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우크라이나를 방문해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대통령과 회담을 가졌다. 회담 후 내놓은 말도 공세적이다. 윤 대통령은 "생즉사 사즉생(生卽死 死卽生)의 정신으로 우리가 강력히 연대해 함께 싸워나간다면 분명 우리의 자유와 민주주의를 지켜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운다는 것인데 이는 미국과 우크라이나, 혹은 나토와 우크라이나의 관계에서도 나오기 어려운 말이다.
윤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방문은 우리가 '글로벌 중추국가'이고 '가치를 앞세우는 외교'를 해야한다는 명분의 연장선일 것이다. 미사여구를 빼고나면 우리가 미국의 충실한 동맹으로 아시아를 넘어 전세계의 분쟁과 갈등에서 역할을 하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실제 우리 정부는 폴란드와 미국을 경유하여 우크라이나에 포탄을 지원해 왔다. 이번에 윤 대통령과 젤렌스키 대통령이 합의한 '군수물자' 지원이 더 많은 살상무기 지원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충분해 보인다.
우리가 미국의 세계전략에 협조해온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 베트남에 대규모 전투부대를 파병했고, 21세기 들어서도 이라크 전쟁과 아프가니스탄 전쟁에 참여했다. 하지만 최소한 겉으로는 미국의 요구에 마지못해 응하는 차원이었다. 지금처럼 스스로 명분을 만들어 앞장을 서지는 않았다. 한반도에서의 긴장과 대결을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었고, 타국의 분쟁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을 꺼리는 국민적 합의가 있었기 때문이다.
지금 국민 다수가 "생즉사 사즉생"의 정신으로 러시아와 맞서야 한다고 생각하는 지는 의문이다. 당장 미국과 나토 회원국조차 그렇지 않다. 미국은 파병은커녕 우크라이나가 '지지 않을 정도의' 무기를 지원하는 데 그치고 있고, 유럽 국가들은 나토 정상회의에 참석한 젤렌스키 대통령에 대해 노골적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윤 대통령의 '가치외교'가 미국과 유럽보다 더 앞서가는 것으로 보일 정도다.
우크라이나인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공감하고 인도주의적 지원을 확대하는 데에는 누구도 이견이 없을 것이다. 그러나 전투 당사자 중 일방의 편을 들어 사실상 전쟁에 개입하는 건 현명하지도 올바르지도 않다. 나아가 언제 끝날지도 불분명한 전쟁에서 재건 사업 참여를 거론하는 것은 염치없는 짓이다. 무엇보다 외교는 국민적 합의와 공감대 위에서 추진되어야 한다. 정권의 임기는 정해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