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펄펄 끓고 있다. 가뭄 끝에 집중호우, 그리고 매일 체감온도 35도가 넘는 무더위에 신음하지만 우리나라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유럽과 미국, 중남미, 중동 할 것 없이 전 대륙에 걸쳐 40도가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기상기구는 올해 7월이 관측사상 가장 더운 달로 기록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이미 그리스 등 여러나라에서 대규모 산불이 일어났고 8월 들어 중국에서는 태풍 독수리가 쏟아낸 폭우로 주요 도로가 강줄기로 변했다. 한겨울인 지난 2일,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선 30도가 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육지뿐만 아니다. 바다의 수온도 기록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북극과 남극, 시베리아 동토도 녹아내리는 속도가 더 빨라지고 있다. 태풍도 더 빈번하게 발생하고 더 강력해지고 있다.
문제는 이런 현상이 매년 더 악화하며 새로운 기록을 갱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가장 비관적인 과학적인 예측보다 악화 속도가 더 빠르다고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는 지금이 가장 시원하고 안전했던 해로 기억될 수도 있다는 뜻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제사회와 주요국가 마다 기후위기에 대한 범정부적 대책을 쏟아내고 있는데도 상황 개선은 이뤄지지 않고 세부정책을 평가해볼 때 근본적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기후위기에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세력이 다국적기업과 경제력이 큰 나라의 정부인데 이들의 근본적 변화를 이끌어낼 만한 힘있는 세력은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우리나라에선 문재인 정부에서 시작된 탄소세 도입 논의가 윤석열 정부 들어 봉쇄된 상황이다.
물론 과거와 달리 각 나라 정부와 전문가들 내에서 기후위기에 대한 이견과 반론은 눈에 띄게 줄었다.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6차 보고서에서 산업혁명 이후 인간의 인위적 활동이 지구온난화에 미친 영향을 수치로 확인해 준 이후부터다. 하지만 과거처럼 노골적 반발은 아니지만 ‘기후위기는 과장됐으며 지나친 친환경이 경제성장을 가로막는다’는 반발은 적지 않다. 오히려 여전히 주류사회를 지배하고 있다. 극소수의 사람들이 엄청난 부를 축적하기 위해 지구를 펄펄 끓이고 있는 것이다. 전쟁이 일상이 된 군사화한 세계도 이 같은 현상을 부추긴다. 미 국방부와 미군이 한 해 사용하는 화석연료를 온실가스배출국가 순위에 대입하면 무려 47위에 해당한다고 한다. 기후악당 중에 가장 위험한 악당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해 3만5천명의 시민이 운집한 ‘9.24기후정의행진’에서 ‘체제전환’, ‘반자본주의’ 같은 급진적 구호가 넘쳐난 이유이기도 하다. 자본주의 체제와 기득권 지배세력을 교체하지 않고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정치적인 구호를 최소화하기 위해 오래도록 노력해온 환경운동 단체들도 크게 이견을 제시하지 않았다고 한다. 기후위기로 인해 온 인류가 삶의 질이 급격히 저하되고 있는 지금이 그동안 비주류에 머물렀던 기후정의운동을 우리사회 주류적 가치로 전환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정상사회라면 정부, 국회, 전문가, 지방정부, 시민사회가 한데 모여 기후위기대책을 논의하고 로드맵도 짜야할 만큼 위기적 상황이다. 이런 방향으로 사회적 압력을 높여가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