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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이 비 그치면 사회연대쉼터에 가야겠다

처연한 장맛비를 보고 있다. 학생운동, 노동운동 한다며 근 삼십 년 넋이 빠진 채 쫓아다니다 귀농한 지 십년이다. 귀농의 보편적 가치가 무엇인지 몰라도 나락 농사와 감자·고추 등 밭 작물을 키우며 방치 농법, 이른바 자연 농법을 실천하는 ‘가짜 소농의 길’을 걸었다, 먹고 살기 위해 비정규직 노동자로 정부 일자리사업에 기웃거려 11개월짜리 기간제로 일하며 그냥 저냥 입에 풀칠을 했다. 가끔 있는 건축일로 막걸리 값이라도 벌었다. 집 없고 땅 없는 반노반농의 십년, 육체의 시간은 오에서 육으로 바뀌고 이제 연식이 오래돼 몸도 아픈 곳이 많아지는 꺾어진 청년이 됐지만 여유와 관조는 덤이었다.

귀농 초기, 상처 많은 한 사람이 있었다. 어쩌다 팔을 다쳐 실상사 농장 일을 못하게 되었고 거처할 곳을 여기 저기 알아보다 귀정사와 ‘사회연대 쉼터’에 몸을 맡길 수 있었다. 둥지는 틀었지만 귀농을 접고 다시 도시로 올라가고 싶은 마음도 컸다. 이래저래 견디며 귀정사 아랫동네, 상신마을에 정착할 수 있었다. 작지 않은 경험을 쌓고 지금은 근처 구례로 이주해 정착했다.

귀농 전 이 사람은 오랜 산별노조 중앙 활동(전국공공운수노조 정책실)을 접고 새로운 운동을 찾아 일산 지역에서 비정규센터를 열어 보기도 했다. 공공운수노조에 있으면서도 전비연(전국비정규노조연대회의) 집행위원장으로 일도 해봤다. 그나마 받던 상근비도 없는 비정규센터 일이었지만 마음만은 편했다. 그러나 이미 쌓이고 쌓인 운동의 피로는 가시지 않았다.

사회연대쉼터의 청정무공해 밥상

그렇게 상처 많은 한 사람을 아무런 조건 없이 품어 준 건 귀정사와 사회연대쉼터였다. 수십 년 최선을 다했던 새로운 세상을 향한 비상을 멈추고 날개가 꺾인 새 한 마리가 되어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 작은 방 하나에 엎드려 있었다. 쉼이 필요했다. 매일 백팔배를 했다. 집사람과 아이들 문제, 노동운동의 상처, 귀농의 어려움들을 견뎌 내야만 했다. 많은 밤을 불면증으로 보냈다, 선택해야만 했다. 몸을 혹사시키고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글쓰기에 집중했다. 외롭고 쓸쓸한 한 사람을 지탱해준 술이라는 벗도 동행했다. 그렇게 시간은 가고 부분적으로 자신을 직시할 수 있었다. 기다려주고 지켜봐 준 귀정사와 사회연대쉼터가 고맙다. 그 산 속의 이름 없는 풀벌레들이, 꽃과 나무들이, 투명한 계곡물과 그만큼 투명하던 밤별들이 고맙다.

1년 여 쉼터에서 아무런 조건 없이 쉬며 어느 정도 안정된 심적 토대 위에서 새로운 생태적 삶을 위해 귀농하기 위한 교육도 받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귀농학교와 집짓기 강좌를 수료했고 귀농한 사람들과 마을 사람을 중심으로 관계를 텄다. 배우고 익히고 만나면서 생각의 근육을 키웠다. 오십 이후엔 귀농이 변수가 아닌 상수로 자리매김했다. ‘귀농하기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사회연대쉼터에서 충분한 휴식을 거친 후 마을로 내려가 귀농한 젊은 친구 두 명과 천 평의 땅을 빌렸다. 콩 농사로 나락농사로 일명 ‘반거치 농사’를 시작했다. 그리고 봄이면 요천강변 뚝방의 벚나무에서 벌어지는 꽃향기와 눈꽃의 미증유 사건들을 보고 봄 맞으러 갔다. 여름이 되면 귀정사 계곡에서 닭백숙을 끊이거나 멱을 감았다. 가을이면 산행도 하고 울분을 토해낸 산과 함께 돌아오지 않았다. 겨울이고 연말이면 외로운 사람끼리 각자 만든 음식을 가지고 와 나누어 먹고 일 년의 수고를 이야기 했다. 그런 일 년이 쌓여 벌써 십년이 됐다.

이 글을 쓰는 지금도 비가 내린다. 6월 말에서 시작해 7월 말까지 한 달여의 장마기간이다. 지치고 힘겨운 장맛비를 뒤로하고 귀정사와 쉼터를 찾아 가야겠다. 여전히 완벽한 사람이 아니어서 십년의 시간을 위로받고 싶을 때가 있다. 그리고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농부의 길, 삶의 마지막 길도 안식이 있는 그 곳에서 위로 받으며 살고 싶다. 조용히 기다려 주고 지켜봐 주는 그 곳, 귀정사와 사회연대쉼터가 좋다.

송경동 시인이 말하는 사회연대쉼터

나처럼 국가폭력과 자본의 폭력에 맞서, 새로운 세상의 민주적이고 지속가능한 생태계와 그 조화로운 관계를 위해 어디선가 일하다 잠시의 쉼이 필요해진 이들을 위한 무료연대쉼터다. 부끄러운 생이었지만 힘써 잘 살아주어 고맙다고 내 지난 삶을 인정해주고 기억해주고 위로해 주는 곳이다. 바람이 있다면 나처럼 다 써버린 건전지처럼 가진 에너지를 모두 소진시켜버린 후에 찾지 말고 더 지치기 전에 잠깐씩이라도 와서 휴식을 취하는 일상의 쉼터가 되기를 바란다.

사회연대쉼터 인드라망이 만들어 진 지도 벌써 10년. 9월 2일 저녁, 그 산사 계곡에서 우리의 10년을 기억하고 이후 10년을 기약하는 의미로 정태춘 후원콘서트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나의, 우리의 쉼터를 위해 가난한 빈손이지만 뭐라도 도와야지.

이 비 그치면 귀정사 사회연대쉼터에 가야겠다.

【후원ㆍ연대 CMS 바로 가입】 http://www.shimte.org/5_etc/member.php
【10주년 콘서트 신청 및 후원하기】 bit.ly/쉼터후원의날

사회연대쉼터 10주년, 정태춘 후원 콘서트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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