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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진보 경제학자가 진단한 한국 산업 경쟁력 약화 원인

박상인 교수 “재벌 중심 전속거래가 혁신성 저해…대기업 투자 통한 경제 성장, 이미 한계 입증”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6.29 ⓒ민중의소리

수출로 먹고사는 한국의 무역실적이 고꾸라젔다. 미국과 중국 간 기술 패권 경쟁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저성장에 대한 위기감이 커진다. 정부는 산업 경쟁력을 살리겠다며 재벌 감세를 강행했다. 잘못된 진단에서 나온 잘못된 정책이 위기를 앞당기고 있다는 경고가 나온다.

지난달 29일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를 만나 한국 경제가 처한 위기의 원인과 대응 방안을 짚어봤다. 그는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 상임집행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달까지 9개월째 이어진 수출 감소세는 현황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무역적자는 지난 5월까지 15개월 연속 지속됐다. 27년 만에 최장기다. 지난달 가까스로 흑자 전환했지만, 터널의 끝인지는 불확실하다. 품목으로는 반도체, 수출대상국으로는 중국 쪽에서 부진이 계속되고 있다. 박 교수는 무역수지 악화 원인이 제조업 경쟁력 약화에 있다고 진단했다.

“구조적인 문제가 있다. 2011년 이후 전반적으로 제조업 경쟁력이 떨어지면서 수출 증가율도 떨어지고 있다. 코로나 이전인 2011~2017년 OECD 평균 수출 증가율보다 한국이 낮다. 2000년대 첫 10년간은 OECD 평균보다 한국이 2.5배 높았다. 2011년 전후로 갑자기 떨어졌다. 이전에는 제조업 성장률이 경제 성장률보다 높아서 제조업이 한국 경제를 견인한다고 봤는데, 제조업 성장률과 경제 성장률이 비슷해졌다.”

제조업 경쟁력은 지난 10여 년간 하락세를 걸었지만, 냉정하게 평가가 이뤄지지 못했다. ‘착시현상’이 있었다는 게 박 교수 설명이다. 그는 “2011년 이후에 한국 제조업이 전반적으로 경쟁력을 잃어가고 있다는 지표가 많이 있다”며 “반도체 슈퍼사이클 때문에 다른 문제가 가려져 제조업 위기 문제가 안 보이는 착시현상이 있었다”고 말했다. 이어 “반도체가 나빠지니까 모든 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했다.

중국의 자립화도 한국의 무역수지가 악화되는 구조적인 원인으로 지목된다.

“2000년대 중국 성장이 한국 경기에 엄청난 긍정적인 외부 충격으로 작용했다. 중국을 경유해 수출도 많이 하고, 자본재도 많이 팔았다. 2011년부터는 중국이 우리에게서 수입했던 많은 걸 국산화하고 있다.”

이르면 올해 하반기, 또는 내년부터 반도체 경기가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전망대로라면 한국 무역수지도 일부 개선될 것으로 기대해 볼 수 있다. 박 교수는 여전히 걱정이 크다. 반도체 업사이클이 과거처럼 강하지 않을 것이라는 시각이다.

“메모리 반도체에서 우리가 경쟁력을 얼마나 유지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다. 반도체 전망이 안 좋다. 지금까지는 메모리 반도체에서 집적도를 높여 고성능의 차세대 반도체를 리딩해 왔는데, 기술 한계가 오고 있다. 쫓아오는 기업과 격차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

반도체는 하나의 칩에 들어가는 소자(논리연산을 수행하는 최소 단위의 회로)가 많을수록 성능이 좋다. 메모리 반도체 생산 공정은 회로를 그리는 선폭을 줄이고, 적층 단수를 높이는 방향으로 이뤄진다. 선폭이 좁아지고, 적층 단수가 높을수록 다음 단계로 진입하는 데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소요된다. 한국이 메모리 반도체 분야에서 기술 격차를 유지하는 게 어려워지고 있다는 얘기다.

박 교수는 “미국의 마이크론이 쫓아오고 있다”고 짚었다. 마이크론은 삼성전자, SK하이닉스와 함께 3대 메모리 반도체 기업으로 꼽힌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1분기 D램 시장에서 SK하이닉스를 제치고 점유율 2위에 올랐다. 낸드플래시에서도 지난해 7월, 세계 최초로 232단 제품 양산에 돌입했다.

항구에서 수출 대기중인 컨테이너들(자료사진) ⓒ제공 : 뉴시스

내셔널 챔피언 세제 지원으로 경제 성장하는 시대 끝났다

정부는 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으로 세 부담 완화 정책을 적극 펴고 있다. 지난해 법인세 최고세율을 기존 25%에서 22%로 낮추는 세제개편안을 국회에 제출했으나 처리 과정에서 24%로 1%p만 인하되자, 이른바 ‘K칩스법’을 강행했다. 반도체를 비롯한 국가전략기술 투자에 대한 법인세 세액공제를 확대하는 내용이다. 지난해 여야 합의로 대기업 기준 세액공제율을 기존 6%에서 8%로 상향한 데 이어, 지난 3월부터는 15%로 상향됐다. 또한, 직전 3년 연평균 투자 금액을 초과해 투자할 경우 올해 한시적으로 추가 세액공제율을 4%에서 10%로 올리는 내용도 포함됐다. 윤석열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여당 인사는 ‘반도체 등 국가전략기술은 안보·산업 핵심으로, 법인세를 인하해 경쟁력 강화 지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감세로 주요 대기업 투자를 유인해 성장하는 시대는 끝났다는 게 박 교수 지적이다.

“서유럽과 일본도 2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내셔널 챔피언이 투자를 더 하게 해서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사고방식을 갖고 있었다. 미국과 달리 경쟁 정책을 강화하기보다는 세 부담을 완화하는 조세 정책에 힘을 싣고 보조금을 주는 식이었다. 1990년대 초까지는 작동했다. 당시 세계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게 중화학 공업이었다. 프로세스 이노베이션(공정 혁신)이 중요한 산업이다. 프로세스 이노베이션은 신규 진입 기업보다 기존 기업이 잘한다. 우리도 여기에 특화돼서 성장했다. 1990년대 이후에 문제가 생겼다. 유럽과 일본은 자본재와 연구개발에 계속 투자했는데, 미국과 격차가 점점 벌어졌다. 일본은 잃어버린 30년이 시작된 1990년대 GDP 대비 자본재와 연구개발 투자율이 미국보다 월등하게 높았다. 일본도 대표 기업 투자로 경제를 성장시킨다는 생각을 잃어버린 30년 초반까지도 계속했다. 지금 우리도 마찬가지다. 대표 기업 투자로 성장하는 방식이 한계에 달해서 문제가 생긴 거다.”

“세계 경제가 이른바 혁신형 경제로 이행하기 시작하면서 상황이 바뀌었다. 대표적인 게 IT, 콘텐츠, 바이오와 같은 고부가가치 산업이다. 이 분야에서 혁신은 도전 기업의 새로운 상품이 기존 기업의 상품을 대체하면서 발전하는 식으로 일어난다. 유럽이 내셔널 챔피언 지원을 통한 경제 성장이 막히자 나온 게 슘페터주의 성장 이론이다. 혁신형 성장으로 갈 때는 투자가 아니라 기회와 유인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반도체 분야에서도 칩을 설계만 하고 생산은 외부 기업에 맡기는 팹리스 산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대규모 설비를 갖춘 대기업이 주축이 되는 메모리 반도체와 달리 다양한 혁신 기업이 창의성을 발휘해야 성장할 수 있는 산업이다. 한국은 이 분야에서 존재감이 미미하다. “팹리스를 메모리처럼 접근하면 성과를 내기 어렵다”고 박 교수는 지적했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지난달 2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6.29 ⓒ민중의소리

미국·유럽이 세제·보조금으로 투자 유치? 핵심은 따로 있다

정부는 법인세를 낮추면 국내 투자를 유인하는 효과도 있다고 주장한다. 미국과 유럽이 자국 투자 유치를 위해 보조금 지급 등 정책을 펴고 있어, 한국도 투자 유치 경쟁을 위해 법인세를 내려야 한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정면으로 반박한다. 투자 유치 결정에 있어 세금은 부차적인 요인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투자 유치는 세금으로 되는 게 아니다. 자국 중심 클러스터를 만들겠다고 나선 미국은 기본적으로 팔을 비틀어서 기업을 불러들이고 있는 것이다. 보조금은 부수적인 요소일 뿐이다. 유럽은 탄소중립으로 기업을 끌어당기는 것이다. 한국도 빨리 RE100 여건을 조성하지 못하면 기업이 유럽으로 가게 된다. 유럽이 탄소중립 관련 제재 수위를 높이면서 사실상 관세 장벽으로 작용하게 된다. 보조금만이 아니라, 탄소중립 정책을 못 따를 때 발생하는 유럽 시장에서의 페널티 때문에 기업이 투자하는 것이다. 세금만 깎아주면 한국으로 온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다. RE100 여건을 조성하지 않은 채 법인세를 낮추면, 투자 유치는커녕 기존의 우리 대기업만 이득을 본다. 게다가 우리 기업도 결국엔 외국으로 가게 된다. 법인세 깎아서 외국으로 가는 차비를 주는 꼴이다.”

유럽연합(EU)은 오는 10월부터 철강·알루미늄·비료 등 6대 품목의 수입품에 대해 탄소배출량을 의무적으로 보고하도록 하는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한다. 오는 2026년부터는 수입품 제조 과정에서 발생한 탄소배출량이 EU 기준을 초과할 경우 초과분만큼 탄소배출권을 사도록 한다. 향후 CBAM 적용 품목이 확대될수록, 재생에너지 인프라가 부족한 한국 내 공장은 경쟁력이 약해진다.

세계 주요 기업은 자발적으로 대비에 나섰다. RE100은 기업 활동에 필요한 모든 전력을 태양광, 풍력 등의 재생에너지로 전환하는 목표를 내세우는 캠페인이다. 자발적 캠페인이지만, 강제성이 없는 건 아니다. 최종재를 만드는 고객사들이 부품 기업에 RE100을 요구하고 있다. 대표적인 반도체 수요처인 애플은 2030년까지 공급망을 포함한 제품 생산 전 과정에서 탄소중립을 달성할 계획이다. 재생에너지를 사용해 만든 부품이 아니면 애플에 납품하기 어려워진다.

박 교수는 삼성전자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에 대규모 투자한다는 발표도 실현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앞서 정부는 지난 3월, 용인시에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민간 기업이 300조원을 투자해, 2042년까지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클러스터를 조성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착공 목표 시기는 2026년 말이다.

“삼성전자가 용인에 반도체 공장을 지을 이유가 없는 게, RE100을 할 수가 없다. 삼성전자는 이미 미국과 중국에서 RE100을 한다. 반면, 한국 공장은 재생에너지 사용 비율이 3%도 안 된다. 한국은 재생에너지 인프라 구축이 미흡해 RE100을 달성하기 어렵다. 삼성전자가 정말 용인에 반도체 공장을 세울 계획이라면, 정부에 RE100 환경을 조성하라고 주장해야 한다. 입지도 용인이 아니라, 전라도나 경상도여야 한다. 비교적 재생에너지가 많이 나온다.”

한국에너지공단에 따르면, 경기도의 태양광·풍력·수력 등 재생에너지 발전량은 2,402GWh다. 전남(5,810GWh), 전북(4,616GWh), 경북(4,284GWh)에 크게 못 미친다.

“용인에는 반도체 클러스터를 만들 환경이 갖춰지지 않았다. 반도체 공장은 땅만 있다고 되는 게 아니다. 전력과 용수 공급이 핵심이다. 현재 전기와 물을 어떻게 끌어올지 계획이 없다. 전력만 봐도, 석탄화력 발전소는 가동을 중단하는 추세다. 서해안에 더 이상 석탄화력 발전소를 못 짓는다. 정부는 원자력 발전소를 더 짓겠다는 건데, 남해안·동해안에서 전력을 가져오려면 송전탑을 지어야 한다. 밀양 송전탑 반대 이후로 한국에서 송전탑을 하나도 못 지었다. 전력을 가져올 방법이 없다.”

지난달 27일, 국토교통부는 경기 용인 삼성전자 기흥캠퍼스에서 지자체·관계부처와 반도체 클러스터 조성 지원 전략을 논의하고, 착공 이후 7년가량 소요되는 부지조성 공사 사업 기간을 5년으로 단축한다는 목표를 내놨다. 전력·용수 공급에 차질이 없도록관계부처와 긴밀히 협조할 계획이라고도 밝혔다.

박 교수는 “최근 정부가 용인 반도체 클러스터와 관련해 얘기했지만, 전력과 용수 공급 방안에 대한 구체적인 내용은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삼성전자가 할 수 있는 건 미국이나 유럽에 공장을 짓는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현대차도 마찬가지”라며 “RE100 달성을 위해 결국 미국과 유럽으로 갈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그는 “삼성전자와 현대차로서는 여건이 좋은 곳을 찾아가는 것이지만, 한국 경제와 국민에게는 최악의 경우”라며 “나머지 산업은 안 그래도 공동화되는데, 잘 나가는 주요 대기업마저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의 통상외교 기조에 대한 비판도 제기됐다. 미국이 자국 우선주의와 중국 견제 기치 하에 펴는 정책은 한국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미국 인플레이션 감축법(IRA)은 북미 내 공장에서 생산된 전기차에 대해서만 보조금을 지급한다. 현대차와 기아는 미국에 전기차 전용 공장이 없다. 미국 시장에서 호평받은 아이오닉5와 EV6 등 전기차는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빠졌다. IRA 시행 이후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사 대비 저조한 성장률을 보인다. 박 교수는 정부가 한미일 협력 강화에 골몰하면서도 정작 실리를 챙기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 일본에 밀착하는데, 전략적으로 선택할 수 있다고는 본다. 다만, 그러려면 반대급부로 받는 게 있어야 한다. 미국 IRA는 북미에서 전기차를 조립하면 보조금을 준다. 캐나다와 멕시코에는 역내 지위를 줬다. 나프타(NAFTA·북미자유무역협정)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왜 못 받나. 한미FTA가 있다. 미국과 FTA 맺은 나라는 얼마 없다. 게다가 캐나다·멕시코와는 군사 동맹도 없다. 한국도 역내 지위를 받아 내야 한다. 친미를 하면 받아야지. 그런 걸 못 하면 도대체 친미 하는 이유가 뭔가.”

미중 갈등 국면에서 중국을 적대시하는 데 대해서도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쓸데없이 중국을 도발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과 대만 관계를 왜 남북 관계에 비유하나. 얻은 게 뭔가. 중국을 분노하게 만들고. 미국이 특별히 좋아해 줄 것도 아니다. 중국을 불필요하게 자극할 필요 없다. 중국도 한국 군사동맹을 알고 한국이 안보적인 이유에서 어느 정도 미국 측에 다가갈 수 있다는 걸 인정한다. 미국이 반도체에 관해 동맹국을 휘어잡는 것도 안다. 한국으로서는 그건 그거고, 다른 영역에서도 중국과 관계를 나쁘게 할 이유가 없다. 관계를 잘 관리하는 게 통상외교에서 크리티컬한 부분인데. 이해도 못 하고 있다. 정부가 할 일을 안 하면서 법인세만 깎아준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5월 21일 히로시마 G7 정상회의장인 그랜드프린스호텔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와 한미일 정상회담을 하고 있다. (공동취재) 2023.05.21. ⓒ뉴시스

재벌 감세로 취약계층 소외

법인세 인하는 산업 경쟁력 강화와 투자 유치라는 소기 목적에 부합하지도 않을뿐더러, 재정 상황을 악화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법인세 최고세율 하향과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등 법인세 인하 조치는 내년에 들어올 세수를 축소시키는 요인이 된다. 그렇지 않아도 경기 침체와 수출 악화로 기업 실적이 고꾸라지면서 재정 여력이 축소되고 있다.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올해 5월 누계 국세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19% 감소했다. 지난 4월까지의 감소폭보다 커졌다. 당초 정부가 잡은 올해 세입 예산은 400조 5천억원인데, 6월부터 전년과 동일한 규모로 세금이 걷힌다고 가정해도 목표치보다 41조원이 부족하다. 세수에 펑크가 나는 것이다. 법인세가 주범이다. 5월 누계 법인세수는 지난해 대비 약 28%나 덜 걷혔다.

박 교수는 “재정에 대한 정부 입장은 모순된다. 재정 건전성을 얘기하면서 세금을 깎는다”며 “재정 지출을 적게 하면 재정 건전성이고, 마치 세금 인하는 상관없는 것처럼 얘기한다”고 꼬집었다.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내년도 예산 편성 방향에 대해 긴축재정 공언했다. 그는 “긴축재정을 좋아할 정치권력은 어디에도 없지만 불가피하기 때문에 하는 것”이라며 “정치적 야욕이 아니라 진정 국가와 국민을 생각한다면 긴축재정이 지금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했다.

재벌 감세와 재정 건전성을 동시에 추진하는 모순된 정책은 재정의 역할을 마비시키고 사각지대를 키운다. 박 교수는 “지금 국면에서 중요한 건 취약계층 보호”라고 강조했다. 그는 “재정 건전성을 고수하겠다는 건 취약계층 보호에 돈을 안 쓰고, 재벌 감세만 하겠다는 것”이라며 “거꾸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제기되는 대규모 추경 필요성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입장을 내비쳤다. 민주당은 민생 회복을 위한 35조원 추경을 요구하고 있다. 취약계층 보호 등 반드시 필요한 지출은 법인세 복구 등으로 재정을 마련하고, 지금은 기후변화 대응 과정에서 벌어지는 산업 전환을 위해 재정 여력을 확충할 시기라는 게 박 교수 설명이다.

“앞으로 산업 구조조정이 본격화할 것이다. 산업 전환기에는 대규모 자본이 들어간다. 중화학공업 전환이 시작되면 되면 포스코 제철소는 문을 닫아야 할 것이다. 노동자뿐 아니라, 딸린 비즈니스도 다 영향을 받는다. 이들이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게 기회를 열어줘야 한다. 반대로, 주저하다가 전환을 못 하고 제조업 러스트벨트가 돼도 엄청난 사회적 비용이 들 것이다. 재정 건전성은 중요하다. 그래야 돈을 써도 외국에서 한국 경제 평가할 때 ‘저러다 중남미 된다’는 평가를 안 한다.”

“유럽에서는 오래전부터 전환이 일어나고 있다. 독일은 GDP에서 제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일본과 비슷하게 20% 수준인데, 탄소배출량은 일본이 독일보다 1.5배 높다. 독일에서는 에너지 효율적이거나, 에너지를 많이 안 쓰는 쪽으로 바뀌고 있다. 유럽은 미리 준비를 해온 만큼 전환 비용이 적게 들 것이다. 그래도 돈을 모은다. 한국은 돈을 모으겠다는 계획도 없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가 지난달29일 서울 관악구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교수실에서 민중의소리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2023.06.29 ⓒ민중의소리

재벌 중심 수직구조 풀어야 혁신성이 살아난다

박 교수는 근본적으로, 혁신성을 잃은 제조업 경쟁력을 살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재벌 대기업 중심의 전속거래가 혁신 유인을 해진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전속거래는 대기업 원청이 중소 하청을 상대로 자신하고만 거래하도록 강요하는 거래 행태를 이른다. 원청에 종속된 하청은 협상력을 상실한다. 원청이 납품 단가를 후려쳐도 적정 대가를 요구하지 못한다. 기술을 빼앗겨 사업이 무너지기도 한다.

“중간재 산업에서 혁신이 별로 안 일어난다. 최종재 산업에서도 해외에서 부품을 사야 하는 상황이 됐다. 진화가 단절되면서 제조업 위기가 심각해지고 있다. 제조업 진화 단절 원인은 전속거래 관계에서 발생하는 단가 후려치기와 기술탈취다. 산업 경쟁력 갉아먹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재벌 중심의 수직구조에서 중소기업은 혁신 유인이 없다. 고만고만한 걸 싸게 만드는 데 몰두한다. 그러다 보니 노동자 임금을 깎아달라는 얘기만 한다. 을과 을의 대결이 된다. 소비가 위축되고 양극화도 심화된다. 임금 억제를 통한 성장은 통하지 않는다. 악순환이 반복된다.”

“중소기업은 혁신을 통해 생산성 향상할 수도 있고, 임금을 억눌러서 돈을 벌 수도 있다. 한쪽이 막히면 다른 쪽으로 간다. 지금은 저임금이 먹히니까 그 편이 쉬운 것이다. 효과도 당장 나타난다. 보수 경제학자들이 한국 중소기업 임금이 낮은 건 생산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한다. 생산성이 낮은 건 맞는데, 혁신 유인이 없는 구조에서 오는 결과다. 전속계약을 풀어줘야 한다. 그래야 중간재에서 혁신이 일어나고 생산성이 올라간다.”

산업계는 ‘이제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대기업도 중소기업 상생을 내세운다. 전속거래 문제는 케케묵은 얘기가 된 듯한 분위기다. 박 교수는 전속거래 폐해는 여전히 공공연한 사실이라고 전한다.

“최근에 서울대 정년퇴직한 교수가 도와달라고 연락이 왔다. 아드님이 중소기업을 운영하다가 대기업에 프로그램 기술을 빼앗겨서 망했다고 한다. 그 교수가 말하길 이런 일은 주위에서 얘기로만 들었는데, 실제 당해보니 답이 없더라는 거다. 전에는 장관급 인사로도 거론됐고, 지금은 로펌 고문으로 재직하고 있는 사람이다. 소속 로펌도 대기업과 관계 때문에 안 도와준다고 하더라. 그 교수뿐만이 아니다. 아주 보수적이었던 사람도 한 번 당해보니까 세상이 달라보인다고 한다. 사업하는 사람들은 단가 후려치기와 기술탈취의 무서움을 다들 알고 있다.”

박 교수는 구체적인 대안으로 징벌적 손해배상제와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을 촉구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민사소송에서 당사자 간 증거와 서류를 공개하는 제도다. 제도가 도입되면, 중소기업이 대기업과 분쟁에서 자료 요청을 통해, 보다 동등한 위치에서 다퉈볼 여지가 생긴다. 현재는 대기업이 자료 제출을 거부하면 기술탈취를 입증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한 실정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제 경우 현재 기술탈취에 대한 피해액의 최대 3배까지 배상하도록 하고 있으며, 정부와 국민의힘은 5배로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상한을 올려도 실효성은 미미할 것이라고 박 교수는 본다. 피해액이 아니라 가해 기업의 경제력을 기준으로 배상액을 산정해야 제재 효과가 있다는 설명이다.

“손해액으로 배상액을 산정하면 대기업 원청 입장에서는 내버리면 되는 돈밖에 안 된다. 디스커버리 제도가 없이는 증거를 못 찾는다. 제도적 여건이 안 돼 있다. 중소기업 하청은 소송에서 이기기도 힘들고 이겨도 배상을 얼마 못 받으니 누가 소송을 걸겠나. 반면 소송 코스트는 치명적이다. 가해 기업과 거래 근절은 물론이고, 소송 건 하청이라는 딱지가 붙어 다른 기업도 거래하려고 들지 않는다. 사업 망할 각오를 해야 한다.”

“전속거래 문제는 족히 수십년간 지적된 얘기인데 큰 변화가 없다”고 한탄한 박 교수는 정치권의 역할이 실종됐다고 비판했다.

“우리 경제에서 무엇이 문제인지 핵심적인 이해와 진단이 없다. 단순히 대기업이 투자하면 경제가 성장한다는 개도기적인 인식에 머물러 있다. 정치와 관료의 무책임이 극에 달했다. MB 정부와 박근혜 정부에서 왜 실패했는지 생각도 않고, 그때 한 얘기를 다시 하고 있다. 패러다임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사회적 갈등을 설득해야 하는데 정치가 그 역할을 안 하고 있다. 적극적으로 비전 제시를 안 한다. 일관성도 없다. 정치가 왜소화되고, 풀어야 할 구조적인 문제에는 손을 놓고 있다.”

특히 국회 과반수 의석을 가진 제1야당 민주당을 직격했다. 법인세 최소세율이 막히자 정부·여당이 우회로로 추진한 국가전략기술 세액공제 확대가 국회를 통과한 건 민주당이 찬성했기에 가능했다. 박 교수는 “개혁성을 상실했다”며 “처절한 반성과 함께 정체성을 정립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시민사회에서 정치권을 압박해야 한다고 박 교수는 강조했다. 시민사회에 한국 경제의 문제를 알려야겠다고 생각한 그는 지난 3월부터 유튜브 채널 ‘박상인의 경제브릿지’를 시작했다.

“양극화가 심화된 지금 부자들은 잘 먹고 잘산다. 취약계층은 삶이 힘들어서 관심을 안 가진다. 문제제기를 하려면 기본적인 지식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무엇을 비판할지, 어떤 대안을 요구해야 할지 알게 된다. 너무 답답해서 유튜브를 시작했다. 일단 빌드업한다는 생각으로 하고 있다.”

최근에는 박정희 개발 체제에서 시작된 재벌 중심 수직계열화의 문제를 짚고 있다. 매주 영상을 올리는 박 교수는 “영상 하나 찍는 게 강의 2개를 하는 만큼의 부담”이라면서도, 이번 달부터는 실시간 방송도 계획하고 있다. 시사적인 이슈에 대한 해설도 필요하다는 생각에서다. 그는 “위기가 눈앞에 직면할 때는 이미 대응하기 늦다”며 “대응이 유효할 때 변화를 이끌 수 있도록 할 수 있는 데까지는 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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