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열흘 내내 서울 양평 고속도로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원희룡 국토교통부장관이 ‘날파리’ 운운하며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백지화한 뒤 벌어진 일이다.
세간에서는 차기 대권을 노린다는(응? 네가?) 원희룡 장관이 승부수를 던졌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그런데 내가 보기에 원 장관은 뭔가를 내려놓은 게 분명해 보인다. 그 뭔가는 아마도 ‘개념’일 것이다.
자기 딴에는 승부수를 던졌다고 던졌을 터인데 내가 보기에는 세상에서 제일 멍청한 짓을 원 장관이 저질렀다. 우리 솔직히 이야기해보자. 내가 무식한 탓인지는 몰라도 나는 원 장관이 서울-양평 고속도로를 백지화하기 전까지 그 고속도로가 계획된 줄도 몰랐다.
그런데 원 장관이 날파리 승부수(?)를 던진 다음 그 고속도로에 관한 각종 의혹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수많은 언론이 달라붙어 여러 단독 보도들도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온다. 그렇다면 그게 승부수냐? 멍청한 자살골이지.
스트라이샌드 효과
경제학에는 스트라이샌드 이펙트(Streisand effect)라는 이론이 있다. 유명 가수이자 배우인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rbra Streisand)의 이름을 딴 이론이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이렇다. 2003년 케네스 아델만(Kenneth Adelman)이라는 사진작가가 캘리포니아 해안을 사진으로 찍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 프로젝트는 캘리포니아 해안이 얼마나 침식되는지를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작업으로 캘리포니아 주 정부의 지원을 받았다. 아델만은 해안 사진을 1만 2,000컷이나 찍어 픽토피아닷컴이라는 웹사이트에 올렸다.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스트라이샌드가 등장했다. 스트라이샌드가 아델만과 사이트를 상대로 소송을 건 것이다. 이유인즉슨 사이트에 올라온 사진 중 하나에 자신의 저택이 찍혀 사생활이 침해됐다는 것이었다.
이해하자고 들면 이해 못 할 일은 아니다. 그의 집은 엄연한 그의 사적 공간이기 때문이다. 허락도 받지 않고 내 집 사진을 누군가 인터넷에 올린다면 나라도 기분이 좋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사진을 찍은 아델만 쪽은 “사진을 내릴 수 없다.”며 강경하게 버텼다. 그가 내세운 이유는 ①일단 스트라이샌드 집을 찍으려는 생각이 없었고 ②사진에 스트라이샌드 집이라고 밝히지도 않았으며 ③그 사진들은 해안 침식을 기록으로 남기기 위한 공익적 목적으로 찍은 사진이라는 게 아델만의 반론이었다.
결국 이 논쟁은 무려 5,000만 달러(550억 원)짜리 초대형 소송으로 번졌다. 그렇다면 사생활 보호를 중요한 가치로 생각하는 미국에서 스트라이샌드는 승리를 거머쥐었을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스트라이샌드는 소송에서 패배했다. 법원이 아델만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스트라이샌드는 승리는커녕 아델만의 변호사 비용 15만 5567달러(약 1억 7,000만 원)까지 물어줘야 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소송 직후 그 사진의 조회 숫자가 폭발적으로 늘었기 때문이다.
애초 픽토피아닷컴에 올라왔던 저택 사진의 다운로드 횟수는 고작 여섯 건에 불과했다. 심지어 그 여섯 건 중 두 건은 스트라이샌드 변호사가 소송 준비를 위해 다운을 받은 것이었다.
사실 말이야 바른 말이지 캘리포니아 해안 침식 사진을 굳이 찾아볼 사람이 얼마나 되겠나? 게다가 무려 1만 2,000컷이나 되는 사진 중 스트라이샌드 저택이 찍힌 그 한 장의 사진을 유심히 볼 사람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스트라이샌드가 소송을 걸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도대체 집이 얼마나 으리으리하기에?”라는 궁금증이 폭발했고 단 한 달 만에 사진 다운로드 횟수는 무려 42만 건으로 폭증했다.
그래서 만들어진 이론이 ‘스트라이샌드 효과(Streisand effect)’다. 스트라이샌드 효과란 자기에게 불리한 콘텐츠를 삭제하려고하면 할수록 온라인에서는 그 콘텐츠가 더 큰 이슈가 된다는 뜻이다. 더 쉽게 말하면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고, 보지 말라면 더 보고 싶은 청개구리 심보’라고나 할까?
청개구리 심리
이런 예는 어떤가? 길을 걷는데 담벼락에 작은 구멍이 나 있다. 그 구멍 위에 “절대 들여다보지 마시오!”라고 적혀 있다. 독자 여러분은 그 구멍을 들여다보겠는가, 참고 지나가겠는가? 짐작컨대 백이면 백, 그 구멍을 들여다볼 것이다.
사실 “절대 들여다보지 마시오!”라는 경고만 없었다면 그 구멍을 들여다볼 사람은 거의 없다. 바빠 죽겠는데 담벼락에 난 구멍이 뭔 대수라고 그 구멍을 일일이 들여다본단 말인가?
하지만 “절대 들여다보지 마시오!”라는 문구 하나로 모든 상황이 바뀐다. 이건 안 들여다보고 지나가기에 너무 궁금하지 않나? 사람에게는 묘한 청개구리 심리가 있어서 “하지 마, 하지 말라고!”라고 강요받을수록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의 심리를 이용한 마케팅 전략도 등장했다. 공포 영화를 선전하며 “심장이 약한 사람은 절대 관람하지 마세요.”라고 경고하거나, 남녀 공히 사용할 수 있는 로션 같은 상품에 굳이 “여자만의 비밀, 남자는 절대 보지 마세요.”라는 홍보 문구를 붙이는 게 이런 전략이다. 게다가 저런 광고 문구가 붙은 공포 영화를 지나치면 왠지 내 심장이 약한 것을 인정하는 것 같은 기분마저 들어(이건 자존심이 많이 상한다!) 효과가 배가된다.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이런 심리가 있다는 걸 전제로 날파리, 아니 참, 원희룡 장관의 자칭 승부수를 분석해보자. 대통령 처가에게 혜택을 주는 일 따위를 처리하려면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는 게 상식 아니냐? 그걸 자기 대권 도전 승부수로 활용한답시고 온 국민이 그 문제를 다 알도록 떠벌리고 다니면 대통령이 참 예뻐라도 하겠다(나는 멍청한 윤석열 대통령이 진짜 원 장관을 예뻐라 할까봐 그게 걱정이다).
지난주 각종 여론조사에 따르면 원 장관의 서울-양평 고속도로 백지화 선언 이후 윤석열 정권의 지지율이 5~7% 가량 폭락했단다. 안 그래도 바닥인 지지율이 지하실까지 추락한 셈이다. 원희룡 장관, 진짜 대단한 승부수 던지셨다. 당신의 멍청함에 진심을 담은 비웃음을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