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말 국무총리 직속 자문기구인 경찰제도발전위원회 위원장 박인환이라는 자가 한 토론회에서 ‘문재인 간첩설’을 떠들었단다. “최근 간첩단 사건이 나오는데, 문재인 비호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이라는 둥 “70% 이상의 국민이 문재인이 간첩이라는 것을 모른다”는 둥 헛소리를 난사했다는 이야기.
이 말을 달리 해석하면 국민 30% 정도는 문재인 전 대통령이 간첩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이야기렷다? 박인환 씨, 우리나라에는 신고 제도라는 게 있다. 그게 사실이라면 박인환 당신부터 신고를 하면 될 것 아니냐? 간첩신고는 119, 아니 참, 119는 구급신고지. 그럼 112였나? 아니 참, 112는 범죄 신고지. 그러면 114였나? 아무튼 검색해서 찾아보고 11어딘가로 신고를 해라.
나는 이런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도대체 한국 보수는 왜 1도 발전이 없는지 진짜 궁금하다. 뭐 하면 빨갱이 타령, 뭐 하면 간첩 타령···, 수십 년 째 이어지는 지겨운 레퍼토리 아닌가?
진화의 배신
‘진화의 배신’이라는 개념이 있다. 하버드 대학교 교수 리 골드먼의 책 제목이기도하다. 골드먼은 심장병 전문의이기도 하면서 철학박사 학위도 가지고 있는 인물이다.
지금 인류가 직면한 여러 의학적인 문제들이 있다. 예를 들면 비만, 당뇨, 고혈압, 우울증 같은 문제들이다. 비만, 당뇨, 고혈압은 의학적으로 사람의 생명을 위협하는 가장 중요한 질병들이고, 우울증은 자살을 유발한다. 미국 내 주요 사망 원인을 보면, 심장마비가 1위, 뇌졸중 4위, 당뇨병이 9위, 자살이 10위다.
그런데 골드먼 교수의 주장은 이런 질병들이 과거에는 인류를 보호하는 데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고마운 유전자였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비만만 해도 그렇다. 비만은 많이 먹어서 생기는 현상이다. 그런데 사실 많이 먹는 본능은 한때 인류를 생존시킨 최대 강점이었다.
왜냐하면 먹을 것이 있을 때 최대한 먹어두는 과식 본능은 연약한 포유류였던 인류가 살아남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었기 때문이다. 인류는 가능할 때 최대한 많이 먹어서 몸에 지방으로 축적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살찌기보다 살빼기가 왜 힘들까? 이건 단순한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살이 빠지면 몸에서는 입맛을 돋우는 7개 이상의 호르몬이 대거 분비된다. 그래서 아무거나 다 맛있게 느껴진다. 심지어 이 호르몬 수치는 한번 높아지면 몇 년 동안 지속된다. 인류의 몸은 최대한 많은 음식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진화가 됐다는 이야기다.
맵고 짠 음식을 좋아하는 것도 생존 본능 중 하나다. 나트륨은 인간 신체에 필수적 요소다. 물론 필요로 하는 양이 그렇게 많지는 않다. 하지만 인간은 무지하게 짠 음식을 잘 먹는다. 고대 인류가 소금을 쉽게 구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먹을 수 있을 때 최대한 먹어두도록 몸이 설계된 것이다.
지금은 우울증이 자살을 유발하는 ‘악의 근원’처럼 보이지만 이것도 사실 인류의 생존본능이었다. 예를 들어 내 앞에 사자가 나타났다고 해보자. 인류가 “어, 저 사자가 나를 노려? 내가 먼저 죽여주겠어!” 이러면서 덤벼들면 살 확률이 높겠나, 죽을 확률이 높겠나?
당연히 죽을 확률이 높은 거다. 실제로 선사시대 조상들의 죽음 중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한 게 비명횡사인데, 이 비중이 15%나 됐다고 한다. 그리고 비명횡사의 대부분은 살인을 당한 것이었다.
그래서 인간은 살인에 대비하기 위해 두려움을 극대화하는 유전자를 지니게 됐다. 공포 상황이 되면 맞서는 게 아니라 동굴 속 음침한 곳에 숨어서 덜덜 떨어야 살아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즉 경계심과 공포심이 인류 생존에 크게 기여를 한 것이다.
문제는 이런 유전자가 지금까지 남아서 과도하게 작용할 때 생긴다. 뇌가 스트레스 물질을 너무 많이 분비시키는 바람에 매사를 경계하고 별 것 아닌 일에 공포를 느낀다. 이게 바로 우울증의 원인이 된다.
한때 인류를 생존시켰던 최강의 유전자들이, 지금은 인류를 죽이는 최악의 병기가 됐다니 참 아이러니한 이야기 아닌가? 골드만 교수의 책 제목이 ‘진화의 배신’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과거의 강점은 지금의 약점으로 변한다
경영학에도 ‘이카루스 패러독스’ 혹은 ‘이카루스 역설’이라 불리는 비슷한 개념이 있다. 이카루스는 고대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발명가 다이달로스의 아들이었다. 그런데 다이달로스와 이카루스 부자(父子)는 어떤 이유로 신의 미움을 받아 감옥에 갇힌다.
매우 뛰어난 발명가였던 다이달로스는 감옥에서 새의 깃털을 밀랍으로 붙여 날개를 만든 뒤 이를 이용해 탈출을 했다. ‘이카루스의 날개’는 다이달로스, 이카루스 부자를 감옥에서 구해준 최고의 무기였다.
그때 다이달로스는 아들 이카루스에게 신신당부를 했다. 절대로 태양 가까이 가지 말라고, 그러면 밀랍이 녹아 날개가 떨어진다고 말이다. 하지만 이카루스는 날개라는 자기의 강점을 과대평가했다.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하고 태양을 향해서 더 높이 날아오르다가 밀랍이 녹고, 날개는 떨어져 목숨을 잃는다.
이 이야기들의 교훈은 아무리 우리를 지켜준 강점이라도, 변화에 대한 경계심이 없거나 변화를 모색하지 않으면, 과거의 장점 때문에 오늘 내가 죽는다는 것이다. 2001년 경제잡지 포춘이 세계 100위 기업을 선정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9년 뒤인 2010년 그 100개 기업 중 48개가 순위표에서 사라졌다. 성공신화에 매몰돼 변화를 못 받아들이면 이렇게 소멸된다.
박인환 씨를 비롯해 문재인 간접 운운하는 무려 30%에 달하는 보수 여러분들, 뭐만 하면 빨갱이다 뭐만 하면 간첩이다 이러던 것은 옛날 당신들을 먹여 살렸던 최대 강점이었다. 그걸 빌미로 수많은 민주투사들을 죽이고 가두는 방법으로 댁들이 수십 년 동안 먹고 살았다.
그런데 정신들 좀 차려라. 지금 그 짓은 너희들이 사는 길이 아니라 죽는 길이다. 분단국가라는 특징 때문에 저 빨갱이 타령이 우리나라에서는 생각보다 오래 먹혔다. 하지만 시대와 역사는 바뀐다. 지금 전 세계 어떤 나라에서 보수가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 빨갱이 타령을 하더냐?
국민의 마음을 얻으려면 실력을 키워라. 먹히지도 않을 색깔론에 매몰돼 아직도 허우적거리는 저 한심한 집단을 보니 이 나라에서는 건전한 보수, 혹은 따뜻한 보수 이런 걸 쥐뿔도 기대하기 어렵다는 걸 잘 알겠다. 뭔 놈의 나라 보수 세력이 70년 전이나 지금이나 빨갱이 타령 하나로 먹고 살려고 하니 이 나라 정치가 당최 발전할 길이 안 보이는 거 아니겠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