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새로운 뮤지션과 음악이 등장하는 세상이다. 그러니 싱어송라이터 박소은의 두 번째 EP [타임라인]을 듣기 전에 알고 있는 싱어송라이터의 이름이 누구까지인지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박소은의 이름과 음악을 이미 알고 있을 수 있지만, 다린, 다정, 쓰다, 예람, 예빛, 장들레, 장명선, 한로로, 해파 같은 이름은 낯설 수 있다.
이 모든 이름이 생경할 가능성도 충분하다. TV에 나오지 않거나, 유튜브를 통해 접하지 않는 음악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여기는 이들로 가득한 세상 탓이다. 단언하건데 저 이름들은 지금 두각을 보이는 싱어송라이터들이다. 아직은 모르는 이들이 더 많지만, 앞으로는 더 많이 알려지고 사랑받을 이름들이다. 한국대중음악의 현재진행형이자 미래이다.
2016년 제27회 유재하 음악경연대회에서 장려상을 받고, 2017년 첫 싱글 ‘그믐달’을 발표한 후 2020년 정규 1집 [고강동]을 내놓은 박소은은 지난 해 정규 2집 [재활용]을 선보였다. 2018년 발표한 첫 EP [일기]까지 감안하면 지금 박소은이 얼마나 맹렬하게 작업하고 있는지 더 이야기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첫 음반부터 수수하고 정직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던 박소은은 두 번째 EP [타임라인]에서도 진솔한 삶의 연대기를 이어나간다.
박소은 (Park Soeun) - 타임라인 (Timeline)
이 음반은 창작자 박소은 자신의 인생 타임라인을 기록한 음반일 수 있고, 박소은이 창작한 가상의 인생담일 수 있다. 이 음반이 듣는 이들 각자의 삶으로 향하는 타임머신이 될 가능성 또한 충분하다. 모든 사람은 한 때 젊었거나 지금 가장 젊기 때문이다. 박소은이 음반에 담은 사랑과 그리움의 이야기, 관계에 대한 반성과 스스로에 대한 자책의 서사는 많은 이들이 직접 경험했거나 들어서 알고 있을 이야기이다.
“유치한 질문들을 자꾸 하”면서 사랑에 빠지고, “사랑은 순간”임을 깨닫게 되는 일. “말을 할 때 눈을 마주 보려는 버릇” 같은 것들을 알게 되는 경험은 보편적이다. 이미 했다고 해서 다음에는 피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딘가 어설프게” 비틀대는 일 또한 수없이 반복하기 마련이다.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그때 “매일매일 청춘을 녹여댔었어”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순간에는 오직 다 같이 절여질 뿐이다.
[타임라인] 음반에서 박소은은 이렇게 누구나 경험하거나 들었을 삶의 보편적인 타임라인을 생생한 언어로 기록하면서, 그 순간이 안겨줄 수 있는 감각과 인식의 본질을 노랫말에 박아 넣는다. 제일 아픈 마음을 말해달라고, 제일 나쁜 기억을 내게 주라고 말하지 않는 사랑은 사랑이 아닐 것이다. “잠에 들 때 손을 움찔거리는 습관”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관계 역시 마찬가지다. 오늘 같은 우린 다신 없다는 것을 알지 못하는 이에게 그리움이 밀려올 리 없다.
삶의 타임라인은 햇빛 넘치는 기억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 “진부한 자책과 지겨운 연민”, “나의 사랑을 바랐던 적은 한 번도 없었”던 사람과의 관계, “역시 나는 불안함을 버리지 못하겠”다는 초조함 또한 삶의 실체다. 박소은은 내면을 파헤치는 시선으로 쉽게 털어놓지 못할 이야기까지 옮겨 담는다. 얼마나 깊이 내려갔는지, 그리고 얼마나 다르게 표현했는지가 작품의 완성도를 평가하는 기준이라 할 때, 박소은의 노랫말은 생로병사의 중요한 순간을 포괄하지 않았다 해도 노래하는 이의 현재와 가까운 타임라인다운 생생함이 충만하다.
특히 자신을 독립적 개체로 인식하지 않고 타자와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실체를 파악하고 고민하는 노랫말의 태도는 공감과 일체화 뿐만 아니라 이 경우 어떻게 답했는지 돌아보게 하거나, 어떻게 해야 하는지 질문하게 만든다. 박소은은 불안과 연약함과 부끄러움을 대면하게 하는 뮤지션이다. 그 사이에 삶이 있다고 가리키는 뮤지션이다.
박소은의 [타임라인]은 쓸쓸한 음색의 보컬과 직접 써낸 멜로디의 매력만으로 마침표를 찍지 않는 음반이다. 묵직한 통찰은 없지만 진실하고 생생한 고백이 꾸밈을 거부한 목소리를 통해 노래가 될 때, 노래 속의 삶은 다른 순간과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순간으로 피어난다. 이 음반은 그렇게 삶의 화양연화(花樣年華)를 담아냄으로써 박소은을 들어야 할 이유를 확정한다.
대체로 슬로우 템포로 노래하는 박소은은 영롱한 질감의 록 사운드를 담은 ‘2017’을 타이틀곡으로 정했다. 그렇지만 드라마를 고조시키며 분출하는 ‘섬머솔트’나 명징한 멜로디가 아름다운 ‘시간이 어지러울 만큼 빠르게 지나가’에서 박소은의 장기가 더 잘 드러난다. 박소은은 곡을 잘 쓰는 뮤지션이고, 곡이 담지한 정서를 마음 깊이 전달하는 보컬리스트이다. 들어보면 안다. 진실한 태도와 창작력, 표현력을 함께 갖춘 음악인의 노래는 한 번도 멈춘 적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