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이태원 참사에 부실하게 대응하고 그 책임을 회피한 것을 이유로 국회에서 가결된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 탄핵안을 기각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실시된 국무위원 탄핵심판에 헌재는 지나치게 소극적인 법률적 잣대를 들이댔다. 결과적으로 헌법에 대통령과 별도로 국무위원의 탄핵을 규정한 취지를 허물고, 정치적 갈등 해소를 위한 최후의 권위라 할 헌재의 위상과 기능을 스스로 실추시킨 꼴이 됐다.
헌법재판소는 25일 이 장관의 탄핵심판 선고에서 재판관 9명 전원일치로 기각을 결정했다. ▲참사 전 이 장관이 재난을 예방하기 위한 의무를 다했는지 ▲참사 이후 조치가 적절했는지 ▲장관으로서 국가공무원법상 성실·품위유지 의무를 지켰는지, 세 가지가 쟁점이었다. 소수의견을 낸 4명의 재판관은 이 장관이 재난 수습 과정에서 국가공무원법상 성실 의무와 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고 지적했으나 이 역시 탄핵할 정도는 아니라고 판단했다. 나머지 사유는 미흡함이 있더라도 탄핵할 정도는 아니라는 것에 전원이 같은 판단을 했다.
헌법에서 대통령과 국무위원, 법관 등에 대해 탄핵 사유를 ‘직무집행에 있어서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때’라고 규정하지만, 탄핵심판은 형사재판과는 다르다. 직무집행에 대한 책임을 다했는지를 판단하는 것이고, 기소에 해당하는 절차 역시 민의를 반영하는 국회에서 하도록 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가결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부결 역시 형사재판과 별도로 이루어졌다. 더욱이 국무위원 탄핵은 대통령이 마땅히 책임을 물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경우를 상정한 것이다. 그럼에도 헌재가 소극적인 태도로 법률 위반 여부를 중심으로 따진 것은 유감스럽다. 법률 위반만 따질 것이라면 대법원이 아니라 굳이 국무위원 탄핵제도를 두고 헌법재판소의 판단을 구할 이유가 있겠는가.
근본적으로 이번 탄핵은 159명이 희생됐음에도 정부 누구도 유족과 국민 앞에 진솔하게 사죄하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사태에서 빚어졌다. 특히 담당 부처 장관의 허술한 대응과 후안무치한 태도는 국민적 공분을 불렀으나 대통령은 오히려 그를 감쌌다. 헌재에서 탄핵안을 인용했다면 정치적 책임을 물음과 동시에 국가적 갈등 해결도 돌파구를 찾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기회를 갖지 못하게 됐다.
당장 탄핵 기각 이후 절망과 울분을 감당하기 어려운 유족들은 이제 어디에 기대고 누가 돌볼 것인가. 탄핵 기각 직후 마치 면죄부라도 받은 양 당당하다 못해 뻔뻔하기까지 한 이상민 장관의 입장문이나 헌재 앞에서 극우시위대가 유족을 향해 퍼부은 인면수심의 모욕과 조롱은 온전히 헌재 선고가 낳은 결과다. “거야의 탄핵소추권 남용” “국민의 준엄한 심판” 운운하는 대통령실의 철면피함도 마찬가지다. 따라서 탄핵 기각이 결코 사태의 종결일 수는 없다. 패스트트랙 절차 중인 이태원특별법을 통과시켜 참사의 진실을 규명하고 책임을 물을 때까지 유가족과 시민들의 노력은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