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재난 상황에 부적절한 대통령의 언사

지난 주말 경북과 충북 일대에서 폭우로 인해 다수의 인명피해가 발생한 가운데, 국민 생명과 안전을 지킬 책무가 있는 정부의 최고 책임자인 윤석열 대통령이 내놓는 말들은 심히 우려스럽다.

윤 대통령은 이미 각종 피해가 발생한 이후인 지난 16일 순방 중이던 폴란드 현지에서 중앙안전대책본부와 화상으로 연결해 “재난 대응의 제1원칙은 위험지역에 대한 진입통제와 물길의 역류나 범람을 빨리 인식해 선제적으로 대피 조치를 시키는 것”, “경찰은 지자체와 협력해 저지대 진입통제를 무리하다 싶을 정도로 해달라” 등의 언급을 했다. 17일 오전에 직접 주재한 중대본 회의에서는 “국민 안전을 담당하는 공무원들은 집중호우가 올 때 사무실에 앉아만 있지 말고 현장에 나가서 상황을 둘러보고 미리미리 대처하라”고 지시했다.

그러나 대통령 자신의 책무에 관해서는 “순방 일정 중에 실시간으로 호우 피해 상황과 대응 조치를 보고받았고, 현지에서 화상 회의와 유선 지시를 통해 총력 대응을 당부했다”는 수준에 그쳤다. 윤 대통령의 말에서 드러나는 건 ‘나는 똑바로 지시를 했는데, 일선에서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인식이다. ‘국민 안전과 생명을 책임지는 대통령으로서 이런 상황이 초래된 점에 대해 유감이다’는 정도의 최소한의 사과 표명도 내놓지 않았다.

대통령의 이러한 언사는 매우 부적절하다. 수십 명이 사망한 중대한 재난이 발생했는데, 국가 최고 책임자의 한마디 한마디가 일선 공무원들, 나아가 하급 관리들에게 책임을 묻는 식이라면 그것이 맞는가. 대통령의 시각이 중앙 재난 관리 시스템의 미비점이 무엇이었는지, 컨트롤타워는 제대로 작동했는지 등 국가적 책무에 맞춰져 있지 않고, ‘선제적으로 판단해 진입통제를 잘 해야 한다’는 식의 일선 현장의 1차원적 대응 문제에 집중돼 있다면, 국민들이 과연 국가로부터 보호받는다는 생각이 들지 의문이다. 재난 때마다 여가와 휴일을 반납해가며 희생하는 일선 공무원들의 근무 의욕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다.

중대 재난이 발생했을 때 국가 지도자가 어떤 태도를 취하고 어떤 말을 하는지가 국가의 안전 관리 시스템과 공직 사회에 어떤 영향을 주는지, 윤 대통령의 고심이 필요해 보인다.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