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이나 면세점에 간 사람이라면, 공통적으로 엄청난 ‘화려함’을 느낀다. 그리고 그 중 ‘명품’ 화장품이나 의류, 가방 매장에서는 두 번 놀란다. 우선 가격에 놀라고, 다음으로는 그 물건을 여러 개 사는 사람들 때문에 놀란다. 백화점, 면세점의 이같은 화려한 공간은 구매력이 꽤나 높은 고객들이 출입하는 장소다.
이런 고객을 상대하는 사람들이 바로 백화점, 면세점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이다. 거의 대부분 여성이다. 보통 깔끔한 디자인의 유니폼을 입고 단정한 머리 스타일을 한 채로일하며, 한국 사회 통념상 ‘미인’으로 분류되는 외모를 지니고 있다. 상냥한 표정을 짓고 입가엔 옅은 미소를 머금고 있다.
지난 6월 초 국회에서는 이 노동자들의 노동 실태를 광범위하게 조사한 내용의 연구가 발표됐다. 바로 ‘백화점·면세점 판매 서비스 노동자 노동실태조사’**인데, 전국의 노동자 3,456명이 참여해, 근래 보기 드문 규모의 실태 조사였다. 유효표본의 약 40%는 노조가 없는 사업장에서 일하거나 노조에 가입하지 않은 응답자였다.
조사 결과는 충격적이었다. 응답한 노동자의 10%가 ‘고객으로부터의 폭력’에 노출된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현행 ‘감정노동자 보호’ 규제와 ‘직장 내 괴롭힘 금지’ 규제 등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보여준다.
응답자의 16%는 ‘미스터리 쇼퍼’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미스터리 쇼퍼는 고객인 척 물건을 사며 매장 직원의 친절도, 판매 기술 등을 평가해 개선점을 제안하는 모니터링 요원이다. 그런데 이런 당초 취지가 왜곡된 채로 운영돼 문제다. 미스터리 쇼퍼가 매장에 와 진상을 피우며 판매 노동자들의 감정노동을 극대화 한 후, 그 결과를 평가해 인사고과에 반영하기 때문이다.
‘인력 부족’도 문제였다. 인력 부족으로 끼니를 거른 경험이 있는 응답자는 무려 80%에 달했다. 응답 노동자의 50% 정도는 아파서 출근하지 못한 경험이 있었는데, 응답자의 40%는 아파도 출근을 해야만 했다고 답했다. 사람이 없어서 밥 먹으러 갈 시간도 없고, 몸이 아파도 쉬지 못하는 것이다.
제일 심각한 것은 화장실 문제였다. 응답자의 30%가 직원 화장실이 부족하다고, 40%는 직원 화장실이 너무 멀다고 했다. 응답자의 40%는 고객 화장실을 사용하면 안 된다는 권고를 받은 적이 있었고, 약 20%는 고객 화장실을 써서 불이익을 받은 적이 있다고 밝혔다. 판매 서비스 노동자들이 정상적으로 화장실을 사용할 수 없다는 의미이며, 이는 결국 질병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실제 적잖은 판매서비스 노동자들이 방광염을 앓고 있다. 여성이 남성보다 요도가 짧아 방광염에 더욱 취약한 신체구조라는 점을 고려하면 특히 부정적인 상황이다.
이 뿐만이 아니었다. 응답 노동자의 약 50%는 ‘임신 중 태아검진’ 시간을 확보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고, ‘생리 휴가’가 제공되지 않는 경우는 무려 75%에 달했다. 여성 노동자가 다수인 사업장에서 여성에게 반드시 보장되어야 할 건강권, 사회재생산 권리가 지켜지고 있지 않았다.
여성 노동자가 많은 사업장에서의 안전보건 정책은 ‘성(性)인지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여성이 감정노동에 노출되는 수준은 남성의 그것과 큰 차이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예를 들어 콜센터에 전화를 걸어 여성 상담사에게 욕하던 고객은 문제 행동으로 인해 남성 상담사가 다시 전화를 걸면 결코 욕을 하지 못한다. 그래서 콜센터에서 남성 노동자는 임금을 더 받고 주로 악성 고객을 다룬다.
이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여전히 약자라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 각종 실태조사***에서 전반적으로 여성 노동자들이 남성 노동자들보다 감정 노동을 많이 하고, 이로 인한 큰 스트레스를 느끼는 것으로 나타나는 점도 이 때문이다.
건강한 노동자가 좋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백화점·면세점 업종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이 곳에서 일하는 여성 노동자들이 건강권을 확보돼야 한다. 더욱 강력한 감정노동자 보호조치가 이루어져야 하고, 더 많이 쉴 수 있게 해야 하며, 모성보호 조치도 더 적극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무엇보다 가장 먼저 인간 생존 차원의 문제인 화장실부터 제대로 갈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미 2018년 고용노동부는 ‘고객용 화장실 사용 가능' 지침을 통해, 각 업체에 시정 지시를 한 바 있다. 이 문제에 있어선 백화점, 면세점을 운영하는 유통업체의 지지와 지원이 필수적이다. 원청으로서의 역할을 다해야 한다. 물론 고용주인 입점업체 사업주가 법을 지켜야 하는 당사자임은 부인할 수 없다.
백화점·면세점 판매 여성노동자들은 1일 평균 8.7시간을 근무하고, 평균 월급여 267만원을 받는다. 그리고 25%는 비정규직 신분이다. 이들의 노동조건이 이들이 판매하는 상품만큼, 발 딛고 서 있는 매장만큼 화려하지 않는 것은 분명하다. 이들을 고용한 입점업체, 유통업체들이 초대형 기업인 점을 감안해 봤을 때 사회적 책임을 묻지 않을 수 없다.
** 김종진·윤자호·송민정(2023), 「2023 백화점 · 면세점 판매직 노동환경 실태 보고서」, 백화점면세점판매서비스노동조합·일하는시민연구소 보고서. *** 감정노동전국네트워크, ‘2019년 감정노동 및 직장 괴롭힘 실태조사 결과’, 2019. 전국의 병원, 백화점 및 콜센터, 정부 기관 등에 근무하는 노동자 2,765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진행한 결과, 응답자 중 여성 62%와 남성 42%가 감정노동으로 인한 고통 때문에 심리적 치유가 필요한 상태로 나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