도, 223개 기초 시·군·구 지역들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어디로 가게 될까 고민이 앞선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지역이 그리는 미래는 전기차·수소차와 자율주행차 이야기로만 가득 차 있고, 차와, 차도, 주차장을 줄인다는 이야기는 찾아보기가 어렵다. 녹색교통인 대자보(대중교통, 자전거, 보행) 정책은 부족하거나 계획에만 존재할 뿐 추진되지 않는다. 자전거 도로는 차량 도로와 달리 행정안전부 소관 업무라 지자체에서 통합 관리되지 못하고, 도로 건설 및 관리 예산의 많아야 8% 적은 지역은 1%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자전거 수단분담률이 현재 2% 정도에 머무르는 이유다.

이런 현실에서 눈여겨봐야 할 사례가 있다. 미국의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다. 디트로이트는 1958년 자동차 공장이 문을 닫은 후 인구가 185만 명에서 71만 명으로 반토막 나고, 빈집이 7만 8000여 채에 이르며, 부채 180억 달러 파산신청 등으로 미국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에 선정되는 등 급속도로 붕괴를 겪었다. 나락으로 떨어진 채 30년이 넘는 시간을 흘려보낸 디트로이트도 지금은 전환을 위해 한 발자국씩 걸음을 옮기고 있다. ‘더 작은 도시가 되더라도 깨끗하고 친환경 도시’를 모토로 도시재생 TFT를 구성하여, 경기가 살아나기만을 바라며 손놓고 있는 것이 아니라 빈집을 철거해 녹지를 늘리고, 도시농업을 확산해 자급자족 지역 경제를 살려가고 있다. 기후위기 시대의 한복판에서 우리 사회는 어느 경로로 걷게 될까.

세계 어느 지역을 막론하고 전환하고 있는 모든 도시의 공통점은 비극을 깊숙이 성찰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사회가 애를 써왔다는 점이다. 녹색전환은 기후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삶을, 동료 시민들의 일상을 지키는 것이다. 급속도로 다가오는 기후위기와 날마다 생명이 스러지는 자동차 위험사회에서, 전환의 풍경은 멀게 만 느껴진다. 그러나 녹색전환은 등불 같은 말이다. 등불은 먼 발치에서도 희미하나마 그 존재를 드러낸다. 빛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어둠이 걷히고 환해지겠다.  

필자주

전북도민일보(2023.5.10.), 먹통된 감응 신호등에 교통사고 당한 이은호 씨…기자회견 열려,  http://www.dom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1424524

부산일보(2023.6.21.), 어린이보호구역서 교사, 화물차에 치여, https://mobile.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3062118373967287&fbclid=IwAR0prYOMKcqcZodDcoQ_TBba-4qKaLbBhinRRAn5crT9snOkJi8oHsvRtxA

국제신문(2023.6.25.), 스쿨존 꺼버린 보행자 신호…어른도 교통사고 못 피했다,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0300&key=20230626.22010007722&fbclid=IwAR2uUng-44qfXm9b0HoqJoNk3zYZX0DwRw8Fbdyu7CJXdZnp7zaiNJhyaCc

도로교통공단 2022년 교통사고정보 https://taas.koroad.or.kr/web/shp/mik/main.do?menuId=WEB_KMP

안전신문(2021.12.14.), 한국, 교통사고 사망자수 OECD 36개국 중 27위… 10만명당 6.5명, https://www.safety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209365

백솔빈(2023.6.26), 페이스북 게시물 중, https://www.facebook.com/profile.php?id=100089737422155&mibextid=LQQJ4d

연합뉴스(2019.2.27.), "차량 배출 가스로 연간 38만명 조기 사망…경유차가 주범", https://www.yna.co.kr/view/AKR20190227149900009

Alice Larkin(2022), The Challenge of Transport. (Greta Thunberg(2022), The Climate Book, Penguin Books Ltd) 

전현우(2022), 납치된 도시에서 길찾기, 민음사.

미디어오늘(2023.5.2.), [이송희일의 견문발검] 아이들을 그만 죽여라,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309899

파리기후플랜 홈페이지, https://www.egis-group.com/projects/paris-climate-plan  

바르셀로나 두려움을 모르는 도시 홈페이지, https://www.fearlesscities.com/

박용남(2023), 기적의 도시 메데진 - 마약의 수도는 어떻게 전 세계 도시의 롤모델이 되었나?, 서해문집.

시사인(2019), 김연희 기자, 성장이 멈춘 미국 도시가 그 경로를 바꾼다는 것, https://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40495#:~:text=%EB%94%94%ED%8A%B8%EB%A1%9C%EC%9D%B4%ED%8A%B8%EB%8A%94%20%EC%84%B1%EC%9E%A5%EC%9D%84%20%EB%A9%88%EC%B6%98,%EA%B1%B0%EB%9D%BC%EB%8A%94%20%EC%9D%B5%EC%88%99%ED%95%9C%20%EB%AF%BF%EC%9D%8C%20%EB%95%8C%EB%AC%B8%EC%9D%B4%EC%97%88%EB%8B%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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