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받는 스트레스 가운데 가장 심한 것이 자식을 잃은 슬픔일 것 같지만 실제로는 배우자의 사망이라는 통계가 있습니다. 화가들의 이야기를 읽다 보면 배우자의 사망으로 인한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스스로 세상을 등진 사례들이 등장합니다.
모딜리아니가 세상을 떠나고 이틀 뒤, 그의 아내 잔느 에퓨테른느는 임신 9개월의 몸을 창 밖으로 던져 생을 마감합니다. 점묘법의 대가였던 이탈리아 화가 주세페 펠리차 다 볼페도(Giuseppe Pellizza da Volpedo / 1868 ~ 1907)도 아내의 부재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둠 속에서 밝은 빛이 있는 곳으로 걸어 나오고 있습니다. 행렬 앞에는 세 명의 사람이 있는데 가운데 있는 남자와 왼쪽의 남자는 상의를 벗어서 어깨에 걸고 한 손은 바지춤에 넣었습니다. 물러서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의 표시입니다. 자신에게는 무거워 보이는 아이를 안고 있는 여인은 남자를 향해 무언가를 말하는 듯 합니다. 그런데 그녀는 맨발입니다. 마치 혁명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처럼 보입니다.
펠리차의 대표작인 이 작품은 농장 노동자들의 파업에서 영감을 얻어 제작한 작품으로 몇 개의 다른 버전을 거쳐 최종본이 완성될 때까지 10년이 걸렸습니다. 제1계급은 성직자, 제2계급은 귀족, 제3계급은 부르주아 그리고 제4계급은 노동자, 농민을 말하기에 이 작품은 사회주의 운동을 대표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펠리차는 이탈리아 피에몬테 지역에 있는 볼페도라는 곳에서 태어나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한 화가입니다. 훗날 펠리차는 빈치가 고향인 레오나르도가 고향 이름을 자신의 이름에 붙였듯이 그도 자신의 고향인 볼페도를 이름에 추가합니다. 부유한 농부의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평생 새로운 화법과 주제를 끝없이 찾아 노력했던 화가였습니다.
가운데 남자는 조반니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는데, 펠리차와는 사회주의에 대해서 자주 토론을 했던 목공 사업자였습니다. 그 옆의 자코모라는 이름의 남자 역시 목수였고 나중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지요. 오른쪽 여인은 펠리차의 아내 아내인 테레사입니다. 전면에 나선 세 사람의 모습이 너무 강렬해서 최근까지도 수많은 화가들과 삽화가들, 사진가들이 이 이미지를 차용해 새로운 작품 속에 등장시키고 있습니다. 얼마 전 아르헨티나 예술가는 이 작품을 빗대서 ‘제5계급’이라는 작품을 제작한 적이 있는데, 앞에 세 사람으로 콜센터 직원, 음식 배달원 그리고 휠체어에 앉은 장애인을 등장시켰지요.
물감을 두껍게 바르는 임파스토 기법을 사용하던 펠리차는 1898년부터 점묘법을 채택해서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합니다. 점묘법은 작은 점들로 대상을 묘사해 작품이 부드러운 느낌이 강하지요. 국내 전시회와 국제 전시회에 자주 참여하며 명성을 높이고 있을 무렵, 펠리차에게 엄청난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배경 속 인물들도 저마다의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그들도 역시 모두 단호한 모습입니다. 앞의 세 사람이 힘을 얻는 것은 이렇게 병풍처럼 그들의 뒤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기에 가능한 것이지요. 모델들은 펠리차의 고향 지인들이었습니다.
1907년, 펠리차가 서른아홉이 되던 해 아내 테레사가 셋째 아이를 낳은 직후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갑작스런 아내의 죽음에 펠리차의 느낀 좌절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는 것이었나 봅니다. 아내가 떠난 그해 6월, 펠리차는 자신의 화실에서 스스로 생을 마감합니다. 뛰어난 작가의 아쉬운 결말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