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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학교 예술교육 ①] 학교에는 예술강사가 있다

편집자주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은 2000년에 시작돼, 2023년 현재 국악, 연극, 영화, 무용, 만화애니메이션, 공예, 사진, 디자인 8개분야 5,021명의 예술강사들이 8,693개 초중고등학교에서 260만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에 참여하는 학교예술강사 중 기존 경력강사 일정비율을 해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예술강사들의 반발, 국회의 우려로 정부는 지침을 재검토하는 중이다.
예술강사들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그리고 예술강사 당사자들과 학부모, 교수, 교사들은 정부방침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본다.


예술강사로 학교에 처음 가던 날을 떠올려 본다. 전날 준비했던 수업자료를 점검하고 또 하고, 길을 헤매다 수업에 늦지는 않을까 하며 초행길 가는 법을 몇 번이나 숙지하고도 걱정과 설렘으로 잠이 잘 오지 않았다.

4시간이 걸리는 장거리 학교 1교시 수업을 맞추기 위해 이른 아침 집을 나서는데, 상쾌하면서도 쌀쌀한 3월 새벽의 찬 공기와 해 뜨기 전 풍경이 낯설게 느껴지며 문득 기분이 이상해졌다. 어릴 때는 학교에서 만화를 보다가 혼난 적도 많았는데, 시간이 흘러 지금은 예술의 한 분야로 학교에서 당당하게 가르치게 된다니... 신기하고 뿌듯했다.

그렇게 예술강사의 삶이 시작되었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오륜중학교 나래관에서 열린 제2회 국악연주발표회에서 학생들이 국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발표회는 ‘2016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으로 실시해 온 전교생 1인 1국악기 수업의 결실을 발표하고 학교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해 마련됐다. 2016.12.26.  ⓒ뉴시스

학교예술강사란?

학교예술강사 사업은 2000년 국악강사풀제로부터 시작되어 현재 국악, 연극, 영화, 무용, 만화애니메이션, 공예, 디자인, 사진 8개 분야로 확대되었다. 예술현장과 공교육이 연계되어 예술강사가 문화예술교육전문가로 학교에서 활동한 시간이 올해로 24년째다.

전국에 5천여명의 예술강사가 기본교과, 선택과목, 창의적 체험활동, 동아리 등 학교교육 내에서 해당분야의 예술 전문성을 토대로 연간 프로그램을 기획하고 운영하며, 관련 교과수업에서는 교과서를 중심으로 교사-예술강사의 협력수업으로 진행하고 있다. 전국에서 약 8천5백여 곳의 학교에 예술강사가 파견되어 있다. 학교예술강사 파견 사업은 우리나라 대표적인 문화예술교육사업으로 자리매김해 왔다.

예술강사가 되기 전 나는 디자인, 삽화, 애니메이션 등의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었다. 내가 사랑하는 일을 학교에서 아이들과 함께 나누고, 가르치며 아이들 마음속에 예술 씨앗을 하나씩 심고 기르면서 아이들이 점차 창의적인 인재로, 예술인으로 성장하고 결실 맺는 과정을 함께하는 일은 참 멋진 일이었다.

수업하는 학교 게시판에 “예술가가 우리 학교에 찾아옵니다”라는 문구의 예술강사 사업 소개 포스터를 볼 때면 예술인이자 예술강사인 내 직업에 대해 자부심이 느껴졌고, 몇 시간을 가야 하는 멀리 있는 시골 학교 수업도 아이들의 집중하며 반짝이는 눈을 보면 힘들지 않았다.

하지만, 사명감이나 아이들이 주는 기쁨만으로 버티기엔 어려울 때가 많았다. 그리고 지금도 예술강사의 삶은 참 고달프다.

10월 미만 계약의 초단시간 노동자, 그리고 건강보험

학교예술강사는 2020년까지 지역문화재단과 민간단체 등이 위탁운영하다 2021년부터 문화체육광광부 산하기관인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과 직접 고용계약을 하고 있다. 예술강사는 해마다 3월부터 12월 내에서 최대 10개월 미만의 단기계약직이며, 주 15시간 년 476시간 미만의 초단시간 형태로 일하고 있다. 초단시간노동자라 직장건강보험, 주휴수당, 퇴직금 등은 제외된다.

예술강사는 10개월 미만의 단기계약이지만, 계약기간이 아닌 겨울방학에도 하는 일이 많다. 다음 학기 수업을 나갈 학교를 신청하고 배정받는 과정을 거쳐야 하고, 학교와 시간표와 수업 방향도 협의하고, 수업계획을 작성해야 한다. 그 과정이 한 번에 끝날 때도 있지만, 간혹 두 개 이상의 학교에서 시간표가 겹치게 되면 같은 일을 여러 번 반복하기도 한다.

그리고, 최근 더욱 빨라진 새로운 기술이나 매체의 변화 속에서 디지털네이티브라 불리는 세대의 아이들과 문화예술 수업을 하려면, 예술강사도 기술적으로나 감각적으로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연수도 찾아들어야 하고, 새로운 미디어를 수업에 반영할 방법도 연구해야 한다.

이 모든 것이 방학 중에 선행되어야 3월 첫 수업부터 차질 없이 진행할 수 있지만, 예술강사는 첫 수업일 기준으로 계약서를 작성하게 된다. 그리고 해마다 되풀이된다.

문화예술교육 사업을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목표를 두고 설계하면서, 현장에서 정책을 실현 해나가야 하는 예술강사를 억지로 10개월 미만의 초단시간 노동자에 끼워 맞추면서,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직장건강보험, 주휴수당, 퇴직금 제공 의무에서 자유로워졌다.

문체부와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초단시간노동이라는 꼼수로, 우리나라 노동자라면 당연히 보장되어야 하는 사회 기본적인 보호시스템에서 예술강사를 합법적으로 제외한 것이다.

N잡러 예술강사

예술강사 시간당 강사료는 4만 3천원이며(지난 24년간 예술강사 강사료는 4만원에서 딱 한 번 3천원(7.5%) 인상되었음.) 분야별로 차이가 있으나 예술강사 연봉 평균은 약 1,100만원 정도다.

그동안 예술강사보다 낮았던 국공립대 강사 강사료는 9만 원으로 상승했고, 유사 직종의 강사료는 8만원~20만원대 형성되어 있다. 문체부가 강사료 기준을 권고하는 지역문화재단 예술교육 강사료도 5만원~8만원이다.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밝힌 학교문화예술교육 사업의 목적으로 제시한 첫 번째는 “예술현장과 공교육 연계로 학생들의 문화적 감수성 및 인성·창의력을 향상시키고 학교문화예술교육 활성화에 기여한다”는 것이며 두 번째는 “예술인들이 예술 창작활동과 교육활동을 병행할 수 있는 일자리를 지원”하는 것이다. 이를 예술강사가 초단시간노동자로 한정되어야 하는 근거로 삼기도 한다. 하지만 예술인들은 예술강사가 되었다고 나머지 시간 동안 예술활동을 할 수 없다. 다른 일자리를 병행하지 않고서는 기본적인 생계조차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예술강사들은 겨울방학 기간을 보릿고개라고 부른다. 수업이 없으니, 임금도 없다. 다음 해 3월 수업을 하고 4월에 임금이 들어올 때까지 버텨야 한다. 거기다 24년간 물가가 80% 오르는 사이 예술강사의 임금은 오랜 기간 제자리걸음이었다. 지난 겨울 난방비 대란이 크게 쟁점이 되었는데, 난방비뿐 아니라 그동안 물가 인상률을 생각한다면 예술강사의 시간당 강사료는 터무니없이 낮아진 것이다.

불안한 고용형태와, 저임금, 물가인상까지... 생계의 어려움에 놓인 예술강사는 또 다른 비정규직 일자리들을 찾아 헤맨다.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이 주관하는 예술강사 지원사업 ‘예술상상 체험대’가 경기도 안산 화랑초등학교에서 ‘학교별 여행자를 위한 안내서’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2014.08.20.  ⓒ뉴시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학교에 예술강사가 있다

이렇게 열악한 처우에도 불구하고 예술강사가 24년간 버텨온 이유는 하나뿐이다. 재미있는 예술수업을 학교에서 기다리고 있는 우리 아이들 때문이다.

예술강사가 학교에 있다면, 아이들은 살고 있는 지역이나, 부모의 사회적 지위나 교육수준, 경제적 능력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학교에서 문화예술교육을 받을 수 있다. 누구나 학교에서 자신의 적성을 탐구하고 꿈을 키울 수 있다. 문화예술교육을 받은 아이가 예술 전공을 하지 않아도, 성숙한 문화예술 향유자로서 예술의 가치를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는 사람이 될 것이다.

24년 동안 예술강사는 학교문화예술교육의 주체로 맡은 바 역할을 성실하게 해 왔음에도 아직 예술강사라는 직종 자체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초단시간 비정규직 노동자라는 유령 같은 대우를 받는 우리 예술강사의 위상을 알려주는 지점인 것 같아 씁쓸하다.

예술강사를 만나는 아이들 눈에 예술강사가 행복해 보였으면 좋겠다. 그래서 아이들이 마음 놓고 예술을 배우고, 즐기고, 예술인의 꿈을 키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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