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기고] 만행(萬行)이 어우러지는 곳 ‘사회연대쉼터’

사회연대쉼터 10주년, 정태춘 후원 콘서트를 맞아

저만치 보이는 마을을 향해 논길을 걸었다. 마을이 나오는 가 했더니 산길로 접어든다. 차 한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포장된 산길을 삼십 분 정도 걸으니 언덕배기 올라가기 전 귀정사라고 새겨진 나무기둥이 보인다. 일주문을 그리기에는 너무도 소박한 그저 여기는 절입니다 하는 알림판 정도다. 언덕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요란스럽지 않은 건물 몇 채가 절의 형상을 갖추고 맞이한다. 형상에 압도되지 않은 소박함이 한결 마음을 편하게 했다.

2015년 7월 중순 무렵 무더위가 한참 기승을 부리는 성하(盛夏)에 나는 그렇게 귀정사에 터를 낸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 식구가 되었다. 2012년 6월부터 사무총장과 의원 등으로 활동하며 일했던 민주노동당에서 박근혜 정권에 의해 ‘진보정당 강제해산’이라는 초유의 반헌법적 탄압을 받으며 2년 6개월 만인 2014년 12월 19일 강제로 쫒겨나고 반년 정도 이리저리 싸우다가 잠시 시간을 갖자 하는 생각에 찾은 곳이 귀정사에 있는 사회연대쉼터였다. 우리 사회 여러 부문에서 힘써 헌신하며 살아 온 사회운동 활동가들과 국가폭력, 자본폭력에 맞서는 이들을 위한 무료연대쉼터를 지향하고 있었다.

민중의소리와 인터뷰 하는 오병윤 전 통합진보당 국회의원(자료사진) ⓒ민중의소리

사실 사회연대쉼터가 어떤 곳인지도 모르고 산속 절에 거처할 만한 곳이 있으니 잠시 머물러 있겠느냐는 지인의 권유에 무작정 가게 되었다. 무엇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그렇게 몸도 마음도 가파르고 뜨거웠던 시절이었다.

숲속의 황토방에 행장을 풀고 자리를 잡으니 고요한 적막 속에 풀벌레 소리 싱그러이 들려오니 평온함이 온몸에 퍼진다. 아! 이렇게 편안할 수도 있는가? 이렇게 여유로울 수도 있는가? 하는 생각에 괜히 무언가 잘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이라도 편하면 뭔가 할 일을 방기하고 있는 듯 지레 불편함으로 다가오는 오래된 습관이다.

사실 그야말로 정신없이 살아왔다. 1980년 5월 이후 분노의 시간을 보내다 1983년부터 본격적으로 소위 “운동”에 뛰어든 이후 늘 쫒기는 생활이었다. 무슨무슨 대책위의 집행위원장 등이 직업이었던 것 같다. 아마 1980년 이후 한 시대를 최선을 다해 살고자 했던 많은 청춘들은 누구나 비슷했을 듯싶다. 특히 2012년 6월 이후 2년 6개월 정도의 국회생활은 몸과 마음이 늘 초긴장 상태였다. 주어진 책무에 대한 중압감, 업무의 과중함, 거기에다 상상을 넘는 정권의 탄압 등에 늘 머리가 무거웠다.

그러던 중 별 생각 없이 찾았던 곳이 이렇게 평온함을 주다니….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편안함이었다. 누구의 간섭도 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갖고 혼자만의 생각을 하고 혼자만의 행동을 하면 그뿐이었다. 며칠에 한 번씩 피우는 장작 불꽃이 그렇게도 황홀했고 황토방 아랫목의 은근한 온기를 몸은 너무나도 달짝지근하게 받아들였다.

사회연대쉼터의 청정무공해 밥상

그러다가 사람을 만나기 시작했다. 절 아래 밭에서 일을 하고 있는 귀밑머리가 희끗희끗한 중년의 일꾼, 바로 사회연대쉼터를 송경동 시인 등과 함께 개척한 고 최정규 선배셨다.

2000년대 초 남원에 있던 민주노동당 연수원에서 뵌 이후 오랜만에 뵈었다. 1970년대 초 광부로 독일에 갔다가 노동운동과 조국의 민주화 운동에 뛰어드신 분이다. 독일에서 퇴직 이후 조국의 노동운동에 빠져 민주노동당을 거쳐 민주노총 비정규 사업을 담당하셨던 분이다. 노동에 대해 원초적이고 태생적인 무장이 되어 있는 분이다. 얄팍한 이론 따위로는 접근조차 안 되는 노동투사셨다. 나에게 사회연대쉼터에 대한 기본을 일깨워 주신 분이다.

쉼터와 절의 유기농 먹거리를 위한 농사도 담당하셨는데 다음 해 봄에 독일로 훌쩍 떠나셔서 내가 농사 담당을 이어받게 되는 바람에 예상치 않게 2년여를 쉼터에 주저앉게 한 장본인이시다.

실상사 귀농학교를 마치고 아랫마을 요동에 자리 잡아 농사를 지으며 절의 여러 일을 챙기시는 문해성 처사님도 잊을 수 없는 분이다. 한마디로 참으로 경우지신 분이다. 기본적으로 민중적 품성과 도리가 몸에 배이신 분이다. 귀정사 공동체의 한 구성원인 숲살림원 이귀섭 원장, 공공운수노조에서 오래 일하다 귀농한 김종호,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서 일하다 내려 온 김진, 동섭 처사, 현규·인숙 부부, 그리고 마을 주민인 해석, 종대 등도 잊을 수 없는 사람들이다. 쉼터 공동대표로 과거 성균관대에서 불교학생운동을 했고, 민중불교연합 사건으로 옥살이까지 한 후 출가해 절 살림을 관장하시는 중묵처사야말로 은근함이 부처님 같은 분이셨다.

혼자만의 쉼이 주는 평안함이야 말할 수 없이 좋다. 그러나 더불어 좋은 사람과 함께 어우러지는 기쁨만큼 소중한 삶의 양식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쉼터 초기 혼자만의 여유로움에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사는 공동체의 경험을 갖게 된 것은 또 다른 마음 치유의 계기들이 되어 주었다.

필요한 물건을 그때그때 돈을 주고 사서 쓰면 그뿐, 생산과정에 얽힌 사람들의 노동의 수고로움은 하등 가치 없이 취급되는 물신화된 자본의 역사에는 노동도 인간도 없다. 노동의 소중함과 인간의 존귀함을 되찾고자 하는 사람들의 몸부림은 자본의 탐욕과 권력의 야합으로 늘상 짓밟혀 왔다. 그래도 다시 일어서서 생명 살림의 길로 나아간다. 그 길에 나서는 사람들에게 얼마간의 안식을 주는 따뜻한 쉼이 있고 사람의 숨결이 있는 곳, 그곳이 바로 사회연대쉼터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2년여 쉼터에 있는 동안 거쳐 간 많은 사람들이 기억난다. 그들도 나와 같이 삶의 한 과정에 쉼터를 통해 안식과 평온함을 얻고 새로운 희망을 쌓아갔을 것이다.

그렇게 내게도 아무런 대가없이 소중한 인생의 시간의 예비해 주었던 귀정사 사회연대쉼터가 이제 설립 10주년을 맞이한다. 고맙게도 우리 시대의 음유가수인 정태춘 선배님께서 오는 9월 2일, 후원 콘서트를 열어준다고 한다. 여기에 맞춰 기금 마련 사업도 한 차례 연다고 한다. 쉼터의 오늘이 있기까지 보이게, 보이지 않게 수고로움을 감당해온 분들에게 감사드리며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이 새로운 10년 20년을 이어갈 수 있게끔 따뜻한 연대의 손길이 넓게 넓게 퍼져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후원ㆍ연대 CMS 바로 가입】 http://www.shimte.org/5_etc/member.php
【10주년 콘서트 신청 및 후원하기】 bit.ly/쉼터후원의날

사회연대쉼터 10주년, 정태춘 후원 콘서트 ⓒ자료사진
송경동 시인이 말하는 사회연대쉼터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기사 원소스 보기

기사 리뷰 보기

관련 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