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공개된 북한의 전승절 70주년 기념식 영상은 한반도를 둘러싼 외교안보지형의 현재 상태를 정확하게 보여줬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 북한의 핵전력이 열병식에 등장했고 중국과 러시아의 고위급 대표단이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함께 이 모습을 지켜봤다. 중국과 러시아가 북의 핵개발을 적극적으로 반대하던 2010년대와는 달리 이제는 용인을 넘어 응원과 격려의 모습으로 바뀐 셈이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에 동참했던 어제의 중국과 러시아가 아니라는 것을 세계에 보여줬다. 북·중·러 3각공조의 시대가 전면화된 것이다.
중국은 미국과 지속적인 전략경쟁 체제에 있고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서 사실상 미국과 전쟁 중이다. 국제적 고립을 피하고 한미동맹 및 한미일 군사 협력에 맞서 힘을 키워야하는 북한과 이해관계가 맞은 것이다. 중국과 러시아 양국 모두에게 북한의 전략적 가치가 높아졌고 북한은 이런 기회를 새로운 도약점으로 삼으려는 듯하다.
마침 윤석열 대통령을 포함한 한미일 정상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초청으로 오는 8월 18일 정상회담을 연다. 다자회의 참석계기로 만나는 것이 아닌 3국 정상 만의 만남은 상당한 무게가 실린다. 미 대통령 별장인 캠프 데이비드로 한일 정상을 초청한 것도 눈에 띈다. 그만큼 중요한 문제를 길고 편하게 이야기해보겠다는 의미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대만해협 문제, 우크라이나 전쟁, 북한 핵위협 대응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라고 한다. 북한, 중국, 러시아를 대상으로 각각의 외교적 핵심문제에 모두 대응하겠다는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에 국한되었던 한미동맹, 미일동맹이 한미일이라는 틀로 바뀌어 세계의 모든 문제에서 공동전선을 추진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이런 구도는 우리에게 결코 유리하지 않다. 한반도에서 뿐만 아니라 국제사회에서 한미일 대 북중러의 구도가 고착되는 건 북한에 유익하고, 우리에겐 부담일 뿐이다. 북한은 중국·러시아와 손잡고 국제사회에서의 행동반경이 넓어지게 될 것이고, 오랫동안 발목을 잡아왔던 경제제재에서도 사실상 벗어날 수 있게 됐다.
반면 우리의 외교와 경제적 입지는 축소되고 있다. 북한은 물론 중국, 러시아와의 관계가 틀어지면 대륙으로의 진출로는 봉쇄된다. 한때 유라시아 철도를 한반도로 연결하겠다는 담대한 구상이 남북과 관련국 사이에 오갔다는 것이 믿겨지지 않을 만큼 대북, 대중국, 대러시아 관계는 황폐해졌다. 현재의 추세를 답습하고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고 과감한 전략적 구상이 필요한 시점이다. 안타깝게도 현 정부가 그런 의지를 갖고 있다고 볼 사람은 없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