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올해부터 후쿠시마 원전에 쌓인 130만t가량의 오염수를 바다에 버린다. “알프스(ALPS)”라고 부르는 여과설비로 방사성물질을 걸러낸 뒤, 걸러낼 수 없는 삼중수소 등의 방사성물질은 바닷물로 희석해 기준치 이하의 농도를 낮춘 뒤 방류하겠다는 계획이다. 이 같은 일본의 계획에 대해 각종 우려와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자, 윤석열 정부는 일본이 방류하려는 오염수가 위험하지 않다는 취지의 자료를 만들어 배포하고 있다.
오염수를 커피·바나나와 비교한 자료가 대표적이다.
윤석열 정부가 지난달 12일부터 배포하기 시작한 ‘후쿠시마 오염수 10가지 괴담’ 자료를 보면, 오염수는 안전하다는 취지로 우리가 평소 즐겨 먹는 커피·바나나와 비교하는 내용이 나온다. 현재도 이 자료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서 쉽게 볼 수 있으며, 동사무소 민원실과 공공도서관 등에서도 접할 수 있다. 이는 “일본을 대변하는 데에 수십억의 혈세를 쓰는 게 바람직하냐?”는 비판이 제기됐던 홍보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정부 홍보자료만 보면, 오염수는 우리가 즐겨 먹는 커피나 바나나보다 깨끗하다고 오해하기 쉽다. 그런데, 내용을 자세히 뜯어보면 매우 이상한 점이 발견된다.
정부 홍보자료에는 커피 한잔(약 200cc)에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4900베크렐(Bq)가량 담겼다고 나온다. 200cc는 0.2리터(L)이니, 이는 커피 1리터에 2만4500베크렐의 삼중수소가 있다는 말이 된다. 또 바나나 한 개는 보통 150그램(g) 정도이니, 바나나 1kg에는 삼중수소가 4만베크렐이 있게 된다. 베크렐(Bq)은 ‘초당 몇 번의 핵물질 붕괴가 일어나느냐’를 뜻한다. 즉, 1리터 커피에서 초당 2만4500번의 핵물질 붕괴가 일어나고, 1kg의 바나나에서는 4만번의 핵물질 붕괴가 일어나며 방사선을 내뿜는다는 의미가 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정한 음용수 기준에 따르면, 1리터당 1만베크렐 이상의 물은 먹으면 안 된다. 이 기준은 미국과 유럽연합의 기준보다 훨씬 느슨하다. 미국과 유럽연합은 이보다 훨씬 더 엄격한 음용수 기준치를 정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연합의 삼중수소에 대한 음용수 기준은 각각 리터당 740베크렐, 리터당 100베크렐이다. 더 놀라운 점은 삼중수소에 대한 우리나라 환경부 음용수 기준은 리터당 6베크렐이란 점이다.
정부가 배포한 자료에 따르면 커피와 바나나는 세계보건기구가 권고한 음용수 기준을 2배 이상 넘고, 유럽연합의 기준보다 240배 이상 오염돼 먹거나 마시면 안 되는 물질인 것이다. 우리나라 기준으로는 4000배 오염된 셈이기도 하다. 백도명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명예교수는 “저게 사실이라면, 정부가 당장 나서서 커피와 바나나를 먹지 못하게 막아야 한다”며 황당함을 감추지 못했다.
왜 이런 황당한 결과가 나온 것일까?
커피 한 잔 자료사진 ⓒ민중의소리
사실, 커피 한잔이나 바나나 한개에서 초당 4900~6000번의 삼중수소 붕괴가 일어난다는 정부 자료는 사실이 아니다. 이는 커피와 바나나에 보통 있는 칼륨40(K-40)의 양과 선량을 수학적으로 단순 계산하여 삼중수소로 치면 이 정도 있다고 봐도 된다는 식으로 가정한 것이다. 커피 한잔에 보통 칼륨40이 14베크렐가량 있다고 치면, 칼륨40과 삼중수소의 선량환산계수가 350배 차이가 난다고 가정하고, 14베크렐에 350을 곱하여 4900베크렐이 있다고 적은 것이다.
국무조정실 관계자도 1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칼륨의 선량환산계수가 삼중수소보다 400배가량 되기에, 그렇게 계산한 것”이라며 비슷한 취지로 설명했다.
커피에 그렇게 많을 수가 없는 삼중수소가 유엔의 음용수 기준보다 245배 많아진 이유였다.
문제는 삼중수소와 칼륨40의 성질이 완전히 다르다는 점이다.
칼륨(K)은 채소나 과일에 풍부하게 들어 있는 필수 영양소다. 우리 몸은 몸에서 칼륨의 양을 일정하게 유지한다. 신진대사에 따라 칼륨은 몸에 들어온 만큼 배출된다. 보통 70kg의 성인 몸에 칼륨은 140g정도 있는데, 이를 꾸준히 유지한다. 또 이 중 0.0117%정도만 방사성 칼륨40이다. 따라서 사람이 음식으로 칼륨을 섭취한다고 문제가 되진 않는다. 체내에 오래 머물지 않고 배출되기 때문이다.
반면, 삼중수소는 다르다. 우리 몸의 대부분은 수소로 구성돼 있고, 우리 몸은 수소와 삼중수소를 구별하지 못한다. 몸의 세포나 유전자를 구성하는 수소 자리에 삼중수소가 들어가기 쉽다. 이럴 경우, 몸의 구성성분이 된 삼중수소가 붕괴하거나 핵종전환하면서 유전자 손상 또는 변이를 일으킨다. 이렇게 체내에 오래 머물며 축적되는 삼중수소를 ‘유기결합 삼중수소’, OBT(organically Bound Tritium)라고 부른다.
백도명 서울대학교 보건대학원 명예교수 자료사진 ⓒ민중의소리
백도명 교수는 칼륨과 삼중수소의 차이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생물체는 칼륨40 농도를 타이트하게 컨트롤한다. 그것이 몸에 들어온다고 해서 문제가 되진 않는다. 칼륨40으로 암에 걸렸다는 자료 또는 근거가 전혀 없다. 반면, 삼중수소의 발암성은 잘 알려져 있다. 삼중수소수를 공장에서 일하다 잘못 먹어 사망한 두 건의 사례 등이 보고가 돼 있다. 그리고 생쥐에게 삼중수소수를 물 대신 먹였더니 암이 발생한다는 연구 등도 있다. 삼중수소는 방사성물질로 몸에 들어와 내부 피폭을 일으키는 물질이다.”
이준택 건국대학교 명예교수(물리학 전공)도 다음과 같이 지적했다. “지구의 나이에 비교될만한 12억5천만년의 반감기를 갖는 칼륨40은 인류가 지구상에 나타나기 이전부터 존재해온 자연방사능이다. 인류는 이에 적응하여 살아온 반면, 상당한 양이 핵실험·핵발전 과정에서 인공적으로 생성된 삼중수소는 다르다. 칼륨40은 우리 몸에서 삼중수소와 같은 영향을 주지 못한다.”
윤석열 정부의 설명이 이상한 점은 또 있다.
자연에는 이미 자연 방사성물질과 인공 방사성물질이 존재한다는 점이다. 바닷물에도 칼륨40뿐만 아니라 핵실험·핵발전에 따라 인공적으로 생성된 수많은 핵종이 존재한다. 일본이 오염수를 바다에 방류하게 되면 이렇게 축적된 방사성물질의 농도가 조금씩 높아지게 된다. 여과가 완료된 오염수에서도 10개 핵종이 일상적으로 발견된다고 하니, 바다에 방류되는 것 중에는 삼중수소보다 훨씬 치명적인 방사성물질도 있을 수밖에 없다. 일본은 걸러낼 수 없는 이 방사성물질을 바닷물로 희석해서 버리겠다고 하지만, 오염수를 그냥 바다에 버릴 때와 바닷물로 희석해서 바다에 버리는 때 버리는 ‘방사성물질 총량’의 차이는 없다. 방류되는 물의 농도가 낮다고 눈속임하는 것뿐이다. 이준택 교수는 이 같은 문제를 이해하기 쉽게 “국물이 짜다고 물을 타서 먹을 때는 짠 느낌은 없으나, 그 국물을 다 먹으면 결국 음식물에 있던 염분을 다 섭취하게 된다”라고 설명했다.
윤석열 정부는 이 부분을 외면하고 일본이 버리는 오염수의 방사성물질 농도가 1500베크렐이라는 점만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 커피와 바나나에 이 같은 방법으로 비교했으니, 괴담을 퍼뜨리고 있는 것은 언론이 아니라 윤석열 정부인 셈이다. 전문가들도 이구동성으로 “이게 괴담”, “전 국민 대상 픽션”이라는 탄식을 쏟아냈다.
삼중수소와 칼륨의 성질이 다른데 선량환산계수에 따라 단순하게 베크렐로 바꿔버리면 잘못된 정보가 전달되는 것 아니냐는 취지의 지적에 대해, 국무조정실 관계자는 “그것도 일리가 있긴 하지만”이라며, 국민이 이해하기 쉽게 설명하려면 이같이 설명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정화된 오염수에 삼중수소가 1500베크렐이 있고, 바나나 한 개에 있는 칼륨40은 15베크렐이며, 커피 한잔에도 바나나 한 개와 비슷한 정도의 칼륨40이 있다고 설명하면 삼중수소의 위험성이 지나치게 과장될 위험이 있기에 그렇게 표기했다”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