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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 학교 예술교육 ➂] 무엇을 위한 문화예술교육인가

편집자주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은 2000년에 시작돼, 2023년 현재 국악, 연극, 영화, 무용, 만화애니메이션, 공예, 사진, 디자인 8개분야 5,021명의 예술강사들이 8,693개 초중고등학교에서 260만명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한국문화예술교육진흥원은 학교예술강사지원사업에 참여하는 학교예술강사 중 기존 경력강사 일정비율을 해고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예술강사들의 반발, 국회의 우려로 정부는 지침을 재검토하는 중이다.
예술강사들은 어떤 활동을 하는지, 그리고 예술강사 당사자들과 학부모, 교수, 교사들은 정부방침에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야기를 들어본다.



현행 예술강사 파견 사업의 시초는 2000년 출발한 국악강사풀이다. 당시 이 사업을 시작한 이유는 간명하다. 제7차 교육과정에서 음악 교과의 국악 비율이 40%로 편성되었다. 그러나 현장 교사들은 거의 양악 중심 전공자들이었으므로 큰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대책으로 등장한 것이 현장 국악인들을 학교로 모셔 교육을 부탁하는 국악강사풀 사업이었다.

물론 국악인들이 이 활동을 통해 얼만 간의 경제적 도움을 받을 수 있으므로 일자리 창출의 의미도 있었지만, 분명 부차적인 것이었다. 그렇기에 초기 주된 관심은 교육 효과를 높이는 데 맞추어져 있었다. 그래서 비록 시행착오도 있었지만, 강사 선발과 연수도 점점 체계화하고 파견 강사들에 대한 평가 및 관리도 계속 개선해 나갔던 것이다.

국악에 이어 2002년부터 강사풀 사업을 시작한 연극계도 마찬가지로 무엇보다 교육 효과에 초점을 맞추어 노력하였다. 초중고 교급별 교재 개발, 140시간 연수 체제 확립, 강사 자체 그룹 연구 및 워크숍, 시간당 강사료 4만 원 책정, 원거리 오지 출강 강사들에 대한 우대, 평가 및 컨설팅을 위해 현역 교수와 교사로 치밀한 지원 조직 구성 등, 조금이라도 나은 교육 여건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였다.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오륜중학교 나래관에서 열린 제2회 국악연주발표회에서 학생들이 국악기를 연주하고 있다. 발표회는 ‘2016 학교 예술강사 지원사업’으로 실시해 온 전교생 1인 1국악기 수업의 결실을 발표하고 학교예술교육 활성화를 위해 마련됐다. 2016.12.26. ⓒ뉴시스


이러한 흐름은 예술 장르 간에 서로 자극을 주며 수준을 향상시키는 선순환효과로 이어졌다. 연극에 이어 2004년 출발한 영화는 대학에서부터 원활한 협업이 가능하였고, 2005년 만화애니메이션과 함께 출발한 무용도 학교 교육의 경험이 많은 데다가 국악과 연극의 긍정적, 부정적 사례를 살피며 충분한 준비를 거쳤기에 꽤 탄탄한 기반 위에서 시작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듯 생산적인 분위기는 지속되지 못 하였다. 경제적 효율을 들이대며 원거리 교통비 지급과 오지 배치 우대를 없애고, 초정밀 맞춤 운영을 추구했던 장르별 위원회도 흐지부지 없애 버리고, 교사와 강사가 함께 했던 세밀한 평가 컨설팅도 지극히 형식적인 평가로 바꾸어 버리고, 4만 원의 강사료는 2017년이 되어서야 단 3천 원을 인상하고, 주휴 수당·고용보험 의무가입 등을 회피하려고 주당 14시간, 월 60시간 미만이라는 악덕기업에서나 할 법한 원칙을 강요하고, 심지어 불성실한 강사를 색출한다며 위치 추적 발상을 내놓기도 하고, 급기야 일자리 순환을 위해 기존 강사의 20%를 해촉하겠다는 과감한 계획까지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교육과 일자리, 그 본래의 의미에 충실하라

예술강사 사업에 “일자리”라는 말이 들어온 것은 2004년이었다. 당시 연극 강사풀 사업의 경우 2002년 예산이 5억 원, 2003년은 8억 원이었다. 그래서 2004년 예산을 60% 증액된 12억 8천만 원을 요청했는데 갑자기 청년 일자리 사업 예산이 추가되면서 20억 원이 되었고, 청년에 해당하는 비율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 되는 조건이었기에 환영했던 기억이 난다. 그런데 그 “일자리”라는 단어가 번번이 문화예술교육의 목을 죄는 덫이 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하였다.

그런데 과연 “일자리”가 나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자기 능력을 살려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보수를 받고 그것으로 자신과 가족을 부양하며 예술활동과 예술교육을 계속할 수 있다면 그처럼 좋은 것이 없다. 그것이야말로 일자리다운 일자리 아닐까? 그러니까 일자리를 내세우려면 그 단어에 합당하게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우선이다. 그런데 좋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노력도, 그 일자리를 늘리려는 생각도 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 기회를 주기 위해 기존 예술강사의 20%를 해촉하겠다고 하니 이렇게 무지스러운 정책을 어찌 정책이라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하지만 예술강사 사업의 출발점은 교육이었다. 교육은 짧은 시간에 전문성이 쌓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오래된 경력 강사들을 오히려 우대해야 마땅하다. 물론 새로운 인력도 필요하다. 그렇지만 그것이 지금 정부가 생각하는 방식이어서는 곤란하다. 현재 전국의 초중고 학교 수, 학급 수를 보건대 문화예술교육은 적어도 지금의 10배 내지 최대 20배까지 확대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꾸준히 예산을 늘리고, 강사들이 교육에 전념할 수 있도록 고용을 안정시키고 처우를 개선하고 복지를 강화하는 것과 함께, 꾸준히 강사 수를 늘려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10년 이상 강사 수는 약 5천 명 내외로 묶여 있다. 이에 대한 반성부터 해야 하지 않을까?

문제가 복잡할 때는 단순하게 단어의 기본 의미부터 생각하는 것이 옳다. 또 그 일의 출발점이 무엇이었는지 되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제발 교육이 무엇인지, 일자리가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한 뒤 정책의 방향을 세워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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