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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으로 세상읽기] 잘못된 사랑으로 목숨을 잃은 화가 주니오르

잘못된 사랑이 예술의 소재로 쓰이면 대개 비극으로 끝을 맺습니다. 작품에서  그 부분이 어떤 내용이 되는지에 따라, 관객이나 독자들은 희열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 목숨을 잃는 사람이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살다 간 화가가 있었다면 여러분은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이것은 브라질 화가 호세 페라즈 드 알메이다 주니오르 (José Ferraz de Almeida Júnior / 1850 ~ 1899)의 이야기입니다.

프란세스 아주머니 Nhá Chica (Aunt Francie) 1895 oil on canvas 109cm x 72cm ⓒ상파울루 주립 미술관, 브라질

창을 열고 담뱃대를 문 아주머니는 잠시 몸을 쉬며 쉽지 않았던 지난 시간을 회상하는 것 같습니다. 생각에 잠긴 눈과 꼭 다문 입술은 그녀의 의지가 아주 강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험한 삶을 살았지만 신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했던, 그림 속 ‘프란세스’란 여인은 브라질의 실제 인물입니다. 노예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그는 열 살이 될 때까지 노예로 살았습니다. 자유의 몸이 된 이후엔 평생 교회를 지으며 가난한 사람들 속에서 살았습니다. 지난 2013년 그는 아프리카 출신 브라질 여성으로는 처음 '복자'(가톨릭교회에서의 성인 전 단계, 순교하거나 덕을 쌓아 신자들의 공경을 받는 사람) 반열에 올랐습니다.

주니오르는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멀지 않은 이투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이투에 있는 교회의 종치기였던 그는, 교회를 위한 그림도 그렸던 것 같습니다. 그 그림들이 주임 신부의 눈에 들었고, 열아홉 살이 되던 해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왕립 미술 아카데미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오지에서 올라온 그는 시골 습관과 말투 때문에 도시에서 살아 온 다른 학생들과 친해지지 못했습니다. 소위 ‘왕따’가 된 것이지요.

독서 Reading 1892 oil on canvas 95cm x 141cm ⓒ상파울루 주립 미술관, 브라질

참 여유로운 모습입니다. 풍경 좋은 베란다에 앉아 아주 편한 자세로 독서삼매에 빠진 여인의 모습이 주변과 잘 어울려 고요하고 매력적입니다. 맞은편 의자에 옷을 걸어 놓고 손수건을 의자에 올려 놓은 사람이 잠시 자리를 비웠지만, 책에 빠진 여인은 그것에는 별 관심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여인의 머리카락이 심상치 않습니다. 땅에 닿을 정도로 머리를 길게 기르는 것이 당시 유행이었을까요?

학교를 졸업한 주니오르는 고향인 이투로 돌아와 화실을 열고 초상화가로 활동합니다. 또 학생들에게 드로잉을 가르치는 교사가 됩니다. 1876년, 주니오르는 상파울루에서 실내 장식 일을 맡아 작업을 했는데, 이때 그린 작품을 당시 브라질 황제인 폐드루 2세가 보게 됩니다. 작품이 마음에 들었던 폐드루 2세는 후원을 해주었고, 주니오르는 이에 힘입어 파리 유학을 가게 됩니다. 에콜 데 보자르(École des Beaux-Arts, 프랑스 국립미술학교)에 입학해서 아카데미즘의 대가 카바넬의 화실에서 공부하며, 귀국할 때까지 총 4번에 걸쳐 파리 살롱전에 작품을 출품합니다.

기타 치는 사람 The Guitar Player 1899 oil on canvas 141cm x 172cm ⓒ상파울루 주립 미술관, 브라질

창가에 앉은 남자가 기타를 연주하자 목에 수건을 건 여인은 노래를 시작했습니다. 남자는 곡에 푹 빠진 얼굴인데, 노래를 부르는 여인의 표정은 남자보다 더 절실합니다. 추측컨데 달콤한 내용의 노래보다는 힘든 삶에 대한 노래가 아닐까 싶습니다. 저렇게 속에 있는 것을 머리끝까지 토하고 나면, 새로운 기운이 몸 안으로 들어가 다시 버틸 힘을 만들어 주지요.

주니오르는 귀국 후 상파울루에 화실을 엽니다. 곧 커피 농장 부호들부터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사람들의 초상화 제작 주문을 받게 되고, 한편으로는 브라질 미술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는 평도 받게 됩니다.

그는 이후 세 번의 유럽 여행을 하면서 작품 기법을 아카데미즘에서 사실주의로 바꾸고, 역사화나 종교화를 그리던 것에서 브라질 서민들의 일상이 담긴 풍속화를 그리는 쪽으로 변합니다. 이로 인해 브라질 아카데미에서도 다루지 않았던 주제를 다룬 그에게 ‘브라질 사실주의의 선구자’라는 평가가 붙게 됩니다.

그리움 Saudade 1899 oil on canvas 197cm x 101cm ⓒ상파울루 주립 미술관, 브라질

엽서를 읽는 여인의 눈이 가늘어졌습니다. 떨어지는 눈물을 참으려면 그 방법밖에 없겠지요. 그렇지만 눈물은 이미 그녀의 뺨으로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그리움으로 꽉 찬 여인의 몸 어디를 눌러도 그것이 밖으로 스며 나올 것 같습니다. 포르투갈어에서 온 ‘Saudade’라는 단어는 ‘다시는 못 만나는 것에 대한 그리움’을 뜻한다고 하는데, 이 여인이 느끼는 감정이 그것 아닐까요? 여인이 그리워하는 대상은 누구일까요?

그림 가운데 일부 ⓒ상파울루 주립 미술관, 브라질

안타깝게도 주니오르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습니다. 1899년 11월, 그는 상파울루 피라시카바에 있는 센트럴 호텔 앞에서 사촌이 휘두른 칼에 찔려 세상을 떠납니다. 이 사촌의 범행 이유에 대해선 여러 추측이 있습니다. 자신의 아내와 주니오르가 예전에 잠깐 교제를 했던 사이라는 것을 알고 격분해서 범행을 저질렀다는 설도 있고, 주니오르와 사촌의 아내가 꽤 긴 시간 비밀스러운 관계를 유지한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는 자료도 있습니다. 정황으로 보면 후자에 무게가 실립니다.

참 허망합니다. 이후 브라질 정부는 주니오르의 업적을 기려 그가 태어난 5월 8일을 ‘조형 예술가의 날’로 정했습니다. 그의 삶은 ‘잘못된 사랑의 끝은 비극’아라는 걸 보여주는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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