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도 최저임금이 올해 9천620원보다 고작 2.5% 오른 9천860원으로 월급 206만원으로 결정됐다. 시간급 240원, 월급 기준으로는 5만원정도 오른 것이다. 공공요금과 식료품비 등 폭등하는 생활비를 고려하면 최저임금에 영향받는 수백만 명의 소득이 크게 삭감될 형편이다.
이번 최저임금 협상에서 사용자측은 어느 때보다 경직된, 심지어 고압적인 태도로 임했다. 사용자측은 경영상의 어려움을 이유로 최초안으로 동결안 즉, 9천620원을 제시했다. 이후 10차에 걸친 수정안은 이렇다. 1차 9천650원(+30), 2차 9천700원(+50), 3차 9천720원(+20), 4차 9천740원(+20), 5차 9755원(+15), 6차 9천785원(+30), 7차 9천795원(10), 8차 9천805원(+10), 9차 9천830원(+25), 10차 9천840원(+10). 최초안에서 10차 수정안의 차이는 220원에 불과하다. 10원, 15원, 20원, 30원 등의 인상안은 협상을 계속할 의사가 있는지도 의심스럽게 했다. 이에 반해 노동자측은 최초안 1만2210원에서 10차 수정안 1만20원으로 2천190원을 낮췄다. 저임금 노동자들의 처지를 반영하면서도 어떻게든 협상을 타결하려는 의지를 드러냈다.
과연 무엇이 노동자의 거듭된 양보에도 모욕적으로 느껴지는 10원, 15원 인상안을 연이어 던지도록 했는가. 바로 정부가 사용자의 뒷배가 되었기 때문이다. 이미 윤석열 정부는 반노동을 국정기조를 천명하고 지난해부터 1년 동안 노조 때려잡기에 매진해왔다. 화물연대, 건설노조는 물론이고 이미 노동현장 곳곳에서 합의 파기, 불성실 협상, 강압적 노무관리가 속출하고 있다. 가뜩이나 기울어진 최저임금 협상 운동장은 수직으로 선 것처럼 일방적으로 흘러갔다. 일부에서 노동계가 마지막에 실리를 걷어찬 것처럼 왜곡하지만, 말도 안 되는 협상으로 파행을 유도해놓고 푼돈이라도 감사하게 받으라는 것은 너무 졸렬하다.
사실상 정부 입장을 대변하는 공익위원들은 최저임금위원회 무력화에 앞장섰다. 위원장과 공익위원들은 최저임금이 합당하게 결정되도록 협의를 촉진할 역할이 있음에도 사측의 협상 해태에 수수방관했다. 정부 고위관계자와 경사노위 위원장은 ‘내년 최저임금이 1만원을 넘지 않을 것’이라고 가이드라인을 사전에 제시하기도 했는데, 공익위원들을 통해 정부의 일방적 사용자 두둔이 재삼 확인됐다.
헌법은 “국가는 사회적·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한다”고 명시했다. 최저임금법은 “임금의 최저수준을 보장하여 근로자의 생활안정과 노동력의 질적 향상을 꾀함으로써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을 목적이라 밝히고 있다. 그러나 기업경영이 어렵다는 매년 똑같은 타령의 사용자와 이를 비호하는 정부가 헌법과 법률로 규정된 최저임금제도를 무력화했다. 지금의 물가폭등 시기에 최저임금 2.5% 인상이라면, 노동계가 아예 참여를 하지 않았어도 결과가 다르지 않았겠다는 여론이 많다. 이미 오랫동안 최저임금을 국회에서 결정하고 정치적 책임을 지자는 방안 등도 나왔으나 그와 별개로 지금과 같은 논의에 노동계가 참여할 이유를 찾기 힘들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