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사회는 ‘남자다움’에 대한 환상이 확고하다. ‘남자아이들은 활동적이다’, ‘남자들은 싸우면서 크는 거다’, ‘남자는 울면 안 돼’ 등과 같은 말이 한국 남자의 몸과 마음에 굳게 자리 잡고 있다. 강요된 남자다움과 가부장 체제가 결합하면서 굴레를 만들고, 남자들은 그 속에 갇혀 힘겨워한다. 하지만 남자이기 때문에 슬픔도, 아픔도, 힘겨움도 드러내면 안 된다.
그렇게 강요받은 남성의 삶은 겉으로는 강해 보일지 모르나 대단히 위태롭다. 1997년 IMF 금융위기 직후 수많은 실직자가 나왔을 때, 여성 노동자 중에선 어떻게든 일어서려 애쓰는 이들이 많았지만, 강하다고 생각됐던 남성 노동자 가운데선 삶을 포기한 채 쓰러진 이들이 너무나 많았다.
이렇게 ‘남자다움’을 강요받는 삶을 꼭 살아야 하는 걸까? 성평등을 외치면 ‘페미니즘’이라고 낙인찍고 남성 혐오라며 거세게 저항하는 남성들이 있다. 세상이 평등해지면, 남성이라는 이름 앞에 주어진 힘도 조금 사라지겠지만, 그 이름으로 강요된 삶의 무게도 조금은 덜어낼 수 있다. 그런데도 왜 그들은그런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일까? 예수회 김정대 신부가 쓴 책 ‘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하게 살까?’는 한국 남성들이 여러가지 굴레를 벗어버리고, ‘남자답게’가 아니라, ‘나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책이다.
저자는 한국의 중년 남성 노동자들이 해고 같은 위기에 맞닥뜨렸을 때 여성 노동자에 비해 훨씬 더 취약한 모습을 보이는 걸 보고 문제의식을 가지기 시작했다. 이런 문제 의식은 자연스럽게 ‘남성들의 관계적 영성’이라는 주제 연구로 이어졌다. 이 책은 그런 연구 성과에 오랫동안 남성 노동자들과 동고동락하며 지내온 저자의 ‘남성의 자리, 다시 찾기’를 위한 시도가 더해진 것이다.
“나는 ‘왜 남자들은 기를 쓰고 불행히 살까?’라는 제목의 이 책을 ,여성성이 강한 시대에 ‘남성의 자리 다시 찾기’ 위한 목적으로 썼다. 내가 말하는 ‘남성의 자리를 다시 찾기’란 과거의 영광을 재현한다는 의미는 아니다. 부정적 측면은 다 허물고 그 위에 새로운 남성성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저자가 말하는 ‘남성의 자리를 다시 찾기’란 과거의 가부장적이고 권위적인 남성상을 재현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그동안 부정적 측면을 허물고 그 위에 새로운 남성상을 세워야 한다는 뜻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한국 남자에게 강요된 국가와 사회의 요구에서 벗어나 어떻게 진정한 자신을 발견할 것인지, 또 자신다움을 찾고 성숙한 인간으로 거듭난 후 주변과 더불어 멋지게 인생을 살아갈 것 인지, 실천적 대안을 제시한다는 면에서 출간의 의의가 있다.
한국 사회의 뿌리 깊은 가부장제는 여성 뿐만 아니라 남성 또한 힘겹게 했다. 이 책에서 말하는 ‘남성의 자리 다시 찾기’는 궁극적으로 허위와 가식으로 둘러싸인 남성성에서 해방되는 길을 보여준다. 특히 극심한 가부장제의 영향력 하에서 살아왔던 남성을 향해 더 호소력 있는 이야기를 들려준다. 남자들도 때에 따라서는 통곡을 할 수도 있고, 앓는 소리도 할 수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젠 가부장제하에서 얹어진 짐을 덜어내고 남성도 자신의 약함을 제대로 바라봐야 한다. 한국 남자가 겪는 외로움과 무력감은 비단 경제적 위기나 사회적 지위의 상실 같은 외적 이유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기존에 틀지어진 남성성의 왜곡에서 비롯된 것일 수도 있다. 그런 점에서 이 책에서 일관되게 이야기하는 ‘조금 더 홀가분하게 조금 더 나로 살아가라’는 메시지는 매우 희망적으로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