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라의 첫 정규 음반 [꽤 많은 수의 촉수 돌기]는 유라가 아니라면 다 이해하기 힘든 노랫말이 가득하다.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 ‘따갑고 부끄러워지는 것’, ‘허영 깊은 분위기에 실오라기 같은 눈을 가진 자’라는 제목부터 생경하다. “구운 듯한 얼굴이 너의 / 너의 모티프가 돼 / 귀퉁이 옆만 더 걸어가자 / 영원을 약속한 화원을 지나 / 바람이 지난 자리만 / 그늘을 알 수 있을까?”(‘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 같은 노랫말은 어쩌면 유라 본인조차 다 알고 쓴 이야기가 아닐지 모른다.
그만큼 음반의 수록곡 8곡은 꿈 이야기, 꿈 같은 이야기, 꿈이 된 이야기 중 어떤 것이라 해도 좋을 모호한 찰나의 포착으로 채워져 있다. 명징한 서사에 길들여진 사람에게 이런 노랫말은 낯설고 당황스러울 것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미 꿈에서 싹튼 예술작품이 적지 않다. 꿈은 무의식의 반영이라는 프로이트의 이야기가 맺은 열매들이다.
예술은 알고 있는 것만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모르는 것, 알지 못하는 것까지 말하기 위해 존재한다. 보고 듣고 느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재현할 수 없는 이야기를 전달하고 설명하기 위해, 대면한 순간의 충격과 당혹감을 공유하고 해명하기 위해 예술이 필요하다. 그 모호함과 인지불가능을 인정할 때, 인간은 세상의 실체에 다가설 수 있다.
유라 (youra) - 구운듯한 얼굴이 너의 모티프(Motif)
그러니 음반의 수록곡들이 몽환적인 기운으로 가득 채워져 있는 게 당연하다. 알앤비 싱어송라이터의 음악이기 때문에 몽롱한 사운드를 구현하는 방식이 당연하다고 말할 일이 아니다. 음반의 수록곡들은 일반적인 알앤비의 어법에 붙잡혀 있지 않다. 간명한 벌스와 훅으로 축약할 수 있는 음악 또한 아니다.
유라는 알앤비뿐만 아니라 록과 재즈의 어법까지 자유롭게 활용함으로써 노랫말과 제목에 걸맞는 사운드를 직조한다. 유라의 나른한 보컬은 즉흥연주처럼 산개하는 연주와 함께 무한정 뻗어나간다. ‘목에게’의 문을 여는 기타 연주는 테마를 반복하지만, 곧 리듬이 바뀐다. 기타 트레몰로 연주는 포스트록 사운드를 선보이면서 종잡을 수 없어진다. ‘그늘 덮개’는 보사노바이고, ‘허무한 허무함의 패턴’은 록일만큼 유라는 곡마다 다른 사운드로 종횡무진한다.
노랫말이 음악의 일부라면 보컬과 연주, 구성과 사운드가 음악의 나머지를 확고하게 분담하는 음반이다. 곡의 비트가 빠르거나 느리거나 연주는 어지럽게 중첩되어 있을 뿐 아니라 예상할 수 있는 흐름을 부수고 전진한다. 재즈적이라고 해야 할 만큼 즉흥성 강한 음악은 순간을 포착해낸 노랫말 속 환상 같은 세계와 조응하며 몽환적인 아름다움을 창출한다. 이 음반이 가치와 의미를 획득하는 이유이다.
유라의 음반은 장르의 혼종일 뿐 아니라, 혼종의 어법으로 노래하고 연주하면서 무작정 매혹적인 순간들을 들이댄다. 근사한 멜로디가 등장하고, 남다른 연주가 출몰하며 예상을 깨는데, 그 순간의 앙상블이 전형적이지 않아 새로우면서 아름답다.
유라 (youra) - 수풀 연못 색 치마(The Cherry Trees)
그 새로움과 자유로움과 아름다움이 음반의 마력을 구현하는 원동력이다. 유라와 베이시스트 송남현을 비롯한 뮤지션들은 록과 보사노바와 발라드의 어법까지 집어삼키며 다른 질감으로 탄생시킨다. 그래서 귀를 기울여 들을수록 들을 게 많은 음반인데, 분절되기만 할 뿐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는 위험을 능수능란하게 피해가는 감각적인 연주가 음반을 특별하게 완성한다.
하지만 정교하게 듣지 않고 유라의 보컬이 선사하는 나른한 질감을 따라가기만 해도 충분히 즐거울 음반이다. 익숙한 음악, 다른 이들이 듣는 음악을 따라 듣는 것만으로 만족한다면 굳이 듣지 않아도 될 음반이지만, 새로운 음악을 듣고 싶다면, 음악의 작법이 얼마나 다양할 수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음반이다. 유라가 수록곡 8곡 전부를 타이틀곡으로 미는 것은 패기나 용기가 아니다. 그보다는 자신감이며 당당함일 것이다.
모든 예술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해야 할 필요는 없다. 예술에서 중요한 것은 아름다움과 개성이지 친절함이 아니다. 단지 이 음반이 낯설기 때문에 호평하지 않았듯, 친숙하지 않다는 이유로 멀리하거나 폄하할 필요는 없다. 듣는 이들에게도 편견 없는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좋은 음악이 널리 사랑받으려면 뮤지션과 평론가의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고르지 않은 길도 가보자. 빈틈없이 다 먹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